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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Aug 23. 2023

항해

뉴스레터 <막차> 13호 백업


비록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지만, 나에게 바다는 그리 멀리 있는 곳이 아니다. 휴양지를 어디로 해야할지 고민하다보면 바다에 인접한 도시 이름들이 자연스레 줄줄 나온다. 속초, 여수, 부산, 제주… 굳이 바다여야 할 이유는 없지만, 빌딩숲에 갇혀 살다보면 시원한 바다 생각이 절로 나는 것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과 달리 독일에서는 바다를 보는 일이 아주 드물다. 독일에서 바다를 보려면, 덴마크와 인접한 가장 북쪽, 킬(Kiel) 지방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오죽하면 어떤 독일인이 “한국에도 바다가 있어? 한국의 바다는 어떤 색이야?”라고 물어봤을 정도라니. (이 질문의 끝에 일화의 주인공이 동해, 서해, 남해의 색이 다르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설명했다는 아름다운 후일담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자란 여러분은 한번쯤 해수욕장에 가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밀어주는 튜브를 타고 떠다니가 팔다리가 온통 그을려본 적도 있을 것이고, 친구들과 파도를 맞으며 깔깔 웃어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혹은, 해변을 홀로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도 해봤을테고. 맥주와 회를 까놓고 불꽃놀이를 했을 수도 있고.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바다를 보는 일은 여전히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대로, 흐리면 흐린대로 바다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멈추지 않고 들숨 날숨을 내뱉는 파도, 먼 언저리에서 꼭 반으로 접힐듯한 길다란 수평선, 부드럽거나 거치게 밟히는 모래와 한껏 반짝이는 윤슬의 둥그런 모양새. 그런 것들을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기도 하고,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며 자유로움을 만끽하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밤의 해변은 꼭 소등된 세상처럼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깊은 어둠같은 까만 바다가 있다. 광안리 해변처럼 빛나는 대교가 있다면야 모를까, 수평선이 있던 자리에 빛이 없는 바닷가는 물도, 하늘도, 땅도 구분되지 않는다. 그런 밤바다를 보고 있자면 시원한 행복보다는 두려운 느낌이 절로 들기 시작한다. 아주 먼 바다를 암시하는 그곳은 헤엄쳐 갈 수도 없고, 배를 띄운다 해도 오로지 내가 가진 것에만 의존해야한다.


때때로 사는 일은 드넓은 밤바다에 등을 떠밀리는 것과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응시하고,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다가 지칠 때도 있다. 앞을 향해가고 있다 생각하는 순간 뒤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나침반과 등불, 심지어 내 배에 잘나가는 모터가 달려있다 하더라도 바다가 나를 밀어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사방 도움을 요청할 길 없는 끝없이 잔잔한 망망대해에 좌절하고 요동치는 파도에 짠물을 맞아가며 항해를 지속한다. 어떤 맑은 날에 새로운 육지를 발견할 수 있고 같은 방향으로 함께 흘러가는 사람과 한 배를 타고 나아갈 수도 있다.


이 세상의 끝에, 알고보면 곡선인 그 가로선을 넘어가면 무엇이 있을까. 해류가 순환하듯이 흐르다보면 멀리 떠나 있던 이들도 모두 같은 곳으로 모여들지 모른다. 남이 대신 내 배를 밀어줬으면 좋겠고, 내 말에 수긍하는 바다가 알 수 없는 목적지까지 부드럽게 인도해주었으면 바라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는다. 어느 날엔 바다에 먼저 뛰어들어야 할 일도 생길 모양이다. 이만큼 항해를 하다보면 바다 수영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나는 여전히 푸른 색 깊은 물에 빠져드는 일이 무섭다.


20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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