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불완전하다고 여기며 살았던 어린 시절에는 나는 늘 어딘가 결핍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결핍을 채울 수 있는 건 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다. 반에서 결속력이 강해 보이는 무리에 늘 끼고 싶어 했고, 또 사춘기 시절에 종종 만들어졌던 은따가 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했다. 누군가와 부딪힐 용기도 없고 자존감도 낮으면서 온갖 외향적인 척은 다 했던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자주 순종적이고 순한 역할을 맡게 되었고 자연스레 내 모습에 친구들의 성향이 조금씩 쌓여 나도 모르는 내가 만들어졌다.
늘 어딘가 소속하고 싶었기에 학년이 바뀌고 여러 반으로 흩어질 때마다 난 새로운 반에서 또 새로운 집단을 찾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도 학년이 바뀔 때마다 다른 반이 되어도 나를 찾아주는 친구가 꼭 한 명씩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많이 고맙고 잊지 않고 싶은 일인데 그때는 그런 일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꼈던 것이지. 새로운 집단에 적응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급해서.
성인이 되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을 돌아보면 한 해 동안 머물렀던 같은 반 친구들의 집단은 어디로 갔는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나는 그들과 학교 안에서 즐기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 맞지도 않는 성격을 억지로 끼워 맞춰낼 때도 많았으니까. 늘 내 곁에 오랜 시간 머무는 건 다른 반이 되어도 한 번씩 나를 찾아준 친구들이었다.
매년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면서 좋았던 점들도 있었다. 어떤 친구들은 노래방에 가는 걸 좋아했고, 또 어떤 친구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함께 공부했으며, 어느 해 만났던 친구들은 꾸미길 좋아해서 미용에도 잠시 관심을 가졌다. 나에게 가장 깊게 영향을 끼쳤던 친구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났는데, 만화책과 아이돌을 좋아해서 그 시절 나는 <학원 앨리스> 신작을 기다리며 살았고 동방신기 팬클럽 카시오페아 활동을 통해 지금도 무언가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며 행복한 덕후 인생을 살고 있다. <학원 앨리스> 신작이 나오는 날 내 만화책을 킵해주는 만화방 사장님이 있었기에 '찐으로 무언가를 좋아하고 기다리면 알아주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것도 깨달았지. 이 모든 것들이 다 나에게 참 진득한 영양제가 되었다.
자라나면서 어떤 친구는 꼭꼭 접어 버리고,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했으며, 내 마음에 오래 남아 움직이다가 정말 내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소속감을 짙게 느끼는 게 불편해버린 사람이 되기도 했지만. 어렸을 때 충분히 즐긴 덕인지 이제는 소외감도 잘 느끼지 않으며 누군가 애써 잘 지내보겠다고 힘들어하지 않는다. 가끔은 어릴 적 어딘가 깊게 소속되기 위해 진심을 감추고 '척'하며 살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가엽다. 그래도 너가 그렇게 고생해서 이런 내가 된 거라고 위로해 본다. 지금은 누구의 취향을 따라가려고 애쓰기보다는 내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그리고 죽도록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 언젠가 꿈속에서 등교하고 있는 나를 만나면 조금만 고생해 달라고 응원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