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
지하철에서 만난 한 아이의 고개 끄덕임
그 아이는 이해했을까, 아니면 그냥 넘어간 걸까
오늘 아침, 붐비지 않은 지하철.
나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눈앞의 장면에 시선이 멈췄다.
임산부 배려석에 한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조금 멍한 표정, 약간 어눌한 행동.
아마 발달장애가 있는 학생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내 짐작으로는 3급 정도.
그 아이는 옆자리에 자신의 가방을 놓고, 혼자 두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자리가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지하철 문이 열리고 한 임산부가 탑승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여기 자리 좀 양보해 줄 수 있을까요?”
학생은 말의 의미를 곧바로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임산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가방을 치우고 그 자리에 옮겨 앉았다.
결국 자리를 내준 셈이지만, 그는 왜 그 자리를 비켜줘야 했는지 알지 못한 채 행동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맞은편 아주머니가 학생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이 자리는 아기를 가진 분들이 앉는 자리예요. 학생?
학생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끄덕임은 '이해했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냥 이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무언의 신호였을까.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들의 '눈치'
지하철, 카페, 편의점, 공원, 학교…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규칙’ 속에서 산다.
"이 자리는 누가 앉아야 한다", "이럴 땐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그 규칙들은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복잡한 것들이다.
발달장애 학생들은 이 세상의 '비언어적 규칙'을 해독하기 어렵다.
말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모를 수 있다.
아니, 아무리 말해도 감각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이 세상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배워야 한다.
하지만 그런 학습에는 '상처'가 따른다.
민망함, 오해, 눈총, 차가운 말투, 때로는 무례함.
그 모든 것을 이겨내며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너무 가슴 아프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다정하게
오늘 그 아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몸짓 하나에 얼마나 많은 혼란과 눈치가 담겨 있었을지 상상해 본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천천히 말해주고,
조금 더 다정하게 기다려줄 수 있다면
그 아이들이 덜 다치고, 덜 혼란스러운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지하철에서 마주한 짧은 순간은,
나에게 그런 생각을 오래도록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