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편지가 나를 위한 것이었다면

by 파이썬

오랜만에 쓰는 글이다. 아침에 들리는 싸움소리에 일어난 나는 오늘도 폰을 꺼냈다. 그러다 문득, 입시가 끝나고 난 뒤에는 들어가지 않았던 블로그앱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충동적으로 들어간 블로그에는 내 옛 친구의 글이 있었다. 그녀는 편지를 읽지 못할 이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그 편지가 나를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글에서 인생이란 순환의 일종이며 자신은 이제 자신을 떠나간 사람들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 유명한 영화감독이 될 거라고,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생각을 널리 알릴 것이라고. 나와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때 만났다. 처음에는 옆반 친구로 그다음은 책 친구가 되었고 그다음은 절친이 되었다. 힘들어하던 내게 그녀는 교회를 소개해주었고 나는 1년 동안 교회를 다녔다. 하지만 나도 내심 알았다. 교회라는 곳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너를 사랑하기 싫었다. 왜냐면 넌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교회에서의 나는 항상 어딘가 겉돌았다. 여성의 순종, 남자와 여자만의 사랑을 강조하는 그곳에서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성실하지 않다는 그곳에서 난... 불성실한 주님의 신도였겠지. 결국 박차고 나간 교회를 끝으로 너와의 인연은 끊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동경하는 사이였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너는 나만의 개성이 좋다고 했다. 나만의 사고, 취향, 말투가 부럽다고 하였다. 나는 너의 대중성이 좋았다. 너의 그 높은 사회성, 많은 친구,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 위치. 하지만 그럼에도 난 공부를 하고 넌 예술을 했다. 공부에 재능이 없던 나는 매번 울었다.또 예술에 재능이 많던 나는 너를 보며 대리만족을 했지. 그렇게 우리는 멀어져 갔다. 애초에 우리는 섞일 수 없는 물이었다. 넌 퀴어라는 존재가 오직 영화설정 안에서만 허용된다고 보았고, 난 모든 사랑은 가치 있다 여겼으니까. 정확히 나는 너의 그 작은 교회 안에서 너를 빼내오고 싶었다. 나의 것을 누군가 세뇌시킨 느낌, 나는 알았다. 너와 내가 본질만은 꼭 똑같을 것이라고. 하지만 넌 그 교회에서 자랐고 난 그저 들판에서 자랐다. 오랜만에 너에게 연락을 보냈을 때였다. 넌 그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지 나의 말에 무관심한 태도였다. 결국 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말하나 순환의 삶을 나도 강제로 살아야만 했다. 난 널 보내기 싫었다.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퀴어혐오를 하지 않아서, 예술인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라 그랬던 걸까? 난 그냥 아무래도 좋으니 그저 너 곁에 있고 싶었을 뿐인데, 넌 나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있었고 그들은 나를 항상 싫어했지. 너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들의 말에 휩쓸려 나를 욕했던 적이. 하지만 난 너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랐던 것뿐이지. 너의 영화를 보러 간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나인데 이젠 그것마저 지켜질 수 없다. 왜냐면 난 마주하기 싫을 테니까. 나를 떠난 네가 그리도 행복하게, 잘 살아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마주하기 힘들 테니까. 결국 우리는 안 맞는 퍼즐인 거다. 너는 페미니스트를 혐오했고 난 페미니스트였다. 넌 남자애들 사이에서 개념녀라고 불릴 만큼 매우 '정상'적이었다. 너의 최애작이 콜바넴이라는 것을 듣고는 안심했었지 바보같이. 네가 기독교인이라는 것도 잊고 말이야. 치료를 받아야 한다,라는 말이 나는 너무나도 싫었다. 넌 아직도 나의 마음, 사고, 가치관등을 모르겠지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난 언제나 그들의 적이었고, 한 번도 그들 편인 적이 없었다. 교회를 나오자마자 나의 상태는 호전되었다. 객관적 이유로는 매일같이 있던 주말 스케줄의 없어짐과 억압받고 있었던 나의 마음이 자유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겠지. 루시퍼가 타락천사였다는 설이 있는 것처럼 너의 입장에선 내가 타락해 버렸구나 하고 마음 아파하겠지. 하지만 나도 안다. 난 나쁜 사람이 아니다. 살기 위해 치장할 뿐. 언제는 나를 싫어하던 여자애가 있었다. 너는 그 애를 진심으로 따돌리고 싶다며 자신의 본성은 악하다고 주장했다. 나 또한 알았다. 순간순간 나오는 너의 영악한 말들이 떠올랐다. 악한 너는 선한 나에게 언제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었고 나는 그 배리어 안에서 잘만 살았다. 나도 안다. 이런 미련 넘치는 말들을 계속 적어봤자 넌 돌아오지 않고 나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항상 너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난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언젠가는 너처럼 멋진 예술인이 되고 싶다고. 회피해 버렸던 나의 과거를 떨치고 진짜 숨 쉬고 싶다고. 하지만 그 일은 일어난다 하더라도 먼 훗날, 네가 나를 기억조차 못할 시기에 일어날 것이다. 돈이라는 이유 때문에 난 예술을 외면했다. 살면서 만난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 영감을 가져다주었고 나에게 글을 쓰라고, 무언가를 만들라고 종용해 댔지만 나는 마치 귀신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어린 무당 같이 굴었다. 귀신이 보인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인정하는 순간 나는 무당길을 걸어야만 하니까. 결국 너와 내가 한 것이 우정인지 사랑인지 자기애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기 전에 떠나버렸으니까. 결국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우리가 한순간이라도 그리 만난 것은 기적이었으리라. 언젠가 무대에서 반짝이는, 마이크를 잡고 영화를 설명하는 너를 보러 갈 것이다. 살면서 한 번쯤 언젠가는 말이다. 네가 말하는 순환의 고리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올 때쯤, 나는 다시 너를 만나러 갈 것이다. 너무나도 달라진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을 수는 없겠지만 악수정도는 할 수 있겠지. 나는 인문대를 가고 너는 예대를 가겠지. 어쩌면 나는 평론가가 될지도 모른다. 너의 영화엔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시그널이 분명 존재할 테니까. 네가 나를 모티브로 꼭 무언가를 만들어낼 테니까. 그러니까 이젠 그냥 네가 말한 그 순환의 흐름대로, 뜻대로 너를 보낸다. 저 멀리 내 기억 속 어딘가로. 벌새처럼 날아서 어딘가에 꽂히길. 이 글에도 너만 알아볼 수 있는 수많은 표현이 존재한다. 하지만 네가 이 글을 볼리는 없겠지. 그러니 이 편지는 현실의 너를 위한 것이 아닌 내 기억 속 너를 위한 것. 고마웠다 나의 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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