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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Aug 23. 2023

쉴만한 틈새

뉴스레터 <막차> 16호 백업


입추가 지났다더니 더위가 확연히 한풀 꺾인 느낌이다. 최근 소셜 미디어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유럽이며 동남아, 국내 곳곳으로 휴가를 떠난 모습을 볼 수 있다. 풀빌라에서 수영하는 멋진 모습을 찍어 올리기도 하고, 날씨 좋은 곳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브런치를 먹는 모습을 보다 보면 여름을 아주 그냥 만끽하고 있구나, 싶어진다. 아직 미루느라 가지 못하는 해외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내심 부럽기도 하지만, 가장 부러운 것은 그것이 확실한 휴가(!)라는 사실.


올해 여름은 의도치 않게 아무데도 가지 않고 늘 있던 생활 반경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디든 한번쯤 가볼 법도 한데, 큰 일정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정작 내 휴가 계획은 애매한 채로 내던져지게 되었다. 어차피 아직 학생이니까 언제 어디든 가면 되잖아요!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늘 일상에 잔존하는 부채감(읽을 책도 많고 논문 주제도 정해야하는데 난 왜 이리 아는게 없을까…)이 발목을 잡는다.


어차피 맨날 노는 것 같은 이 기분, 굳이 휴가를 가야하나? 싶긴 하지만, 알다시피 대학원생이란 제법 시간에 휘둘려 살아가는 공부형 프리랜서다. 계획을 제대로 구상하지 않고 살다보면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 8월 중순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정말 생각없이 산 건 아니고, 물론 막차도 쓰고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가끔 약속도 나가고 덕질도 하고 반짝 아르바이트도 해보지만 마냥 속 편하게 공부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 공부가 제일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그러다보면 이런 생각이 슬금슬금 밀려오기 시작한다. ‘차라리 일을 하면 출퇴근해서 주어진 일 하면 되고 마음은 편할지도 모르는데…’(이 글을 읽는 모든 직장인 친구들에게 미리 무릎 꿇고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어디든 쉬운 일은 없다지만 남의 떡이 항상 커보인다고, 제한된 상황에서 확실한 해방을 찾는 진짜 ‘휴가'의 기분을 조금은 느껴보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를 주면 그 안에서 한계를 찾고, 또 한계가 있으면 답답해 하는게 인간의 본성 아닌가. 휴가철 수영장에서 소금이 둘러진 마가리타에 빨대를 꽂는 것도 좋지만, 노트북으로 재미없는 공포영화를 틀어놓고 과자와 500미리 맥주를 따는 일도 좋다. 그것도 버거우면 그냥 냉수를 냅다 들이켜고 하루 푹 잠들어 버릴 수도 있다. 이쯤되니 진짜 휴가와 가짜 휴가를 구분해 봤자 무슨 소용인가 싶다. (어차피 연차를 쓰거나 학교, 기족, 친구, 나 자신에게 양해를 구하는 일은 모두 다 똑같을진대) 지독히 치여사는 일상 가운데서 나만의 돌파구를 찾으면 그게 바로 ‘쉴 틈'이다.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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