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행복한 사람이 이긴다
여느때와 똑같은 아침, 나는 추석임에도 대치동을 찾았다. 학원가에서 추석특강이 개강하였기 때문에 연휴라도 쉴 수 없는 고3의 비애였다. 어느때처럼 공부를 하고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논술선생님이 게이 얘기를 하셨다. 나는 원래 학원에서 제일 유명한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고 있었고 그날은 추석특강으로 내가 지원한 대학교논술만 다루는 수업이 열렸길래 궁금해서 들어본 것이었다. (처음보는 선생님이셨다)선생님께서 게이를 언급하신 이유는 정말 어이없었다. 제시문에 나오는 화자가 '여성의 옷'을 입고 싶어한다는 이유였다. 치마를 여성만 입는것도 차별적인 시선이라 생각하고 젠더리스룩을 사랑하는 나의 입장에선 사회에서 주장하는 여성성을 주장하는 남자=게이라는 논지가 와닿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 말을 하시면서 칠판앞에서 웃으셨다. 순간 내 얼굴이 확 찌푸려지고 사회는 아직 개같구나라는 생각이 들때쯤, 선생님이 나의 마음의 불에 휘발유를 들이부으셨다. '제시문의 화자가 성정체성을 혼란하고 있다'...사실 수업의 주제는 자신의 '자아'였음으로 그냥 정체성이라고 말씀해도 되시는거였는데...그래도 제시문에서 의도한 느낌은 성정체성의 혼란이 맞았으니 별말은 안 했다. 하지만 게이라는 말을 쓰시고 나서 바로 '성정체성'의 혼란이라고 하시니,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성지향성이라고 고쳐 말했다. 당시 내 자리는 맨 뒷자리였고 정말정말 개미한테 보내는 목소리로 말했는데, 선생님이 나를 콕 찝어 내가 한 혼잣말이 무엇인지 말하라고 하셨고, 반 아이들 모두가 나를 쳐다보게 되었다. 내가 여기서 성지향성이라고 고쳐 말하면 괜히 수업에 딴지를 거는 일이 되기에, 나는 정말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이 특강을 들을동안 누군가의 눈치를 보기 싫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분위기에 휩쓸려 말을 꺼냈고, 선생님은 자신이 이 분야에 대해 잘 모른다고 언급하시면서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의 워딩갈은 마무리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내가 답변을 하고 난 뒤, 선생님은 분명 '잘 모른다'라는 말을 하셨음에도 계속 성정체성이 맞다는 의견을 피력하셨다. 나에게 맞다는 대답을 받아내고 나서야 수업을 다시 시작하셨고 나는 그 상황이 너무 불쾌했다. 그래도 수업중에 일어난 일이니 선생님의 측면에선 자신의 선생의 입지가 안 좋게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으리라 생각하고 기분좋게 집을 가려하는데 갑자기 나를 불러세우시더니 수업 중 일어난 그 워딩갈등에 대해 또다시 언급하셨다. 나에게 자신이 아까 인터넷으로 찾아봤는데(어쩌라고) 성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냐면서 나를 계속 붙잡아두시길래, 나는 선생님이 앞에서 화자가 게이인것 같다고 추측하셔서(애초에 이것도 잘못되었지만) 게이라는 개념 자체는 정체성보다는 지향성에 해당하니까...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이런 말들을 하고 있는데 자꾸만 너는 틀렸고, 내가 맞다 하는 식의 대화를 고집하셔서(추측성이 아니다 정말이지 지나가던 14살 김땡땡이 들어도 답정너질문을 하신것이 맞다) 그냥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고 집을 갔다. 학원을 나오며 나는 무척이나 화가 났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그 분야에 대해서 모른다고 했음에도 누가봐도 그 분야에 관심이 더 많은(그러니까 지적을 했겠지) 나에게 자꾸만 쉬는시간에 인터넷에서 본 5분지식으로 가르치려 한 점이었다. 아니, 애초에 지금도 이해 안 가는게 그 분야에 대해 자신이 정말로 몰라서 나에게 물어보려 한 것이었다면 나의 의견을 물어봐야지...그냥 질문의 의도가 다시한번 나에게 맞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인것만 같아서 갑자기 인간에 대한 환멸과 사회적 분노가 일어났다.나는 그 선생님이 5분동안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 들어오는 것도(학생들과 수업하는데) 그걸 감추려 지독한 향수를 뿌리시는 것도, 자꾸만 내답안을 지적하시는 것도(물론 이건 내가 거기서 제일 잘하기 때문이긴 했다) 모든 것이 다 그냥 그랬는데 수업을 나오면서 당한 맨스플레인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내가 딱 싫어하는 인간군상이었다. 그 사람의 전체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장면이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진것인데, 나는 자고로 지식인이면서 배우려 하지 않고 우매하게 자신의 우물에만 빠져있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물론 나도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고 반대의 의견도 자주 찾아 보지만 어렵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그럼에도 우리의 뇌는 배우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죽을때까지 배울 수 있는 뇌가 있는데, 도대체 왜 지식을 탐구하지 않고!!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 하지 않는지...이해 할 수가 없다(하지만 현대사회는 바쁘니까 존중한다). 하지만 이 날의 진정한 문제는 버스정류장에서 생긴다. 대치동 학원강사의 은연히 깔려져 있는 권위의식을 잘근 잘근 머릿속으로 다시 씹어보며 버스 정류장에서 페미니즘 가사의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남자때문에 화날때마다 듣는다), 어떤 2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당시 비가와서 사람들은 정류장에 다닥다닥 붙어있을 수 밖에 없었고, 그 남성은 30초 정도쯤 전에 내 근처로 자리를 옮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이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상황에서 자리 바꾸는것 쯤 누가 신경쓸까...