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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Aug 23. 2023

식사의 이유

뉴스레터 <막차> 14호 백업

“언제 밥 한끼 하자.”고 말하는 사람은 다시 보기 굉장히 어려운 사람이라는 점, 모두가 알고 있을 테다.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밥 한끼 먹자.” 대신 “코로나 끝나면 보자.”고 허상의 새끼손가락에 건 약속도 셀 수 없다. 한국의 전형적이고 통속적인 인사인 언제 밥 한 끼 하자(그 외 “술 한 잔 하자.” 가 있다.)는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그 언제가 인생에 영영 다가오지 않을 것만 같다.


하루에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먹는(이저는 그렇게 하는데, 아닐 수 있지만) 그 식사 한 번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마음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너무나 반가운 친구가 갑자기 연락을 해온다면 당장이라도 그 ‘언제’를 잡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밥 한끼’가 우물쭈물 어려운 자리라면 혹시나 윗사람의 질문 폭격이 들어올까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그저 귀찮아서 먹기를 미룰 수도 있고, 혼자 요리하고 먹는 일의 자유로움을 한껏 느끼고 싶을 수도 있다.


우리는 적어도 주에 몇 번은 함께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그게 반드시 식사일 필요는 없지만, 커피든 술이든 간에 음식을 입에 넣고서야 말을 시작한다. 오래된 근황 토크부터 업무 얘기, 쓸데없는 연예인의 가십이나 최근 건너 들은 지인의 이야기까지. 별 시시콜콜한 얘기(가끔은 쓸모있는 얘기도 하지만)를 다 하다보면 우리가 이러려고 만났지? 싶은 생각도 든다.


혼자 먹는 일을 즐기기도 하지만, 특히나 반주가 고플 땐 만남이 있는 식사가 그립기도 하다. 이저가 한때 독일에 잠시 머무르던 시절, 홀로 고명없는 0.99유로짜리 태국 라면을 먹으며 넷플릭스와 함께 식사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남에게 관심 없는 이저조차 혼자 먹는 일이 2주를 넘어가자 없는 데이터로 인스타 라이브를 켠 적도 있다.(친구들이 내 요리 실력에 한탄의 댓글을 보냈지만.) 한국에 돌아와 가족끼리 모여 식사하며 이야기 듣는 일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지던지, 그럴 때마다 식사의 이유를 삶의 중요한 만남에서 찾을 때도 많은 것 같다.


방역지침이 느슨해지고 오랜 친구들끼리 모이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식당에서 마스크를 벗으며 불안에 휩싸이곤 한다. 팔팔 끓는 찌개에 숟가락을 담그며 우리는 운명공동체야, 선언하는 일도 늘었다. 함께 먹고 마시는 일이 쉽지 않은 때도 있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언제 밥 한끼 하자는 그 말, 흘려보내지 않고 술 한 번 같이 마시고 싶은 그 사람에게 오랜만에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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