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17.)
서울을 오가며 바쁘게 보낸 주말을 뒤로 하고 여전히 쌀쌀한 출근길을 걸어 교실로 들어갔다. 세 아이는 유치원에 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일찍 **가 교실로 들어왔다. 큰 소리로 인사하는 **에게 어서 유치원에 가 있는 아이들을 불러 오라 했다. 통학 버스가 늦게 와 아이들이 교실에 없으니 아침에 딱히 할 게 없어 시간만 보내는 게 아깝기만 하다. 늦게 교실로 들어 온 아이들이다 보니 첫 수업도 자연스럽게 늦어질 수밖에 없다. 요즘 내가 속도까지 내지 않고 있어 5월부터 학습량이 늘어날 것 같을 대비한다면 이제는 서둘러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교실로 들어온 아이들에게 산딸기 차를 대접하고 지난 한 주 있었던 일을 물었다. 다들 조금씩 지난 주말을 떠올리는데, 어디를 다녀왔다는 식의 단순한 대답은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고 그렇게 답을 한 친구들의 예를 들며 지도를 해주었다. '방아 찧는 호랑이' 옛이야기 한 꼭지를 들려주고서야 겨우 40분 늦은 오늘 첫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 첫 수업의 주제는 '봄의 소리'다. 봄이 오는 소리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물어보고 우리 주변에서 봄이 오는 소리를 어떻게 느낄 수 있는 지를 확인한 뒤, 꼭 봄이 아니더라도 들을 수 있는 소리를 그림책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오늘 골라 놓은 책은 '의태어, 의성어' 관련 수업을 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어 또 괜찮았다. 첫 책은 <봄이 오면>. 봄이 오면 엄마, 나, 집안의 동물도 바깥 세상 동물도 꾸벅꾸벅 존다는 이야기. 그 까닭은 바로 봄이라는 것. 두번 째 책은 <꽃이 피었습니다> 민들레 꽃씨가 나중에 세상을 돌고 돌아 우리들 켵으로 우리들 안에 있다는 이야기. 세 번째 책은 <북극곰아, 북극곰아, 무슨 소리가 들리니?>에서는 각종 동물들의 소리를 흉내내는 소리가 나온다. 아이들에게 그림책 속 맘에 드는 동물의 소리를 따라 해보라 했더니 여자 아이들은 공작을 남자아이들은 뱀을 따라 한다. 그렇게 오늘의 마지막 그림책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넘어갔다.
이 책의 저자는 헬렌 아폰시리. 자연의 변화를 숲속의 식물의 잎과 꽃, 가지로 채워 아름답게 표현해 낸 작품인데, 1학년 아이들에게 서툴지만 비슷하게 흉내를 내며 봄의 소리를 듣고 봄을 맞아 들이는 활동을 해 보았다. 아이들이 엄청 큰 관심을 가지고 바라본다. 봄에 나는 나물과 풀, 꽃과 꽃잎을 찾아 우리도 작가 못지 않게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들 즈음, 나는 아이들에게 새 한 마리를 그린 그림을 건넸다.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맡겨서는 기대하는 모습의 그림이 나오지 않아 작품을 완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하고 싶은 아이들은 그렇게 하도록 했다.
중간놀이 시간마저 잊은 채 아이들과 나는 교실 건물 뒤편으로 넘어가 풀과 나무, 꽃을 만나 작품을 완성해 갔다. 전에는 미처 보지 못한 식물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적당한 크기의 잎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쉽지 않은 걸, 아이들은 5분도 되지 않아 알아챘다. 이렇게 하면 되냐는 질문들이 여기저기서 터지기 시작하고 집중력을 잃은 아이들이 방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할 역할은 이런 아이들을 붙잡아 다시 제 길을 가게 하는 것. 아이들 곁에서 잎의 크기와 색깔을 안내하면서 다시 할 수 있도록 안내를 했다. 그럭저럭 아이들이 모양새를 채워 갈 즈음 어느덧 3교시가 다 되어 갔다. 교실에 돌아가서는 사인펜과 색연필로 보완을 해서 모양새를 갖춰 갔다.
"선생님, 지금 몇 교시에요?"
"응? 지금 3교시지."
"엥? 월요일은 4교시 아니에요?"
"맞아. 시간 금방 가지."
"네, 정말 시간이 금방 가네요."
"선생님, 전 선생님이랑 수업하는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좋겠어요."
"와, 고마워라."
"선생님, 저 통과했어요?"
"응?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통과를 해요?"
"아, 이거 다 했어요. 봐주세요."
"보자, 잘 했네. 됐어. 됐어. 위에다 봄이라고 써 주세요. 도장도 찍자."
마지막 4교시는 숫자 '육'을 수학공책에 적고 이야기 하고 마무리 지었다. 오늘의 수업은 이렇게 간단히(?) 마무리 되었다. 여유를 부리는만큼 다그치지 않고 가는만큼 아이들의 행동과 말도 안정이 돼 있다. 다만 빨리 하려는 습성과 대충 하려는 습성이 좀 더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떨어 뜨린다. 오늘도 몇몇 아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 다시 해 오라고 하고 좀 더 잘 해달라는 말을 했다. 무엇을 하든 한 가지에 집중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결과를 내 놓는 것. 이것은 어릴 때부터 경험하고 쌓아 놓을 필요가 있는 습성이다. 대충 대강하는 습관이 아이들의 성장을 가로 막는 경우를 숱하게 봤기 때문이다. 고학년에 가서 고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계기가 없다면 말이다.
오늘은 한 아이가 숙제를 해오지 않아서 공책 한 바닥만 점심을 먹고 쓰도록 했다. 오늘 규칙을 지키지 않아 점심시간에 남아야 했던 다른 아이에게 그 친구를 돕게 했더니 친구가 제대로 하지 않자 한숨을 푹푹 내쉬며 하는 말이 우습다.
"이러니 선생님이 정말 힘들 것 같아. 정말 너 왜 이래."
"와, 00 내 심정을 알게 됐네. 00가 이제 선생님이 얼마나 답답한지 알겠어?"
"네~"
이래저래 오늘 수업도 마무리가 되었다. 문득 지난 주말 서울에 모임회의를 갔다가 소개 받은 시 한편이 생각난다. 제목은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시인의 시 일부다.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에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가 맨 앞> 중에서, 이문재, 문학동네.
오늘도 나는 끝에서 시작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