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4.)
오늘 6교시 수업이 있는 날.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은 수업으로 돌입해야 하는 날. 첫 시간은 국어로 겹모음의 마지막인 'ㅚ, ㅟ, ㅢ'를 익히도록 했다. 두 홀소리가 만나 다른 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거부감이 없어 보였다. 함쳐 읽는다는 것에 뒤 따라오는 두 아이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는 듯했다. 첫 배움책으로 소리를 익히고 글자를 만나며 쓰고 따라 읽고 공책에 테두리 집을 짓고 크레파스로 크게 겹모음을 쓰고 관련 낱말을 이어가는 과정은 이제는 매우 순탄했다. 세 장을 그리라고 하면 알아서 그린다. 아직 사각 크레파스에 자신의 힘을 원활하게 넣지 못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크게 문제가 돼 보이지는 않았다. 관련 낱말도 서로 확인해 가며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의 속도와 관심으로 내용을 채워 나갔다. 그렇게만 해도 두 시간이 흘러간다.
흘러가는 끝자락에 오늘 배운 글자와 관련 있는 그림책 <까마귀 소년>을 함께 만나 보았다. 오늘은 직접이 아닌 실물화상기로 보여줬다. 가까이서 보게 할 때, 조금은 불편해 하는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이 몰리면서 서로 장난치고 집중력이 떨어져 보이는 듯해서 오늘은 실물화상기로 바꾸었다. 더구나 좀 더 자세히 그림을 보여주고도 싶어서이기도 했다. 마룻바닥 밑에 숨어 있는 아이를 확대해서 보여주거나 자신을 따돌리는 아이들과 무서운 얼굴로 처다보는 교사를 피하고자 하는 소년의 눈빛과 눈 모양을 보여주고도 싶었기 때문이었다.
"자, 우리 표지부터 보자."
"선생님, 전 두 번이나 이 책을 봤어요. 그런데...."
"잠깐만, 미리 다 이야기 해 버리면 재미가 없으니까 거기까지."
"네."
"자, 뭐부터 볼까?"
"제목이요."
"맞아요. 제목이 뭐지?"
"까마귀 소년."
"제목이 까마귀 소년인데, 왜 그럴까?"
"그림에 까마귀가 보여요."
"주인공 얼굴이 까마귀처럼 생겼어요."
"무섭게 생겼어요."
"여자 같은데."
"아니야. 남자야."
"그런데 이 아이의 표정이 어때?"
"어디를 바라보는 것 같아요?"
"까마귀 소리를 내는 것 같아요."
"어...00는 그렇게 보이는구나."
"표정이 밝아보여요."
"나중에 나 이 그림책을 보고 나서 왜 이런 표정을 지었는지 확인해 보자. 누가 또 이 표정에 대해 맞혔는지도."
"이 책을 쓴 분은 야시마 타로라는 분이야. 우리나라 사람인 윤구병선생님이 해석을 했고."
"출판사는 비룡소네. 비룡소 출판사 읽는 책 있지?"
"내, 저 있어요. 말놀이 책이 비룡소 거에요."
"그렇지...저는 알았는데, 까먹었어요."
"저요! 만복이네 떡집이 비룡소 거예요."
"맞다. 맞아. 이제 출판사를 보기 시작했네."
"저번에도 선생님이 이야기 했는데, 아직도 책 볼 때 표지를 대충 보고 넘기는 친구들 있어라. 책 표지를 제대로 안 보면 제목도 잘 기억을 못하지만,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표지에서 어떤 답을 만날 수도 없어요. 내가 읽은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표지를 보며 잠시 생각해 보다가 넘겨 보는 습관이 필요해요. 잊지 마요~"
"선생님, 우리 엄마는 책 읽을 때, 그냥 바로 넘겨요."
"그럼, 어머니한테 꼭 말씀해 드려요. 꼭 봐야 한다고."
