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31.)
희년(禧年)은 ‘복된 해’라고 불린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이사야 61장 1-2절을 인용하며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은 ‘주의 은혜의 해’, 즉 희년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단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7년마다 가진 안식년을 일곱 번 맞은 뒤 50년째 되는 해에는 나팔을 크게 불어 희년을 선포했다고 한다. 희년에는 “모든 노예들이 자동으로 해방되었으며, 모든 빚이 조건 없이 탕감되었고, 모든 땅이 값 없이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졌다”고 하는데, 그 의미를 새긴다면 희년은 억압받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해방의 해’일 수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50년마다 희년을 기념한 것은 1300년부터라고 한다. 그런데 1475년부터는 누구나 한번은 그 은총을 누릴 수 있도록 주기를 25년으로 줄였다고 한다. 2000년 대희년 후 다음 정기 희년은 2025년인 바로 내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4일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성문을 여는 걸로 희년의 시작을 알렸다. 교황은 전쟁, 생태위기, 불평등을 언급했다. 이스라엘 군대가 살상하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외면하고, 글로벌 자본의 폭리 추구 속에 파괴되는 지구를 껴안지 않고, 커져만 가는 빈부 격차를 바로잡지 않고 어떻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즘 만큼 12월을 넘기기가 이렇게 힘든 시절이 있었을까. 나라의 지도자는 계엄으로 온 나라과 국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난데 없이 전해 온 여객기 참사는 온 나라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했다. 도무지 내년이 희년일까 싶을 정도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새해 복을 어떻게 바랄 수 있을까?
오늘 나는 희년을 내일 맞는 2024년의 마지막 날을 아이들과 문집 만들기로 보냈다. 문집에 들어갈 아이들의 자잘한 손그림을 11월 일기 타이핑 친 것을 뽑아 그리도록 했다. 아이들의 그림을 조금이라도 담고 싶어 해마다 하는 작업이다. 나중에 이것을 교무실에 있는 복사기로 보내 스캐닝하여 피디에프로 만들었다. 이제 방학 때 나는 이 파일에 있는 작은 아이들의 그림을 하나 하나씩 떼어 낼 것이다. 그리고 문집 여기저기에 넣을 것이다. 무사히 작업을 마친 아이들과 중간놀이 이후에는 졸업생들을 위해 우리 1학년들이 부를 노래를 가르쳐 주며 함께 부르게 하는 것으로 ㅎ시간을 보냈다.
노래는 김창완의 '안녕'. 귀엽지는 않지만, 작은 사랑은 아닌 6학년이지만, 귀엽다고 사랑을 받은 작은 1학년들이 그들을 떠나보내는 노래로 적당하여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려워 한다. 짧은 1절, 2절인데도 비슷한 가사와 멜로디가 헷갈리게 했던 모양. 겨우겨우 연습으로 익히고 나서 우리는 도서관을 거쳐 급실실로 향했다. 돌아와서는 아이들과 체육활동을 하면서 문집을 만드느라 힘들었던 아이들을 위로해 주었다. 마냥 신나게 놀던 차에 뜬금없이 승*가 내게 작은 편지지를 내민다. 나와 헤어지는 것이 슬퍼서 썼다는 편지. 나한테 그렇게 장난을 치며 말도 안 들어 주던 녀석이 2학년에 또 만났으면 좋겠단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지만, 부디 내년 우리 아이들에게도 우리 보호자들에게도, 그리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려는 우리 나라의 모든 이들에게 진정 희년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2024년은 개인적으로 내게도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한 해였다. 잊고 싶은 한 해였다. 그러나 12명 우리 천방지축 우리 개구쟁이 아이들은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를 아는, 나를 진정 사랑하고 존중하는 모든 이들에게 2025년이 희년으로 다가가길 진심으로 바라며....2024년 새싹학년의 마지막 일기를 쓴다. 오늘은 아이들과 헤어질 날을 이틀 앞 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