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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Sep 17. 2022

습습한 고민들

뉴스레터 <막차> 10호 백업

일주일 간 관절을 짓누르는 공기가 심상치 않더라니, 장마의 시작이다. 축축한 어항같은 세상을 걷노라면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만 같고, 하고 싶었던 일들도 전부 뒷전으로 미룬 채 드러눕고만 싶다. 다행히 아직 하루를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꼭 그럴 날이 오리라.(이번주는 도저히 안된다고 할까, 하는 나약한 생각을 벌써 두 번 정도 하긴 했지만.)


어쨌든 분명 이번 방학에는 이런저런 일을 해보려고 했는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제습기를 틀어놓고 밀린 방청소를 해야할까? 영화관에 가서 간만에 팝콘이나 씹으며 탑건이나 볼까? 조만간 있을 일본어 시험 공부도 해야하고, 영어 공부도 해야하는데. 학기마다 결심한 벽돌책 깨기는… 하, 귀찮다. 들어가서 일본어로 된 애니메이션이라도 보면 일본어라도 늘겠지. (최근엔 후지에서 방영했던 애니, <사이코-패스>를 보고 있다.)


종강의 기쁨도 순간일 뿐, 곧바로 찾아온 귀신같은 장마에 쩍쩍 달라붙는 발바닥을 그 자리 고대로 붙이고 있지 않으려면 술약속이라도 만들어야한다. 비오는 날은 막걸리에 파전이라지만 비가 이토록 많이 오면 뭘 먹는게 좋을지 고민도 해봐야하고.


그런데 술을 끊은 지 두달이 되어간다. 막차를 시작한 지 10회가 채 안되어 그렇게 됐다. (갑작스런 고백이지만 그렇게 됐다라는 말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술없는 술자리도 슬슬 익숙해지려 한다. 실은 요즘의 모든 고민과 계획의 중심에,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담겨있다.


운동과 식단에 관한 정보들을 검색하다보니 이제 내 인스타그램 맞춤 광고는 술이나 맛집 대신 효소, 프로틴, 운동복, 홈트 기타 등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때로는 그 끔찍한 과대광고에 홀리기도 하고.) 이 글을 빌려 버드와 합의되지 않았으며 그녀가 무척이나 속상해 할 이야기지만, 나는 당분간 음주모드(!)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생맥주를 마시는 일은 포기했어도 장마같이 지난한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술이 없다 해서 술을 먹어온 세월과 앞으로의 술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니. 이번 장마는 유난히 고민의 연속일 예정이다. (뭐, 나만 이렇게 사는건 아니니까.) 이런 의욕없는 날씨가 오래도록 지속될 때는, 그 목표를 세우기가 더더욱 힘든 법이다.


장마철을 특별히 돌파해낼 방법을 기존의 <막차>식으로 제시할 순 없겠지만, 메마른 소양강의 사진을 보며 그래. 차라리 와라 와. 실컷 비 와라. 외치는 것을 한켠 울적함의 위안으로 삼아본다.


2022.06.29



뉴스레터 <막차>는 술을 사랑하는(사랑했던!) 두 사람, 

버드와 이저가 매주 보내는 가벼운 음주사담 뉴스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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