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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박 Mar 25. 2019

엄마에겐 사랑한다는 말이 익숙해

엄마의 무기력함을 사랑해


나는 친구들보다 어린 나이부터 어린이집을 다녔다. 어릴 적 기억이 왜곡되어 동생이 태어난 뒤 어린이집으로 억지로 보내진 줄 알고 동생을 미워할 때가 있었는데,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건 내가 원해서였다고 한다.


4살이 된 나는 외할머니와 종종 새로 생긴 아파트의 놀이터에 놀러 갔다. 그 놀이터는 나에게 신세계였다. 집 앞에 있는 놀이터에 없는 커다란 뱅뱅이도 있었고, 곡선으로 만들어진 미끄럼틀도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새로 지은 아파트 옆에는 작은 초등학교가 있었다. 할머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를 데려갔고, 나는 자연스럽게 학교 안의 건물로 들어갔다. 교실의 모습을 처음 본 나는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학교에 보내달라고 떼를 썼다고 한다. 다음 날 엄마는 동생을 등에 업고, 내 손을 잡고 어린이집 등록 줄에 한참을 서있었다고.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갈 때면 엄마는 유부초밥을 싸주었다. 내가 유부초밥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에는 왜인지 친구들의 도시락 속 김밥이 부러웠다. 내 유부초밥에는 햄도 없고, 단무지도 없고, 맛살도 없는데. 친구들 김밥에는 다 있네, 하고.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이제 나도 김밥 싸줘”라고 울먹이며 씩씩거렸다. 어린 나의 말을 엄마는 어떻게 받아들인 걸까. 그날부터 내가 소풍을 갈 때면 엄마는 친구들, 선생님의 김밥까지 양손 한가득 싸주었다.


1998년 나와 동생



작년에는 엄마가 자주 우울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야기하며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엄마에게 친구가 된 것 같아 기쁘기도 어렵기도 했다. 연말에는 엄마가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엄마의 스물다섯 겨울은 특별했다고. 처음으로 배 속에 아기가 생겼을 때라고. “민지도 벌써 스물다섯을 다 보냈네, 그렇게 어릴 때 엄마는 어떻게 너를 가졌는지 몰라” 하루 종일 넷플릭스를 보며 뒹굴거리던 나는 “엄마, 난 아직 애기야.”하고 웃었다.


그리고 엄마의 스물다섯을 생각했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을 옥탑방에서 아빠와 단둘이 보냈을 시간들. 나를 가지고 울고 웃었을 표정들. 아빠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며 더위를 피하기 위해 얼음을 오도독 씹어먹었던 만삭의 엄마. 1994년 여름은 전국이 더위로 몸살을 앓았다던데. 여름이 지나 가을, 선물처럼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에 태어난 나를 보며 행복해했을 거야.


엄마의 이십 대는 나와 동생으로만 가득 찼겠지. 어린이집에 다니는 딸의 도시락을 싸고, 아토피로 고생했던 갓난 동생의 모습을 보며 눈물도 많이 흘렸을 거야. 욕심이겠지만 엄마의 그 시간이 우리와 함께 했던 순간 때문에 조금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엄마에게 김밥을 싸 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는 ‘딸~ 알았어~’하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그리고 나는 ‘엄마~ 사랑해~’하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엄마의 깊어지는 주름을 사랑해,

엄마의 우울을 사랑해,

엄마의 무기력함을 사랑해,

내 이름을 불러주는 엄마의 목소리를 사랑해


엄마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이 언제나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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