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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Aug 23. 2023

심심한 한가위

뉴스레터 <막차> 19호 백업

긴 연휴 끝에 월요일같은 화요일이 일상을 깨운다. (그 말인 즉슨 막차를 또 발등을 태운 채로 쓰고 있다는 사실인데) 오늘도 인생 2회차 초등학생마냥 학교가기 싫어, 공부하기 싫어를 외쳐보지만 연휴의 막차도 이렇게 흘려보낸다. 막차의 독자 여러분은 풍성한 한가위를 보내셨길.


이번 추석은 유난히 심심했던 것 같다. 우리집은 집안 어른들도 많이 돌아가셨고, 제사도 없고, 친척과도 그리 친밀하지 않기 때문에, 별달리 할 일이 없다. 그래서 명절 시즌이 되면 가까운 가족들끼리 한 끼 식사를 하는게 행사의 전부가 된다. 애초에 친척이 많이 없는 나는 어린 마음에 용돈을 많이 받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오래 전 가깝게 지내던 가족들이 한없이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조금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서너살에 장난감 자동차를 밀어주던 사촌동생이 이제 고1이라더라…) 명절 때 벌어지는 온갖 치레들이 불리한 일이기는 해도, 그런 일조차 없다면 만날 명분조차 사라지고 마니까. 그러나 가족의 관계는 섭섭함으로 맺고 끊을 수 없는 남과 남의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이해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는 어른이 되어 본가와 많이 떨어져 사는 경우도 많고, 각자의 일 때문에 서울에 남아 쉬는 경우가 많아 그런지 오히려 명절 때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늘었다. 이번에도 역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우리가 진짜 가좍(족)이지…”라며 술잔을 부딪힐 기회가 있었다. 


내년, 내후년, 십년 뒤, 미래의 명절을 그려본다. 별일이 없다면(!) 그때도 이 친구들과 함께 남이 부쳐주는 전을 먹으며 술을 마실 수 있겠지? 비록 혈연으로 맺어진 진짜 가족과의 관계는 많이 소원해졌어도(그리고 내가 관계를 돌이킬 수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긴 해도)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나이가 들어 서로를 떠날 수 밖에 없다. 해가 지날수록 세상을 떠나는 어른들이나 관계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렇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선물과 덕담을 주고 받으며 한껏 웃는 일, 풍요로운 추석, 때마다 외롭지 않다면 친구인 가족이든, 친척인 가족이든, 그것만으로 의미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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