나는 그저 버스만을 애원하며 화를 삭히고 있었다. 헤드셋을 끼고 팔짱을 끼고...퀭한 얼굴과 폴더폰 그리고 대치동...누가봐도 고3이었다 나는...근데 갑자기 그 성인이 나에게 번호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아...여기까진 괜찮았다. 그래 누군가는 내가 마음에 들 수도 있으니까(하지만 언제나 말했듯 나는 그 사람의 호감이 전혀 알빠가 아니다 ㅜㅜ 특히 처음만난 사람일때는 더더욱 ㅜㅜ) 그냥 조용히 고등학생이라고 하며 거절하려했는데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 남자가 먼저 '아, 혹시 고등학생이세요?'라고 했다.(알면서 왜 물어본거임?) 그래서 나는 맞다고 대답했고, 그 남자는 죄송하다면서 사과를 했다. 따라서 나는 다시 헤드폰을 꼈는데 아니 끼자마자 갑자기 또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아니 고딩한테 번호 물어본게 안 부끄럽나)여기서부터 나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헤드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그 남자의 말을 일방적으로 들어줘야했다. 속으로는 오만생각을 다했다. (청주여자교도소가 여기보단 더 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아 소리지르고 머리채라도 잡을까, 내 잭나이프가 주머니에 아직도 있던가, 핸드폰 어차피 고3끝나고 바꿀건데 그냥 한번 내려치고 폭행핑계로 대치동 탈출이나 할까 등등...무엇보다도 제일 괴로웠던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 남자의 입냄새와(러쉬에선 이 사람을 꼭 데려가야 한다. 리스테린에선 꼭 돈주고 연구하셔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내 바로 코 앞에 나의 아버지뻘인 남성분이 계셨음에도 계속 이 상황을 방관했다는 것...아아 나는 이 모든 일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비 내리는 하늘에다 손가락질하며 신을 원망하고 싶었다. 옆에서 계속 그 남자는 나에게 대학생인줄 알았다(어쩌라고), 너무 귀엽게 생겼다(하나도 안 고마워), 우리집 고양이를 보여주겠다...라며 나의 관심을 요구했다. 당신이 고양이를 보여준다면 나는 한국사회가 만든 정신병의 세계를 보여주마...하며 이를갈고 있을때쯤 그 남자가 버스를 타고 먼저 갔다(?)...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힘이 탁 풀리면서 한 순간에 불안이 확 몰아쳤다. 여자라서 느껴야 되는 불안을 안고서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꼭 복싱을 배우리란 다짐을 하며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내 앞에 서 있던 중년남성의 눈빛이 계속 생각났다. 그 남성은 번호를 요구한 그 상황을 모두 듣고 보고 있었음에도 그 사람을 저지하거나 눈짓을 주는게 아닌 나를 위아래로 천천히 훑으며 계속 나만을 바라보았다...(왜...?) 버스에서 앉아 집을 가는 내내 기분이 울적하고 화나서 노래를 들을 수가 없었다. 알아서 보이는 것들이 너무 싫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눈빛과 언행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런 일들을 겪고 나니 한시도 빨리 격노의 공부를 하고 싶었다...하지만 이런일들을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말하니 모두가 오늘은 그냥 쉬라고 조언하였고 나는 그 다음날에도 아침일찍 대치동을 가야만 했기에 오랜만에 게임을 켰다. 그렇게 한참 플스에서 스파이더맨 활동을 하다가 침대에 누웠다. 이상하리만치 긴 것 같은 하루를 보낸 후 나는 갑자기 다시 한번 재수가 너무 너무 하고 싶지 않아졌다. (갑자기?싶겠지만 필자는 수능을 앞둔 고3이다)그리고 나의 학벌주의를 통한 염원 역시 다 보잘것없고 허상의 개념이며 인간들은 참 짜증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벌주의를 부정하지만 결국 나는 좋은 학벌을 가지기 위해 대치동을 다닌다. 원래 인생이 그렇게 모순투성이인 거겠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그냥 행복하게 사는것이 승리구나 싶더라. 이상과 사회개혁을 꿈꾸며 살다가는 니체처럼 자살할것만 같았다. 사실, 이렇게 말해도 나라는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을 굽힐 줄 모르기에 살아가면서 계속 사회와 부딪히겠지만...좀 사람답게 살라는 친구의 말을 들으니 정신이 들었다. 4시간 쪽잠을 자며 면역질환을 가지고 매일매일의 스케줄을 버텨내고 있다. 평소에 좋아하던 코디와 메이크업, 독서, 영화, 게임 모든것을 뒤로하고 친구들과의 수다마저 고이 접어 마음 깊은 곳에 넣어두었다. 사회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면서도 결국 나는 '시선을 신경쓰는' 사람이기에 그에 순응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모든것이 부질없다고 생각될때쯤 동생 바니가 옆에서 골골송을 불러주었다(어렸을때 내가 키워서 그런지 나랑 똑같다. 외모 성격 모두 다...). 바니에게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고양이 요괴가 되어 언니와 평생을 함께하자라거나 다음생에도 찾아와달라는 말.모두 알듯이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이별을 감수하고 사랑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이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난 더 쉽게 알 수 있었다. 유통기한이 있으니까. 물론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바니의 골골송을 들으며 수능 끝나고 뭐할지나 생각하다가 바니에게 세상이 참 이상한 것같다고 하소연을 했다. 바니는 나의 얼굴 바라보며 우아한 자태로 나의 말을 들어주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기록이다. 아래는 내동생 바니 사진 첨부(고양이 얘기를 하고 사진을 첨부하지 않는 행위는 상도덕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