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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Aug 23. 2023

아프면, 억울하니까

뉴스레터 <막차> 17호 백업

코로나와 공존한 지 벌써 2년 반, 러시안 룰렛같은 이 역병이 나에겐 언제쯤 찾아올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콘서트를 다녀온 줄줄이 걸릴 때도, 코로나에 걸렸다던 친구와 밥을 먹었을 때도, 같이 사는 가족이 걸렸을 때도 슉슉 잘만 피해갔던 코로나. 이쯤이면 걸릴 때도 됐는데… 역시 걸렸다 나은건 아닐까? …근데 그게 지금이었을 줄이야.


걸렸다 나은 것 같다는 말은, 명백한 개소리였다. 정말로 얕게 걸렸다 나은 적이 있을 순 있지만 어쨌든 코로나는 ‘걸리면 무조건 알게 된다'는 법칙이 맞았다. 버드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뒤 바로 다음 차례가 나였다. 열, 근육통과 몸살, 오한, 기타 등등 나열된 증상들을 모두 겪고나니 생각보다 코로나가 꽤 심각한 병임을 깨달았다. 위드 코로나 시대, 이젠 한번쯤 앓고 지나가야된다는 점을 인정하긴 했지만.


그동안 부지런히 돌아다닌 탓인지 격리 일주일은 정말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한데 연결되어 있어서, 아픈 때에 에너지를 쓰는 일이라면 뭐든 힘에 부치게 된다. (그러니 8월 한달동안의 막차 2회 휴재는 버드와 이저의 눈물의 코로나 격리기간이었다는 사실.) 첫 이틀은 화면을 들여다보는 일조차 속이 울렁거려서 시체처럼 잠만 자기도 했다. 약을 챙겨먹으니 조금 나아져서 이런 저런 영상물을 보며 하루를 채우긴 했지만. (이후엔 냄새가 안나서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일주일 푹 쉬어서 말끔히 나았다면 기분이라도 나을텐데, 요즘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확연히 떨어진 체력이다. 소화도 잘 안되는 것 같고, 운동은 커녕 밖에 좀 나가 일을 보려 하면 귀신같이 식은땀이 난다. 기저질환으로 먹고 있던 약을 일주일 끊었더니 원래 있던 증상이 훨씬 심해지기도 했다. 어? 내가 그동안 건강하게 살아 보려고 술도 끊고 운동도 꼬박꼬박 했는데! 억울하다. 고작 코로나 일주일 앓는 일이 이렇게 큰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제일 슬픈건 체력, 힘이 없으니 주변을 살피는 일도 줄었다는 점이다. 평소엔 잘만 답하던 사소한 연락들도 방해로 느껴지고, 이렇게 집중해서 써야하는 에세이도 쓰기 싫어지고, 밥 챙겨 먹는 일도 귀찮고, 키가 새 솔로 앨범을 냈다는데 재생버튼을 누르는 일조차 부담이 된다. (그러니 혹시 지난 2주간 소홀함으로 여러분을 서운하게 한 일이 있다면, 죄송하단 말씀을...) 심지어는 이번 학기 등록금 내는 일을 깜박 잊기까지 했다. (다행히 우리에겐 추가신청이 있다.)


뭘 하고 싶어도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절절하게 실감한 8월 말이다. 비록 등록도, 수강신청도 정신없이 놓쳐버렸지만 서서히 회복해야지. 그래도 어떡해. 맛있는거 챙겨먹고, 재밌는거 챙겨보고, 이겨내야지. 당분간 운동은 못하더라도 푹 쉬는 일에 재미를 찾아야지. 남을 돌보는 일에는 나를 돌보는 일도 포함되어 있으니. 힘을 내야지. 막차에 탑승하신 여러분도, 부디 부드럽고 건강하게 한주를 보내시길!


그리고 코로나, 정말로 조심하세요!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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