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이제 재밌어졌어요

(2023.5.1.)

by 박진환

그러니까 그게 아마도 2008년이었을 거다. 경남에서 충남으로 도간 이동을 하기 전. 경남에서 교직을 마지막으로 보냈던 해. 그해 나는 2학년을 맡았더랬다. 내가 경남을 떠나 다른 곳에서 교직생활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 시절 75학급이라는 경남에게 가장 큰 도시의 초등학교에서 일하던 그때가 내 나이 갓 마흔을 넘길 때였다. 교직경력은 15년을 넘겼고 이제야 아이들을 겨우 알만한 시절.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시절. 학급운영의 틀도 어느 정도 되었던 터라 나는 아침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오늘은 아이들과 어떻게 지낼까? 빨리 아이들 만나서 재밌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


솔직히 요즘은 이런 맘이 쉬 들지 않는다. 당시 나는 모임에 연재에 책에 학교 근무를 하면서 낮밤을 가리지 않고 살았다. 새벽 2시를 넘겨 자고 아침에 7시에 일어나 챙겨 일하러 가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밤 12시를 넘기는 것도 힘들고 아침에 일어나기도 버겁다. 주말에는 거의 뻗어 있어 나들이 갈 생각조차 못하고 밀린 일이 있어 하다보면 주말도 날이 다 새곤한다. 이러니 내가 아침에 아이들을 만나면 행복을 느낄 수 있겠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 체력이 딸린다는 것. 그리고 퇴임을 그리 멀지 않게 남겨 둔다는 것. 이 모두가 나에겐 너무도 갑작스럽고 낯설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번에 새롭게 만난 아이들은 내게 힘을 주곤한다. 그래서 대단한 의욕은 아니지만, 학교를 오는게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뭐라도 더 해주고 싶어 이래저래 찾는 나를 보면 또 이러고 사는구나 하고 실실 웃을 때가 있다.


산딸기차와 옛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한 나와 아이들은 첫 시간으로 '감자는 정말 약속을 잘 지키고 있을까'라는 주제로 뒤늦게 학교에서 만들어 준 텃밭공책을 정리했다. 우리가 읽었던 그림책 세 권과 감자 노래 세 개, 그리고 감자를 심었던 날의 그림 옮겨 다시 그리기, 지난주 관찰한 감자 잎 그리기. 재밌는 건 이번에 우리 1학년이 심은 감자밭이 너무도 완벽하다는 것. 안 그래도 학교 주사님이 시부지기 말을 건다.


"아니, 1학년 감자밭은 어떻게 심은 겨~ 전 학년 감자밭 중에 제일 잘 자라~"

"그러게요. 안 그래도 지난 주 금요일에 가서 밭을 둘러봤는데, 우리 1학년 밭이 제일 풍성하더라고요."

"아니 어떻게 내가 심은 것보다 잘 자란댜~"

"하하하. 글쎄요. 아이들마다 정성을 들여 그런 가요? 저도 신기하더라고요."

"아니, 골고루 다 자랐어. 어떻게 그게 그것도 다 자라면서 잘 자라는 겨~"


모두 옮겨 놓자 이제 새롭게 텃밭공책으로 시작할 수 있겠다 싶었다. 조금 있으면 이제 감자 꽃이 필 테니 그때 아이들의 반응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오늘 3-4교시는 'ㅁ'을 배우는 시간이다.


"야, 자석글자 이제 빨강색이다."

"맞아. 그런데 왜 빨강색일까?"

"입술소리라서요."

"맞아, 아주 잘 아네. 맞아요. 오늘부터 배우는 글자는 입술소리에요."


<한글이 그크끄>로 입술모양을 확인하여 'ㅁ'자 제자원리를 이해시킨 뒤에 <첫 배움책>으로 '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때 00가 큰 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야, 한글이다. 나 이제 한글이 재밌어졌어요."

"야, 다행이다. 한글 싫어했던 00가 재미가 있어졌다니."


한글을 힘겨워 했던 아이들 두 아이가 느리지만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글자에 소리가 있다는 걸 찾아 발견하는 재미를 느낀 것 같다. 통째로 글을 외워 읽는 아이와 자꾸 익힌 것을 까먹고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 아이, 이 두 아이가 지난 두 달동안 글자에도 이름과 소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안심이 된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 정도라도 난 무척이나 반갑고 고맙다. 늘 하던 대로 'ㅁ' 글자를 다 익히고 난 뒤에 나는 그림책 <모모모모모>를 보여주었다. 그림책 표지를 보여주며 그림책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려 했는데, 제목이 왜 '모모모모모'인지 알려 주려 했는데, 도모지 찾지를 못했다. 그래서 결국 첫 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면서 한 아이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맞다, 모내기다."

"오~ 맞아, 모내기. 여기서 모는 뭐지요?"

"쌀이 나오게 하는 거요."

"벼가 어릴 때 모습이요."

"맞아, 벼가 어릴 때 이런 모습이지. 근데 한 개만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모아서 심지요. 그래서 그걸?"

"모내기."

"맞아요, 모를 심는다고 해요."


그렇게 찾아나간 이 그림책은 심을 때와 자랄 때, 비바람이 불 때 넘어졌을 때, 벼가 다 익어 자를 때, 쌀을 얻을 때의 이 모든 과정을 텍스트와 연관시켜 그림의 모습이 글자의 모습과 닮아 있게 그림을 그렸는데, 그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이런 걸 바로 그림책의 아이코노텍스트라는 것인데, 이점을 잘 살린 작가의 상상력이 부럽기도 했다. 아이들은 누은 글자, 잘린 글자, 뒤집어진 글자, 그림을 글자화 시킨 '의성어'를 함께 읽으며 이 책을 재밌게 만났다. 그러면서 오늘 배운 'ㅁ'을 다시 확인시키며 마무리를 지었다. 오늘 00가 한글공부가 재밌어졌다고 했나? 그래, 그러고 보니 반복되고 먹먹한 하루하루가 때때로 버티기 힘들지만, 조금씩 너희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이 재밌어지고 있어. 우리 함께 남은 날들 잘 재미있고도 즐겁게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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