"네~"
이렇게 만난 <까마귀 소년>의 그림책을 나도 이번으로 따지면 열 번이나 본 것 같다. 1학년 입학 시절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땅꼬마라 불리는 아이. 놀림과 무시를 당하며 사는 게 싫어 학교를 와도 주위만 둘러보며 공부보다는 자연을 만나던 아이. 그 아이가 6학년이 되면서 새로 만난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주를 세상에 알리게 된다. 그 재주는 다양한 상황에서 까마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그 소리에 빠져든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졸업한 이후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 아이를 반갑게 대한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에 아이들도 모두 빠져들며 그렇게 시끄럽던 아이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그렇게 활동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이들 가슴을 울리는 무엇이 있었던 것 같았다. 한 두 마디 질문만 던지고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아니 내 생각이랑 같은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고는 그림책 읽기는 거기서 마무리를 지었다. 때로는 많은 말들이 필요 없을 때가, 때로는 많은 질문이 필요 없을 때가 있다.
다음 수업은 수학. 그동안 가르기와 모으기, 특히 가르기를 10 가르기와 10 이상의 수로 가르기를 해 왔지만, 충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 주 전 부모님들에게 부탁했던 10구 달걀판을 꺼내게 했다. 아이들에게는 바둑알을 10개씩 나누어주고 반대쪽에 스티커를 붙이게 했다. 그리고는 달걀판에 바둑알을 한쪽면만 넣고 가볍게 위로 던지고 나서 10개가 어떻게 나뉘어졌는지를 확인하도록 했다. 그것을 다시 수학나라 공책에 적어 놓게 했는데, 아이들이 다들 재미있어 했다. 가볍게 던져 받는 게 관건이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큰 무리가 없었다. 바둑알이 만들어준 가르기를 담임인 내가 한 것과 견주어 누가 12개의 10 가르기 표시를 마치 빙고하듯 다 동그라미를 치느냐로 게임을 진행했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도 아이들이 10으로 가르기를 한 수를 다 이해하느냐다. 순간순간 물었을 때, 여전히 헤매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조금씩 감각을 높일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10 가르기 수로 모인 땅을 먼저 차지하는 게임을 해서 색을 많이 칠해보는 게임도 하면서 좀 더 감각을 높이도록 했다.
하지만 여전히 게임을 게임으로만 여기고 그것을 빠르게 흡수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교과서대 로만 해서는 너무도 짧게 끝나서 이 부분을 채워내기 힘든 것도 사실이긴 하다. 이런 놀이마저 없다면 지루한 활동이 되는 것은 분명한데....시간이 부족해 보이지 않았던 활동이 시간이 부족해지는 순간들이 보여 다음주부터는 시간을 늘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내내 10 가르기와 모으기를 완성해내고 수학익힘은 집에서 차근차근 해오도록 안내해야 할 것 같았다. 다음주에는 수세기 마당을 열어 이 과정 모두를 완성해 내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오늘도 속도가 늦은 두 아이를 보면서 따로 수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두 아이의 보호자와 함께 실질적으로 이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오늘 점심시간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더욱 더 말은 많아지고 돌아다니는 녀석들도 늘어나는데, 도무지 내 말을 콧구멍으로라도 듣지 않는다. 내가 뭐라해도 그때 뿐이고 마냥 웃는다. 때때로 엄하게 뭐라고 하는데도 내 본질을 알아챈 녀석들은 다시 떠들고 또 다시 일어난다. 한 녀석이 밥은 제대로 먹지도 않고 돌아다녀서 장난 삼아 물었다. 그런데 답이 가관이다. 에고, 내가 미처, 미처~~~~~
"00아, 너 요즘 너무 돌아다니는데? 그만 하고 밥 먹어."
"네, 헤헤."
"00아, 너 전에는 안 그랬잖아? 너 사춘기야?"
"뭐라고요? 살충제라고요?"
"뭐, 살충제? 에고, 에고..."
마침 내 워치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그러고 뜨는 메시지
"소음 레벨이 90dB에 다다랐습니다. 약 30분 동안 이 레벨에 노출되면 일시적인 청각 손실을 입을 수 있습니다. 이 환경에 장기간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영구적인 손상을 입....."
나이 50 중반에 청력 걱정을 해야 할 판....에고 난 1학년하고 만날 이러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