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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Aug 23. 2023

이 지독한 중독에 버려지다니

뉴스레터 막차 15호 백업

어딘가 깊이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적이 있는가? 자꾸만 생각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편해 잠 못 이룬 적은 없는가? 근질거리는 입이나 손을 가만히 놔두느라 애쓴 적은? 이렇게 쓰고 보니 꼭 짝사랑의 경험을 묻는 것도 같다. 어쨌든 혹자도 '사랑은 병, 중독, overdose.'라고 하지 않았나. 


중독이라는 단어의 힘은 무시무시하다. 우리는 온갖 단어에 중독을 붙이며 삶의 위협 요소로 낙인을 찍어 낸다. 알코올 중독, 니코틴 중독, 게임 중독, 스마트폰 중독, SNS 중독... 물론 좋은 데에 쓰는 일도 없지 않다. 하지만 독서 중독, 공부 중독이라는 말은 글쎄, 수능 만점자 인터뷰에서나 볼 일이다. 


그러나 오늘은 단어의 엄정함에서 한발짝 물러나 다소 취미적인 중독들을 바라보려 한다. 최근 중독된 게 있다면 여기 털어놓아 보자. 운동 중독(최근 이저는 여기에 꽤 빠져있다), 컨텐츠 중독, 수집 중독, 난 너에게 중독(멜로디로 들린다면 당신도 케이팝에 중독된 것이다), 여러가지 중독이 있겠지만 단연컨대 나에게는 '밈meme 중독'이 일등이다. 


최근 영화 <헤어질 결심>을 봤다. 밈에 중독되는 것에 모자라 밈적 사고를 중시하는 이저의 친구들은 제발 영화 좀 봐달라고 사정했더랬다. 영화의 미장센이나 유의미와는 별개로, 그 속의 수많은 대사들을 밈으로 공유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헤어질 결심> 봐야할 이유가 오로지 이것밖에 없는데 어떡해요. 나는 결국 그 영화를 봤고, 곧바로 다음 술자리에서 쿨하게 지각을 해놓고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라며 뻔뻔하게 외치는 사람이 되었다. 


SNS에 찌든 밈적 사고(부정하지는 않겠다)가 우리의 언어 사용을 퇴화시킨다는 이야기가 만연하긴 하지만, 사실 난 밈으로 가득한 역동적인 대화를 좋아한다. 음 OO아, 소고기 맛있다~ 그래애? 소고기는 누가 꾸워도 맛있엉. 고맙다고 말한걸까 무시한걸까?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울 때조차 빌려온 말들로 가득하지만 실은 툭 던지면 탁 받는, 핑퐁처럼 가볍고 경쾌한 밈적 대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밈적 대화에는 맥락의 표면에 머무르며 서로의 상황을 밈으로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아는 깊이가 존재한다. 밈을 주고받고 웃을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공감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감정을 느끼고, 차용한 대화에 서로를 비유할 수 있다는 것. 지금 몇 시야? 섹시. 핫핫핫. 따위의 헛소리 밈 중독에 빠진 우리가 밈과 헤어질 결심을 하기엔 너무나 어렵다.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이 지독한 밈 중독,

인정하는구나, 마침내. 


*밑줄을 클릭하면 밈의 출처를 찾을 수 있을지도?


2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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