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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Aug 23. 2023

밤을 새다보면

뉴스레터 <막차> 11호 백업

누구에게나 똑같은 24시간의 하루가 주어져 있다는데(물론 나는 이 말을 믿지 않는다), 그 하루들이 모여 쏜살같이 하반기에 도착했다.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과제와 조교일, 취미활동 삼박자의 격무(대체 왜 콘서트는 가장 바쁜 시기에 열리는지)에 시달리며 보냈는데 이제는 밀린 사교활동들이 나를 괴롭도록 행복하게 한다.


전에는 낮에 할 수 있는 일과 밤에만 할 수 있는 일이 나뉘어있다고 생각했다.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밤에는 술을 마시거나 밀린 과제를 하는 그런 종류의 업무 분담. 그때는 ‘과제는 밤을 새서 하는 일'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했고, 술은 ‘밤에 마셔야 달콤한 약물'이라고 여겼으며, 나는 아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러니 당연하게, 모든 사람이 겪고 있는 왜 글은 밤에만 잘 써지는가?의 딜레마에 아주 오래도록 갇혀있기도 했다. 한때는 수전 손택의 글쓰기 방식을 동경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 이 글도 밤에 쓰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맹세하건대 십에 아홉은 대낮에 쓰여진 글일테다. (반전아닌 반전)


소싯적엔 밤을 정말 밥 먹듯이-밥을 밤 먹듯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어도 될 정도로-샜었다. 밤샘에는 아주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고백하자면 술을 먹다 뜨는 해를 봤던 기억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시험공부나 과제를 꾸역꾸역 해내느라 샌 밤이다. 밤샘의 상황을 복기해보자면 이런 식이다.


해가 전부 진 10시쯤 이 글을 오늘밤에는 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채감에 시달리며, 편의점 커피를 쭉쭉 빨아당기며 미적거리는 밤. 12시가 넘어 1시 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글빨'이라는게 솟아오르는데, 이는 대체로 2페이지 이상을 넘어가지 않고 3시쯤 위기가 찾아온다. 이 위기는 이 밤을 즐기며 깨어있는 동료와의 카톡을 통해 해소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안되는 경우도 많다.


4시가 넘어가면 본질적인 삶의 물음에 도착한다. “내가 이렇게 살려고 대학(원)을 다니나…” 그냥 잘까, 해내야할까의 두갈래길 사이에서 후자를 고르면 뿌듯한 밤샘으로 기록되는 것이고, 전자를 선택하면 후회로 점철된 밤이 되는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은 밤샘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작년 말부터 정하게 된 규칙 중 하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밤샘하지 말 것. 여전히 술은 밤에 먹는게 맛있는거라 여기지만, 글을 밤에 쓰지는 않는다. 취기를 빌려 무언가를 쓰는 일도 그만두었다. (실제로 아주 그럴듯 하지만 동시에 끔찍한 작업물이 나온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밤은 마력의 시간이다. 낮에는 알 수 없던 언어들이 술술 흘러나오는. 거기에 술이 있다면 흐트러진 문장을 쓰기에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왜 그만 관두었느냐고? 삶을 단순하게 만들지 못하는 밤에만 이루어지는 상상들, 너무 많은 나에 대한 생각들. 그런 것들이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별안간의 자기고백이지만, 충분히 경험해 본 끝에 대낮에도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체력 탓에 제대로 새고 싶어도 못새는 밤, 또 반대로, 밤을 꼬박 샐 수 밖에 없는 날도 올 것이다. 어쩌다 술을 3차, 4차까지 마시느라 즐겁게 밤을 샐 수도 있을 것이고, 불면의 밤으로 끙끙 앓는 밤도 있을 것이다. 새벽 비행기를 타느라 억지로 깨어있어야 할 지도 모르고,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 아닌 밤 중에 주경야독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그게 어떤 밤이 되었든, 하루를 충만하게 사는 밤이 되었길 바란다.


202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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