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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와 누 Sep 06. 2020

<프로젝트 파워> 긍정해보기

<테넷>과 비교하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일단 글을 시작하기 전에 솔직해지자. <프로젝트 파워>(2020, 헨리 유스트/아리엘 슐만)는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 줄거리는 어디선가 본 거 같고, 스크린에서 빛났던 배우들은 모니터로 보니 생기가 없으며, 이야기의 긴장은 부족하고 짜임새는 헐겁다.     

 그나마 프랭크(조셉 고든 레빗)가 <더티 해리>(1971, 돈 시겔)의 해리(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따라 하는 장면은 마음에 들었다. 요즘 영화서 들으면 민망한 대사를 하는 것도 모자라, 조셉 고든 레빗의 이미지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거친 척이 안 어울려 웃겼다.

               

   내가 넷플릭스 영화에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넷플릭스 영화는 킬링타임으로 틀어놓고 설렁설렁 딴짓을 하면서 봐도 될 것이다. 사실 <프로젝트 파워>의 감독도 그러면서 봐라고 영화를 만든 것 같긴 하다. 짜임새가 없는 헐거운 영화의 장점이란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대강의 내용이 짐작된다는 게 아닐까? 거기다 화려한 CG라는 볼거리까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짜임새란 측면에서 영화를 생각하니 우린 <프로젝트 파워>와 같은 시기에 개봉한 <테넷>(2020, 크리스토퍼 놀란)을 떠올릴 수 있다. 놀란은 여전하다. 철저한 설정을 위해 <인터스텔라>(2014)에 이어 이번에도 물리학자에게 대본을 검토받았다. 이런 철저함을 바탕으로 놀란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짜임새는 또한 훌륭해서, 영화가 어렵더라도 빠져들 수 있다.     

 그렇다면 방금 짜임새가 헐거운 영화를 까 내렸으니 난 놀란을 좋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막상 놀란을 좋아하긴 또 싫다. 연모하던 남자가 놀란을 좋아한다고 하자 “놀란이요?!”라고 말하며 어이없어했던 영화인(人) 찬실(강말금,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 김초희)) 정도는 아니고, 그저 놀란을 평범한 감독 중 하나라 생각한다.

   난 영화가 짜임새 있음과 헐거움을 양 끝으로 가지는 척도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좋아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영화가 짜임새 있게 이야기를 꾸려가더라고 결국 어느 지점에서는 도저히 이야기를 앞으로 밀고 나갈 수 없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야기를 헐거운 상태로 두는 게 아니라 그냥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얼렁뚱땅함은 이상하게 보는 사람을 감탄시킨다. 하지만 놀란은 자신의 영화에서 그런 지점이 생기지 않게 비효율적인 정도로 공을 들인다. 앞서도 말했던 물리학자에게 검수받고, 영민하게 이야기를 조직해 나가는 행위가 해당 예시이다. 결국 어떻게 해서 놀란은 한순간도 빈틈없이 이야기를 만들지만, 대가로 영화를 너무 길게 만든다.

          

   적고 보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이 안될 것 같음을 알겠다. 결국 놀란이 가지지 못한 얼렁뚱땅함을 말하기 위해, 내 어휘력이 부족하고, 지금부터 말할 예시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얼렁뚱땅함의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영화를 예로 들겠다. 그 영화는 <기병대>(1959, 존 포드)이다. 북쪽으로 돌아가려는 북군 말로우 대령(존 웨인)은 영화 말미에 위기에 처한다. 뒤에서 남군이 쫓아오고, 다리 건너 북군의 땅에서도 남군이 대기하고 있다. 절체절명의 상황. 당연히 말로우 대령은 영화의 피날레를 위해 다리를 건너 돌진한다.     

 그런데 그 후 벌어지는 결정적인 신은 황당하다. 남군은 당연히 돌진하는 북군을 향해 엄청나게 대포를 쏴대는데, 그 많은 대포알 중 어떤 것도 다리를 맞춰서 무너뜨리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저 다리는 진즉에 무너졌어야 했다. 심지어 남군의 대포 뒤에서 다리를 건너 돌진하는 북군을 찍은 숏이 있는데, 이 대포는 발사되지 않고 허무하게 북군의 침입을 허락한다. 개연성과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는 숏들의 연속. 그렇게 말로우의 위기는 말이 주둔지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포드가 좋아하는 신으로 얼렁뚱땅 넘어간다.

      

   이러한 장면은 <테넷>도 그렇고 놀란의 영화에서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프로젝트 파워>엔 이런 순간이 존재한다. 관객은 아트(제이미 폭스)가 적에게 구금당해 자신의 능력이 딱총새우임을 장황하게 설명할 때, 딱총새우라는 이름이 웃긴 건 둘째 치고,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즉 그의 액션 신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초능력은 아마 빠르게 때리는 것이다. 딱총새우가 사냥할 때 순간적으로 주변 온도가 태양의 온도만큼 뜨거워진다니, 그가 공격할 때마다 몸에 불이 붙는 멋있는 연출도 있어야 한다. 영화 2시간 내내 한 번도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그 정도는 해야 한다.     

 하지만 아트가 마침내 능력을 쓰는 순간, 그는 액션을 보여주기는커녕 폭발한다. 말 그대로 온몸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온다. 사방으로 퍼지는 화염은 날아오는 총알도 부수고, 비를 증발시키고, 주변 모든 적을 해치운다. 또한 무차별적인 폭발을 어떻게 제어하는 건지 인질로 잡혀있던 소녀 로빈(도미닉 피시백)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이 단순하고 CG를 써서 눈 아픈 신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였다. 대체 주인공이 가만히 서서 팔을 휘적거리는 게 전부인 피날레라니, 말이 되는가?

          

   그런데 영화를 보고 며칠 동안 생각하니 이 신이 그렇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 파워>는 자신의 짜임새 없는 이야기를 맺기 위해 그냥 냅다 폭발했다. 이 단순한 신으로 영화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치고 해피엔딩으로 넘어갔다. 짜임새가 있는 이야기의 연쇄이든 없는 이야기의 연쇄이든, 그 연쇄를 뛰어넘는 얼렁뚱땅함. 그러고 보니 프랭크가 좋아하던 <더티 해리>에서도 이런 장면이 있었다. 형사 해리가 영화의 끝도 아니고 중반에 너무 빨리 범죄자를 잡아 구타할 때, 냅다 하늘로 상승하던 헬리콥터 숏 말이다. 그 숏도 신을 강제로 끝내고 얼렁뚱땅 <더티 해리>의 위기를 모면했다. 확실히 <테넷>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파워>도 영화이긴 영화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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