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상상력을 꿈꾸며

(2023.5.12)

by 박진환

"참, 아버님..00가 요즘 생활을 잘 하고 있어서요. 어떻게 00가 말 안 하던가요?"

"예, 안 그래도 요즘 잘 지내고 있다고...."

"그리고 00가 한글도 이제 조금씩 더디지만 익혀가고 있네요."

"예, 안 그래도 요즘 차 타고 지나가다 글자가 보이면 읽어더구요."

"예, 낱자 이름과 소리를 알게 되면서 이제 읽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네요. 자꾸 까먹어서 시간은 더디겠지만, 이런 모습이면 1학년 끝날 때는 한 문장이라도 쓸 수 있을 거라 기대를 하고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버님, 00 준비물이 조금 단촐하고 단순해졌으면 좋겠어요. 색연필도 그렇고 필통도 그렇고 너무 많고 크고 그러니 안 그래도 잘 잊어먹고 떨어뜨리는 00가 감당을 못하네요. 늘 가지고 다니거나 지니는 건 아주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 그렇군요. 잘 몰랐습니다."

"아, 그리고 요즘 **랑 사이가 안 좋은지 자꾸 이야기를 해서요."

"아, **가 많이 돌아다니면서 이래저래 말이 많아요. 그래서 그렇지 딴 건 없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00 아버님이 주말에 캠핑을 가기 위해 00를 데리러 오셨을때 잠깐 이야기를 건네 보았다. 학기 초에 가장 우려스러웠던 00는 이제 매우 안정적인 학습태도를 보이며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아직 한글을 익히는 속도가 더디지만, 백지에서 하나씩 그림을 천천히 어설프게라도 그려가는 모습이 보기좋아 요즘 늘 칭찬을 한다. 본인도 그 지점에 고무가 됐는데, 더 잘 하려 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요즘에 오히려 처음에 안정적이던 아이들 3-4명이 나의 주목을 끌고 있어서 덕분에 한시름 놓은 상태이기도 하다.


오늘의 첫 시간은 전교 다모임. 1학년은 2학기부터 들어갈 요량으로 학급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학급다모임이나 기타 활동으로 대신하고 있는데, 오늘은 6월 1-2일 들살이(야영)활동으로 무학년으로 섞인 모둠에서 모둠이름과 구호, 깃발과 음식정하는 활동을 같이 해야 해서였다. 기대를 가지고 참여한 우리 새싹마을 아이들은 살짝 긴장어린 얼굴, 살짝 상기된 표정이었지만, 선배들의 안내로 즐겁고도 재미있게 참여하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자기 역할이 없어 보이는 시점에서 지루한 얼굴을 보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무난해 보였다.


3-4교시 마지막 시간에는 그림책으로 하는 예술수업을 해 보았다. 이제는 세계적인 작가가 된 이수지 작가의 오래 전 작품인 <움직이는 ㄱㄴㄷ>. 닿소리로 상상력을 발휘해 글자가 가진 멋과 매력을 한껏 뽐내 준 작품이다. 'ㄱ'으로 'ㄱ'을 가둔 세상을 표현하고 'ㄴ'으로 녹다는 말과 함께 'ㄴ'이 녹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ㄷ'으로 다치다라는 표현을 만나 'ㄷ'에 붕대를 감아버리는 재치있는 상상력이 아이들에게 글자의 매력에 훨씬 더 쉽게 빠져 들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럼, 'ㄷ'은 다치다라고 표현했는데, 'ㄷ'을 이수지 작가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저요, 'ㄷ'이 피가 흘리는 장면으로 그렸을 것 같아요."

"저는요, 'ㄷ'이 위에가 부러진 모습으로 그렸을 것 같아요."

"저는 'ㄷ'에 금이 간 그림이 나올 것 같아요."

"야, 다들 너무 대단한 상상력들이다. 또?"

"음, 저는 'ㄷ'에 붕대를 감았을 것 같아요."

"딩동댕~ @@이가 그걸 어떻게 알아냈을까?"


처음에는 감을 잡지 못하던 아이들이 'ㄱ, ㄴ'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 알게 되면서 'ㄷ'에 대한 반응 속도는 매우 빨랐다. 다음주에도 할 건데, 'ㅅ' 사라지다'를 어떻게 표현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나중에 아이들이 그린 'ㄷ'이 다친 그림은 참으로 다양했다. 예술은 이런 상상력에서 시작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금요일이다. 부디 주말에는 내 삶의 상상력에 불을 지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주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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