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나에게 온다는 것은 너무 수동적이다

내가 수능에게 간다.

by 파이썬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실 나에게 고3생활에 대한 후회는 없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다 떨어지더라도, 나에 대한 원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지난 고3이 너무나도 힘들었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나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난 매 순간 최선을 다했으니까. 유리 같은 몸으로 매일을 버텼다. 언제 한 번은 울면서 제발 대학을 가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기도 했다. 고3 초기엔 수능을 못 볼까 봐 굉장히 걱정되었었는데, 수능을 앞둔 나의 심정은 생각보다 고요하다. 수능을 잘 볼 것만 같고, 잘 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완벽해서 확신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나를 믿는 거다. (사실은 나도 무섭다. 하지만, 무섭다고 도망칠 순 없지 않나, 결국 이겨낼 것이다 난.)어차피 수능이라는 것은 내 인생의 작은 이벤트일 뿐이니까, 나는 대학 없이도 성공할 사람이니까. 그리고 애초에 사람에게는 성공보단 행복이 더 중요하다. 그래, 그저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아효능감, 그뿐이었다. 수능을 앞둔 지금 나의 고3생활을 돌아보면 정말 열심히도 살았다. 매일 쉬는 날 없이 학원과 과외... 올해 들어서 링거만 100번 넘게 맞고 소염진통제와 항생제만 오백번 먹은 것 같다. 링거를 맞으면서도 단어를 외우고 밥을 먹으면서도 인강을 봤다. 매일밤 눈물이 흘렀고 물론 그 사이사이에 게을렀던 날과 무기력했던 날들도 존재했지만, 나는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다. 남들보다 뒤처진 공부진도, 남들보다 약한 몸을 이끌고서 나는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남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정말 너무도 힘들었다. 매일이 지치고 힘들고 토악질이 나올 만큼 싫었다. 신경은 매우 예민해져 힘들었고 정신은 불안에 갉아먹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버티고 또 버티고 버텼다.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것처럼 계속 버텼다. 옥상에서 뛰어내리기 전 나 자신을 한번 더 잡았던 그날처럼, 심장박동이 느려져 가족에게 작별인사를 하던 그때처럼 나는 눈물 흘리며 버텼다. 그래.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다. 그러니 나는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 줄 자격이 충분하다. 어느 대학을 가든 혹은 아무 곳도 못 가든 나는 나다. 난 여전히 나일 거고 앞으로도 나일 거다. 한국사회의 무자비한 학벌주의가 나를 짓누르겠지만, 괜찮다. 결국 행복한 사람이 이긴다. 살면서 배운 진리이다. 행복하게 사는 바보가 우울한 니체보다 낫다. 나는 평생을 우울한 니체로 살아왔고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내가 행복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삶을 본다면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그 무엇도 없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우울, 그뿐이다. 따라서 나는 오늘부터 수능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던 나의 인생에서 수능이란 그저 지나가는 이벤트일 뿐이니까.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끝까지 해내었다고 말할 거니까. 수능이 나에게 온다는 수동적인 생각보단 내가 수능에게 간다는 도전적인 마음으로 살 것이다. 앞으로 어떤 것을 도전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간직하며 살겠지. 어차피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수능성적은 13일의 내가 정하는 것이다. 합격과 불합격은 교수들이 정할 것이다. 결국 내가 지금 걱정해 봤자 나에게 달라지는 것은 없으며 그저 정신만 아파질 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을 멈추고 조금이라도 더 공부한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 나는 그냥 그걸 믿고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 하고 사니까. 남들이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노력과 간절함이라는 것은, 나만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러니 고3도, 취준생도, 공시생도 우리 모두 포기하지 말자. 원래 세상은 각박하고 약자에게 더럽다. 그러니 깨끗한 우리들은 험난하게 살아보자. 하와이의 파도를 타며 서핑하는 서퍼처럼 우리도 현실의 아픔을 서핑하자. 결국 죽으면 다 끝이니까,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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