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23.)
오늘 아침 사정이 생겨 출근이 좀 늦었다. 평소에 지각하지 않은 시각인데도, 늘 오던 시간에 안 오면 나한테 잔소리하던 아이들이 떠올라 오늘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을 하며 출근을 했다. 교실로 막 들어서려는데, 인기척을 눈치 챘는지 교실에서 조용히 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멋진(?) 폼으로 교실로 들어섰는데, 아이들 모습은 의외였다. 다들 제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 듯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선생님, 멋있지."
"우~~"
"왜 이제 왔어요."
"선생님 잘난 척 그만 해요."
"근데 너희들 대단하다. 어떻게 돌아다니지도 않고 이렇게 앉아 있는 거야?"
"사실은요. 00가요 선생님이 오기전에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뭐라고 했는데."
"작기가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맘대로 놀아도 되고 맘 대로 해도 되고 그런 댔어요?"
"뭐라고? 00가 선생님 노릇을 했다고?"
"나중에는 집에 맘대로 가도 된다고 했어요."
"하하하. 00가 선생님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네."
"그리고 우리 보고 자유라고 했어요."
"자유?"
"네, 자유! 난 자유의 여신상이다. 자유! 자유! 자유!"
이렇게 말장난이지만, 하루를 즐겁게 시작하는 일이 나는 좋다. 내가 조금 늦게 온 것으로 우리 반 교실은 그새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선생노릇도 해 보는 아이가 있었고 자신들이 마치 억압 받는 양, 자유를 외치는 모습까지도 다 사랑스러웠다. 1학년 아이들이 아니면 만나지 못할 풍경이었다. 그렇게 옛이야기 들려주고 오렌지 차를 타 주고 첫 시간을 시작했다.
오늘의 첫 시간은 도형단원을 정리하는 평가의 날. 역시나 교과서 평가는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지도서에 실린 평가지는 기본형이라고 해도 여간 어렵지 않은 게 아니었다.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읽어내는 게 문제였다. 아직 문제를 이해하기 어렵고 이런 유형의 문제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문제 자체를 읽어내는 것이 새로운 문제로 다가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한글을 몰라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읽은 아이가 오히려 문제를 잘 해결하고 혼자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아이들이 실수나 잘못 이해해 틀리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는 혼자 해결하지 못해 답답했는지 우는 아이도 있었다. 한 번 폭발하면 울음을 잘 그치지 못한다는 그 아이는 곁에서 함께 풀어주고 나서야 조금씩 진정을 하고는 이내 웃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문제를 잘 읽어내기 어려워서 그런지, 대충 읽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당연히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 반 아이들의 문해력 상태를 다시 확인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오늘은 도형 단원을 평가하는 날이기도 했지만, 1학년에 적합하지 않은 평가유형이 어떤 것이며 우리 반 1학년들의 문해력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다시금 확인하는 시가이기도 했다.
3교시 이후에는 목구멍 소리의 마지막이자 닿소리의 마지막 글자인 'ㅎ'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어느덧 석 달이 지나서야 홀소리에 이어 닿소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예전 보다 한 달 이상 여유를 부린 것인데, 크게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한글을 배우는 아이들의 태도와 상태가 비교적 안정적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이전에 내가 맡았던 아이들보다 문해력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어쩌면 속도는 이 아이들이 맞고 옳다고 느끼기에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글자에 대한 이해와 만남을 꾸준하고도 다양하게 경험을 시키면서 활자의 세계로 안내하려 한다.
요즘은 이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내뱉는 말 하나 하나가 소중할 때가 많다. 어제처럼 또 오늘처럼 글자에 대한 특징을 설명하는 애들이 주는 대로 하라는 대로 읽고 쓰던 일반 학교 아이들보다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몇몇 아이들은 'ㅎ'를 공부하면서 'ㅎ'을 거꾸로 하면 '우'자 같다고 하는 애들도 있었고 옆으로 하면 '아'자 같다고도 했다. 이전의 아이들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이 아이들이 2학기 말 때의 변화를 기대도 하고 궁금도 하다. 말글살이를 자연스럽게 한 아이들이 어떤 문장을 쓰게 될 것이고 어떤 말과 표현을 할지가 너무 궁금한 것이다. 여전히 빠르게 해결하려 하고 대충하려 하는 아이들이 곳곳에서 보이지만, 그것도 시간을 보내면서 차츰 나아질 거라 믿고 믿어 본다.
끝으로는 도형단원의 마무리로 일본의 그림책 작가 다치모토 미치코의 <동그라미 세모 네모 나라의 임금님>을 함께 보며 시작을 했다. 수학나라 공책에 도형으로 다양한 모양을 만들기 전에 했어야 했던 그림책이었다. 준비를 해 놓고도 자꾸 잊어버려 마지막 시간에 정리하는 차원에서 했는데, 애들이 재미있어 한다. 세상에 동그라미, 세모, 네모 나라가 있었는데, 꾸미기를 좋아하는 왕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공주를 맞이 하기 위해 성안을 이곳 저곳 꾸미며 빈곳을 도형으로 채워나간다는 이야기. 이 책은 도형의 시작이나 마지막에 다루어 도형의 시작과 마무리를 하기 위한 준비로 괜찮겠다 싶었다.
5교시에는 내일 초대하게 된 김윤정 작가의 <똥자루 굴러간다> 그림책을 보여주며 시작을 했다. 마을에 엄청 나게 큰 똥자루를 눈 이를 한 장군이 찾아 나서면서 시작하는 이야기. 필시 이 정도의 큰 똥을 눈 이는 큰 인물이 될 거라며 왜군의 침략을 막을 장군감을 찾아나섰는데, 알고보니 처녀였다는 것. 여자라도 상관없이 나라를 지키는 일에 처자를 부장군으로 임명하고 힘만이 아니라 슬기와 지혜로 왜군을 물리친다는 이야기. 내일 김윤정 작가는 이 책으로 1인 동극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책 선물도 나누고 사인도 받게 할 것이다. 실제로 그림책을 지은 분이 우리 교실로 온다고 하니 아이들은 너무도 좋아한다. 내일 아이들에게 정말 유익한 시간이길 바란다.
남은 시간에는 아이들의 요구로 세 아이가 나와 가족과 가계도를 설명하게 했다. 어제도 그랬지만, 이렇게 아이들 가족의 가족을 만나게 되니 이 아이들의 존재가 새롭게 다시 받아들여졌다. 참으로 귀한 아이들. 가족의 가족으로 이어져 태어난 자신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설명하고 싶어하는 아이들. 모두가 아름다운 일이고 아름다운 수업을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 주었다. 이 글을 쓰는데, **가 나한테 와서 물을 튕기며 장난을 친다. 자기 얼굴 쪽으로 보라고 하더니 손에 묻는 물을 튕긴다. 에고 내가 못 살겠다. 오늘 일기도 이렇게 마무리 지려 한다. 일기를 마무리 지으려 하는데...@@가 와서 내 뒤에서 어떻게 일기를 쓰나 한다. 그리고는 가면서 한 마디를 던진다.
"빠빠이~ 선생님~"
에고 녹는다 녹아~. 이 아이들 하고 오늘도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