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저 Aug 23. 2023

태풍의 눈

뉴스레터 <막차> 18호 백업

9월을 시작하자마자 태풍 ‘힌남노’ 소식으로 소란스러웠던 일주일이 지나갔다. 주말동안 태풍이 어디를 관통할 지 불안해하며 뉴스를 자주 확인했더랬다. 8월의 집중 호우를 강남 한복판에서 체감했던 터라,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저녁 약속을 취소하기도 했다. 주변 어른들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다가오는 태풍에 택배가 제대로 도착할런지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울려대는 경보 알람과는 다르게 주말의 하늘은 제법 쨍쨍했다. 아무리 서울이 영향권에서 멀다고는 해도, 꼭 태풍이 닥쳐오는게 거짓말인 것처럼 하늘은 완연한 가을색이다. 느긋하게 이 선선한 평온을 즐기면 좋으련만, 그럴수만은 없는게 사람 마음이다. 곧 태풍이 다가오니까. 


정신없이 살다가 번쩍, 왜 이렇게 일이 잘 되어 가지? 싶을 때가 있다. 상황이 정말 잘 풀리고, 계획된 일들이 척척 나아갈 때면 필연히 불안감도 밀려오는 것이다.(솔직히 진짜로 잘 풀리는 날도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불안과 딱 맞아 떨어지게 힘든 일은 태풍처럼 몰아친다. 그것도 하나만 오는게 아니고 꼭 한번에 여러 개씩. 


왜 꼭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은 연쇄작용으로 일어날까? (왜 잘되어 가지? 물었던 것과는 아주 정반대로.) 조금만 더 좋음을 천천히 음미하면 좋을텐데 언젠가 다가올 태풍을 생각하며 우울해하고, 또 대비책을 세워보지만 타격을 입으면 산산이 무너지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태풍의 눈에 위치한 사람처럼 살아갈 때도 있다. (혹은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내적이나 외적으로 나를 뒤흔드는 일들, 지루한 일이나 서로에게 상처인 관계들, 숨이 턱 막히는 상황들, 포기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것들, 불벼락이 떨어진 시험 등등. 태풍의 눈을 따라가면 피해가 없을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하며, 나를 둘러싼 주변의 폭풍 테두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런데 거꾸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태풍의 눈에 위치해 있는게 아니라 태풍 그 자체는 아닐까? (쓰고보니 꼭 말장난같다.) 모든 것은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성을 유지하는 중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닐까? 결국 스스로 만들어낸 나라는 태풍이 주변을 할퀴며 좋든 나쁘든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소멸할 일이 아닐까? 


2022.09.07

이전 17화 아프면, 억울하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