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만 한다면 무엇이든 될까?

수능을 앞둔 고3의 입장에서 본 수능이란

by 파이썬

한국 사회는 노력주의와 학벌주의로 점철되어 있는 강직된 곳이라 말할 수 있다. 내가 학벌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 계기는 비교적 최근인데, 바로 영혼을 팔아서라도 서연고에 가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서였다. 고3 초반엔 그 말이 참 매력적으로 보였었다. 마치 도전하기만 하면 다 될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나에게 안은 텅 빈 자신감을 가지게 해 주었다. 하지만 인간이, 사람이 영혼을 판 다음에도 그 사람을 '인간'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너무 쉽사리 자신의 영혼을 팔고 타인의 가격을 책정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또한 우리가 만들어낸 체제의 하나인데 도대체 왜 우리는 체제를 지배하지 않고 그 속에 지배당하여 사는가? 이는 굉장히 현대사회의 모순적인 점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수능과 같은 대학입시는 '돈 있는 자들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나는 학벌은 무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치켜세우는 서울대 또한 전 세계적으로 보면 그들이 멸시하는 지잡대이며, 동아시아권 대학들 중에서도 하위권이다. 결국 남들을 재단하며 사는 것은 나까지 재단한다는 것이다. 수능은 돈이 없으면 준비하기 힘들다. 좋은 일반고나 자사고를 갈려면 좋은 학군지에 집이 있어야 하며, 과외도 받고, 학원도 가야 한다. 하지만 정말로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학생이 아닌 경우 이러한 지원들이 중산층 혹은 하위계층에서 가능할까? 아니, 전혀 아니다. 강남 3구에 사는 나는 이 모든 지원을 쉽사리 잘 받는다. 하지만 만약 우리 집이 강남에 위치하지 않았어도 내가 이러한 지원을 받았을까?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자본이 부족해 대학을 못 간 케이스이신데, 그래서 그런지 나는 대학에 대한 특별한 생각 따위는 없다. 물론 좋은 학교와 좋은 교수가 있겠지 그곳에서 얻는 인맥도 있겠고. 하지만, 이 인터넷이 발달된 사회에서, MIT 물리학 강의를 쉽사리 볼 수 있는 세상에서, 도대체 그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결국 중요한 것은 학벌이 아닌 고3 내내 내가 원하는 목표를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는지이다. 결국은 내가 중요한 것이다. 타인의 인정으로 받아들여지는 내가 아닌 내가 보는 나. 그것이 중요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학벌이나 회사보다는 진정한 내 인생이 더 중요하다. 물론 현실적인 자본의 먹고사는 문제야 발생하겠지만 우리가 현실에 핍박받으려고 이 세계에 태어난 것은 아니니까. 인생을 좀 더 즐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악착같이 벌어 모으다 보면 결국 나에게 남는 건 돈뿐일 테니까. 물론 내가 이러한 사유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자본 덕분이지만, 아마 나는 집안에 돈이 넉넉하지 않았더라도 끊임없는 철학적 사유를 이어나갔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니까. 정리하자면, 우리는 모두 각자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학벌, 취업 모두 하고 싶어도 돈 없어서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런 내가 인정받아야만 하는 장소가 아니라, 나를 인정하는 나의 내면인 것이다. 언제나 행복한 사람이 이기고 그 사람이 세상을 구원한다. 따라서 권위가 있는 엘리트의 그 어떠한 말보다 나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자의 공감능력을 더 높게 평가한다. 만약 그 엘리트에게 아무런 지원도 없을 때, 그 사람은 지속해서 지식을 추구해 나갈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엘리트라고 인정받으려면 많은 지원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좋은 학교나 대기업 취업과는 달리 타인에 대한 공감과 사랑의 능력은 돈 많은 사람부터 가난한 사람까지 모두가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과 공감이 아닌 돈과 지위만을 바라보며 산다. 우리는 사랑과 공감의 능력을 더 키워나가야 한다. 사랑은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이니까. 못하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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