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대장 아저씨는 곧장 예전처럼 코트에 나오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지내지도 않았다.
나는 원고 청탁에 쫓겨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원고 마감을 맞추느라 세상과 단절된 듯 지내던
어느 날, 그의 카톡이 도착했다.
"시청 상담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 운동 끝나고 먹을 막걸리값은 벌어야지."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속엔 그의 특유의 너스레와 외로움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연금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을 텐데. 그는 굳이 일을 시작했다.
"노년의 외로움도 달래고, 손주들 용돈이라도 챙겨줄 수 있잖아."
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그 뒤에 숨은 마음은 분명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쓸모 있는 존재라는 확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막걸리값을 위해 시작했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가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애쓰는 모습 같아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도 걱정은 남았다. 병원에서 막 퇴원한 몸인데, 다시 무리하는 건 아닐까. 그의 쓸쓸한
뒷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책상 위 원고의 문장들이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청 상담실은 아침부터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민원인의 목소리는 대개 날카롭거나 지친
톤이었다. 잃어버린 서류를 찾지 못해 울먹이는 노인도 있었고
공무원에게 억울하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중년 남성도 있었다.
대장 아저씨는 늘 정장에 가까운 단정한 차림으로 출근했다.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 차근차근 같이해봅시다."
그가 민원인을 대할 때면 경찰 시절의 기개 대신 부드러운 배려가 묻어났다.
상대방이 화를 내도 결코 맞받아치지 않고 오히려 등을 두드리며 웃어 보였다.
"내가 젊을 때는 더 억울한 일도 많았지요.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겁니다."
그 말 한마디에 화를 내던 이들이 한풀 꺾이곤 했다.
상담실 동료들은 그를 '베테랑 해결사'라고 불렀다. 경찰 시절의 수많은 경험이 있었기에,
억울함과 분노를 이해하는 데 능숙했다.
민원인들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그 친절한 상담관 아저씨'라며 입소문을 냈다.
퇴근길, 그는 종종 코트장에 들러 막걸리 한잔을 기울였다.
"오늘도 별별 사람들이 다 왔다니까. 세상은 참 복잡해."
그러면서도 피곤한 기색은커녕,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 있다는 사실에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그의 웃음 뒤에 감춰진 피로와 외로움이 보였기 때문이다.
상담실은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그의 또 다른 전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일도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 다시 라켓을 잡기 시작했다. 처음엔 괜찮아 보였다. 상담실에서 하루 종일 민원인을 상대하고 퇴근 후에는 운동장 코트로 향했다.
라켓을 잡는 손은 여전히 단단했고 발걸음도 또래에 비하면 가볍게 보였다. 그는 늘 말했다.
"운동을 해야 정신이 또렷해진다니까. 가만히 있으면 벙이 와."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상 신호가 드러났다. 스트로크가 흔들리고, 네트 앞에서 발이 늦게 반응했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내가 조심스레 묻자 그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이 정도는 운동 부족이지, 무슨."
그러나 상담실의 하루는 생각보다 버거웠다. 민원인들의 분노와 억울함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일,
그것은 체력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갉아먹는 고된 일이었다.
그는 상담 중에도 종종 안경 너머로 관자놀이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