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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Jul 21. 2024

뒤 늦은 일기

(2024.7.21.)

올들어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날을 놓치지 않았던 1학년 일기가 이틀이나 늦은 오늘에야 내용을 채운다. 그러고 보니 2016년 3월 2일 첫 1학년 담임이 된 이후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다. 물론 1학년 담임을 했을 때만. 나머지 학년은 쓸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1학년이어서 가능했는데, 지난 금요일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1학기 교육과정 워크숍으로 직원들과 경기도의 대표적인 혁신학교로 알려졌던 평택 죽백초등학교를 방문하고 이후 숙소에서 일정을 소화해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제는 아침 일찍 나 혼자 일어나 공주에 있는 도교육청 교육연수원에 가야 했다. 방학중 국외연수(싱가폴)를 위한 사전연수가 오전 9시부터 6시간동안 이어지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벽 2시가 넘어 일정이 마치고 아침 7시에 일어나 저녁에 집에 들어와 녹초가 되었으니 도저히 일기를 쓸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본 지난 금요일. 아이들 둘이 빠진 10명으로 수업하는 하루. 이번 해에는 아이들 12명이 온전히 교육과정을 이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주 아프기도 각 가정마다 여행일정이 생겨 교외체험학습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완전체로 1학기 교육과정을 이행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아쉽기도 했다. 이것도 올해 1학년의 특징이나 성향이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어김없이 아이들은 교실로 들어왔고 나는 차를 따랐다. 처음에 그렇게 차를 마시는 걸 싫어했던 아이들이  두 말 없이 마신다. 더 달라는 아이들도 늘었다. 지난 해 아이들도 나랑 있을 때문 그랬는데, 학년이 바뀌면서 그러지 않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쉬웠다. 역시나 담임이 마음가짐과 그것에 따른 실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알게 됐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교사가 마음이 가지 않으면 제대로 이행되기가 어렵다는 걸 말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고양이 학교> 책을 들려주길 바랐다. 이제 1권도 거의 끝이 나간다. 내일 들려주면 끝이 날듯, 이후는 아이들에게 맡길 생각이다. 아마도 이 아이들은 4학년 이후라야 이 책에 흥미를 더 느낄 것이다. 첫 수업은 첫 문장읽기와 쓰기 시간. 지난해처럼 양철북에서 출간한 <어린이 시 따라쓰기>로 하는 문장공부. 비슷한 또래(1-4학년)의 아이들이 쓴 글(시)로 문장을 재밌고도 쉽게 읽고 쓰며 읽기도 쓰기도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식. 작년 아이들도 이 과정으로 글씨체를 고쳤는데, 2학년 올라가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아쉬웠다. 다시금 교사가 얼마나 마음을 다해 지속해서 가르쳐야 하는지, 그러지 않으면 금새 다시 돌아오거나 성장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도 또 확인하게 됐다.


오늘의 첫 시는 '꽃' 3학년 아이가 쓴 시였는데, 예쁜 꽃을 보다가 넘어진 아이가 꽃이 예뻐서 넘어졌는데도 그 꽃을 보려고 일어나게 됐는데, 그게 꽃이 일으켜 준 것 같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시다. 이것을 아이들이 여러번 낭독하고 뜻을 새기고 시를 따라쓰고 외는 과정을 되풀이 했다. 처음이라 물론 쉽지 않았지만, 이 과정을 어느 정도 즐기는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외우는 아이들대로 못 외운 아이들은 읽어서, 아직 글 읽는게 서툰 아이들은 여러번 읽어서 익숙해질때까지 해서 한 편을 온전히 만나게 했다. 그걸 영상으로 찍어 보호자 톡방에 올려 놓기도 했다. 이렇게 남은 한 학기를 가려 한다. 교과서의 기계적인 문장공부가 아닌 살아있는 삶이 있는 언어를 만나고 즐기면서 문장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길 바란다.


꽃 | 허시윤


학교 오는 길에

꽃을 보다가 넘어졌어요

그런데 꽃이 절 일으켜 세웠어요

꽃이 너무 예뻐서 보려고 저절로 일어서졌어요.


오후 시간에는 수학. 50까지의 수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 단원평가 문항으로 기존 낡은 평가방식에도 익숙해져야 하는 시간. 문제 읽기를 어려워 해 도와 달라고 해도 애써 무시해야하는 시간.  이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들 배운 상황을 다르게 파악해야 하는 시간. 잊어버린 게 무엇이지, 가정에서 무엇을 더 보총해야 하는 것인지 확인해야 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마냥 놀고 싶고 마냥 신나게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싶은 아이들을 다독이며 때로는 지적하며 배워야 할 것을 알게 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올 1학년은 특히 그렇다. 그런데 그게 그다지 안타깝지 않게 느껴지게 하는 1학년이기도 하다. 너무도 해맑게 뛰어 노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그럼에도 챙겨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어렵고 힘들다며 아이들이 잔소리를 해도 귀등으로도 듣지 않을 뿐이다. 너희는 맘껏 놀아라, 나는 샘의 일을 할 뿐.  하하.


이제 방학까지 나흘. 모레는 서울로 현장학습을 떠난다. 할 일은 가득하다. 방학 중 공사로 교실 뒤편을 또 정리해야 하고 마침내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갈(언제 일지 몰라 걱정이지만) 도서관 상황도 파악해야 하지만, 어쨌든 난 이번 방학을 기다린다. 이래저래 많이 지쳤다. 쉴 날도 별로 없는 방학이지만, 잠시 한 쪽 머리는 식힐 수 있으니...지난 금요일은 아이들과 만난지 138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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