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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와 누 Dec 20. 2020

다섯 번째 자유

비디오게임에 관해

※ 본 글은 「'다섯번째 자유'와 게임...」에서 영감을 받았다. 「'다섯번째 자유'와 게임...」을 읽지 않아도 본 글을 읽는 데에는 무리가 없겠지만, 비디오게임에 관심 있다면 다소 장황하더라도 해당 글을 읽어 보길 권한다. 해당 글의 저자는 자신의 티스토리에서 지금도 계속해 비디오게임에 관한 글을 적고 있다. 난 그만큼 성실하게 비디오게임에 관한 리뷰·칼럼·고찰 등을 생산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여기 링크이다.     

   다섯 번째 자유란 <스플린터 셀: 블랙리스트>(2013, 이하 <블랙리스트>)에서 나온 개념이다. 루즈벨트가 제안한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네 자유들을 넘는 자유가 필요하며, 그것이 다섯 번째 자유이다. 뭔 소린가 싶겠다. 그러니 글 보단 해당 게임에서 다섯 번째 자유가 행사되는 순간을 직접 보자. 4분 5초부터 4분 50초까지 보면 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의 고문을 견디지 못한 미 국방장관은 결국 기밀을 불려고 한다. 그리고 그 순간 플레이어블 캐릭터 브릭스는 국방장관을 죽인다. 이때 비디오게임은 플레이어를 향해 “EXERCISE FIFTH FREEDOM(다섯 번째 자유를 행사하라)"이란 자막을 띄운다. 그렇게 행사된 다섯 번째 자유에 의해 테러리스트들은 더 이상 미국을 위협하지 못하고 미국인들의 네 자유는 보장된다.

 해당 장면은 흔히들 이야기하는 미국 패권주의의 극단적인 예시로 보인다. 미국 군인이 미국을 위해 월권·불법행위를 마음껏 저지르며 폭력을 휘두르는 영화들과 <블랙리스트>는 비슷하지 않은가. 이런 영화·비디오게임에서 미국 군인은 미국의 화신이나 마찬가지이며 그가 휘두르는 패권이 곧 미국의 패권이다. 단지 보통의 경우 미국 군인은 미국의 적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지만, <블랙리스트>의 미국 군인은 미국에 위협이 간다면 미 국방장관에게도 폭력을 휘두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기서 미국 군인은 타인들이 누리지 못하는 다섯 번째 자유를 누리며, 그렇기에 타인들이 속한 네 가지 자유와 그 자유들에 기반한 사회·계(system)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그 계를 결정짓는 힘을 가진다. 그는 서부극의 카우보이처럼 한 체계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체계 밖에서 체계를 통제한다.


   이렇게 길게 말했지만 안타깝게도 난 본 글에서 미국 패권과 관련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 뻔해서 재미없다.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다섯 번째 자유가 플레이어의 자유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상상해보자. 브릭스가 미 국방장관의 목을 붙잡고 X 버튼을 누르라고 자막이 뜬 순간, 플레이어가 X 버튼을 누르지 않고 버텼다고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아마 유명무실해진 ”EXERCISE FIFTH FREEDOM"이란 자막, 계속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느라 힘들어 보이는 국방장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영원히 계속되는 테러리스트와 브릭스의 대치라는 난센스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즉 플레이어는 비디오게임이라는 계에서 벗어난 동시에 그 계가 난센스에 빠지지 않고 계속 진행되게 만들 수 있는 다섯 번째 자유를 지닌 권력자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디오게임을 비판할 수 있다. 비디오게임은 플레이어의 권력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며 권력의 행사, 즉 폭력을 가르친다. 통제에 대한 환상과 야망. 「'다섯번째 자유'와 게임...」에서 말한 것처럼 비디오게임에 나타나는 폭력은 비도덕적인 게 아니라, 모든 것을 도덕적으로, 플레이어의 질서 속으로 편입시키려는 힘이다.


   그런데 플레이어의 다섯 번째 자유가 어떻게 행사되는지 본다면 사태는 복잡해진다. 플레이어는 비디오게임이 명령할 때만, “EXERCISE FIFTH FREEDOM"이라는 자막을 띄워주고 X 버튼을 누르라고 할 때만 다섯 번째 자유를 행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는 비디오게임의 명령을 받아 비디오게임을 통제한다. 이상한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저 유명한 <Call of Duty> 시리즈, 직역하면 <의무의 부름> 시리즈의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플레이어의 자유를 제한하고 임무만을 따르게 만들었다고 일컬어지는 <Call of Duty 4: Modern Warfare>(2007)을 생각해보자. 플레이어는 지도상에 표시된 지점으로만, 비디오게임이 명령하는 대로만 이동해야 한다. 그는 의무의 부름에 순응한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자유를 누린다. 예컨대 자카에프를 쏘는 순간, 마우스 클릭으로 방아쇠를 당겨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순간, 방아쇠는 플레이어에게 맡겨진다. 따라서 의무의 부름에 따른다는 것은 단지 순응하는 게 아닌, 언젠가 행사될 다섯 번째 자유를 기다리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Calll of Duty> 시리즈는 비디오게임과 플레이어 사이의 독특한 관계를 드러낸 시리즈라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통제하려고 안달 난 비디오게임과 플레이어. 서로가 서로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관계.  따라서 글을 맺으며 비디오게임을 극단적인 권력의 유희를 나타내는 매체라고 정의 내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하지만 비디오게임은 <블랙리스트>나 <Call of Duty> 시리즈 외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예컨대 다른 플레이어와 함께하는 게임이어서 비디오게임과 플레이어가 일대 일 관계를 형성할 수 없는 멀티플레이어 게임, 또는 비디오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쥐어주는 의무가 없는 샌드박스형 게임은 우리가 지금까지 한 논의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계속 탐구해나갈 가치가 있겠다. 조금 더 나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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