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미생이었다

(2024.12.30.)

by 박진환

나라의 기운이 기울어지고 있는 걸까? 너무도 가슴 아픈 큰 사건이 또 터졌다. 사회가 안전하려면 전체 시스템이 균형을 이루면서도 민주적인 토대가 단단해야 한다. 이전의 숱한 참사들을 보면서 미리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유에는 다 이런 문제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날씨도 매우 우울하고 어두웠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어디든 멀리 떠날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만 같다. 추모하고 기원하며 기다려야 할 일이 많을 듯하다.


오늘 아이들과 나는 문집에 실을 시를 쓰는 시간으로 보냈다. 문집에 싣는 시는 대게 손글씨로 싣곤 했다. 많은 글을 넣으려다 보니 아래아 한글을 쓰게 됐지만, 역시 손글씨의 위력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져만 간다. 그 당시 그 시절에 그 아이가 썼던 글씨와 글. 한 편만 보더라도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위력이다. 컴퓨터로 만든 글씨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힘이다. 우리 아이들은 '시 따라쓰기'로 반 년을 보냈다. 하지만 막상 자신들이 시를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처음의 어려움을 딛고 여기까지 왔지만, 아직 아이들이 채워야 할 부분이 곳곳에서 보였다. 1학년을 충분히 채우고 남았으리라 여겼지만, 아직은 미생이었다. 힘들었지만, 이 과정 속에서 배우길 바랐다. 글씨와 글, 맞춤법과 종이에 쓸 때, 폭과 줄간의 균형들을 살펴가며 한 편, 한 편 완성해 갔다. 여러 번 되풀이 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마침내 해냈을 때,아이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잘 안 되는 아이들 지도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그렇게 날마다 많이 찍어대던 사진을 오늘은 찍지 못했다. 겨우 생각이 나 완성된 시 한 편을 들고 찍는 것으로 대신했다. 오늘 두 명 밖에 없는 여학생이 결석하거나 일찍 가게 돼 전체 사진도 10명으로 대신해야 했다. 내일은 올해 마지막날이다. 부디 모든 아이들이 와서 함께 문집 작업을 마무리 하고 한 해를 잘 마무리 했으면 한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301일째 되는 날이었고 아이들과 헤어질 날을 3일 남겨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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