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로스의 시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by 파이썬

고대 그리스인들은 두 가지의 시간개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바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우리가 흔히 아는 물리적, 객관적 시간을 의미한다. 크로노스는 가이아의 아들로, 제우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반대로 카이로스는 제우스의 아들인데, 흔히 행운의 신이라 하며 그의 또 다른 이름은 '기회'라 불린다. 카이로스의 시간이란 질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인데,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시간을 크로노스의 시간으로부터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꾸는 것을 중요시 여겼다. 시간을 질적으로 사용하는 인생이 더 가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그 둘 중 누구의 시간을 살고 있는가?


나는 한평생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아왔다. 태생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던 삶이기에, 나에게 미래란 '이 비참한 현재를 탈출할 도구'같은 내 인생의 마스터키였다. 자신의 아들을 먹은 크로노스처럼 나는 서서히 나의 마음을 먹어갔고,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불안해할 일이 생길 바엔 미리 다 방지하고, 없애버리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막상 텅 빈 내 안 속에 나라는 사람밖에 안 남으니,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 나의 마음이 이토록 넓었구나, 하고. 크로노스가 결국 제우스에게 왕위를 빼앗겼듯이 내 마음속에 제우스인 방어기제도 크로노스의 시간을 없애고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마음에 불안이 사라진 후로는 오히려 더 힘들었다. 나를 부추기던 압박이 사라지니 내 안은 텅 빈 구멍처럼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휘몰아치는 태풍 속의 눈처럼, 돌을 던지기 전 잔잔한 호수처럼. 나는 그렇게 크로노스와 작별했다.


크로노스가 내게 떠나간 뒤 나에게 찾아온 건 카이로스였다. 제우스의 아들인 카이로스는 나에게 삶을 즐기는 법을 알려주었다. 책을 읽고, 사람을 사랑하며 나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엔 몰랐다. 카이로스의 또 다른 이름은 '기회'라는 것을. 카이로스는 흔히 앞머리는 풍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인 날아다니는 신으로 묘사한다. 이는 누군가 그를 알아보았을 때 풍성한 그의 머리를 꼭 쉬어잡길 바라서이고, 이미 그가 떠난 후에는 뒷머리가 대머리이기 때문에 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정리하자면, 카이로스는 휴식보다는 기회, 행운의 신임으로 나는 그를 잡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결국 카이로스의 풍성한 앞머리 대신 손이 미끄러지는 뒷머리를 잡게 된 것이다. 카이로스마저 떠나보낸 뒤 나는 후회와 우울에 빠졌다. 꿈만 같았던 지난날들이 부서지고 나에겐 시간이라는 기회를 잡지 못한 '대가'만이 남겨져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시간은 차이가 있긴 하지만 결국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진행되는 순행적 시간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양자역학 책에서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당시 수학이나 과학에 잼병이었던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완독 하는 것이 참 어려웠는데, 저 말 하나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그저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 더 정확히 나의 뜻으로 설명하자면, 우리는 흔히 과거, 현재, 미래를 각각 하나의 물체와 같이 생각한다. 과거가 지나면 현재가 오고 현재가 지나면 미래가 온다. 하지만 우리가 온전히 겪을 수 있는 시간은 현재뿐이며, 미래라는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간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 걸까? 나의 생각에 시간이란 '나'가 누구인지에 따라 다르다. 3초 전의 나와 2초 전의 내가 다르듯이, 앞으로의 나와 과거의 나는 천지차이를 가지고 있다. 또한 과거, 현재, 미래 3가지의 타임라인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데, 예를 들어 현재의 누군가가 미래에 변호사가 되고 싶어 공부를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녀가 공부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미래에 있으며 그녀가 변호사가 된 미래가 현재로 바뀌었을 땐, 그녀의 직업선택 이유가 과거에 머물게 된다. 또한 우리는 흔히 기억을 우리의 뜻대로 조절하는데, 이도 타임라인의 영향을 받는다. 과거에는 끔찍했던 일이 현재는 덤덤하게 느껴지거나 5년 후에는 기쁠 일이 현재는 힘들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내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이유는 내가 사는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카로스의 시간을 산다. 이카로스는 흔히 비운의 신화 주인공으로 묘사된다. 그의 야망과 욕심이 그를 죽인 것이라 사람들은 판단한다. 하지만 나는 이카로스의 욕망을 이해한다. 우리는 흔히 이카로스의 욕심으로 태양과 가까이 날아서 죽은 것이라 알고 있지만, 이카로스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그 당시 그의 밀랍날개는 태양뿐만 아니라 바다와 가까이 날아서도 위험했던 것이다. 결국 어떻게 보면 그는 바다보단 태양을 선택한 것인데, 나는 이것이 이카로스의 멋진 점이라 생각한다. 고3을 보내는 나에겐 공부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이 2개의 선택지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공부를 한다면 뜨거운 더위와 같은 경쟁에 추락하고 말 것이고, 공부를 하지 않고 포기한다면 싸늘한 바다와 같은 사회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나에겐 어찌할 방도가 없다. 나와 같이 날개를 펼치는 수많은 이카로스들은 모두들 태양에 불타 죽거나, 깊음 심연 속으로 빠져버린다. 해안가에 있는 어른과 사회들은 우리에게 돌을 던지며 계속 날 것을 강요하고, 우리 또한 날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계속 난다. 죽을 때까지. 그렇다면 이카로스가 날았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태양을 향했던 이유는? 나는 그것이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카로스에겐 시간이 없었다. 그는 높은 탑에 갇혀 죽음만을 기다리는 꼴이었고, 그에겐 다른 차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이유도 비슷하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서. 아이들은 강해서 그 시간을 버티는 것이 아니다. 버티는 것밖엔 답이 없기 때문에 숨을 참고 버티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삶은 끝나지 않기에 대학교를 입학해도, 취업을 해도 우리는 끊임없이 바다와 태양을 적절히 피하며 날아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사는 이카로스의 시간이다.


나의 꿈은 이카로스가 되는 것이다. 추락하는 하늘의 이카로스, 그것이 나의 꿈이다. 자가면역질환을 얻고 내게 든 생각은 삶이란 유한하며 죽음은 늘 우리의 곁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삶의 의미에 굉장히 집착하게 되었는데, 나에게 삶의 의미란 태양과 같은 열망을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명예, 돈, 행복 등 물질적이거나 추상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나에게 삶의 의미는, 꿈은, 태양은 바로 추락이다. 우리는 결국 살면서 언젠가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우리는 매번 추락한다. 나의 추락은 삶의 종료와 같다. 죽음을 추구한다기보단, 이카로스의 추락처럼 내가 원하는 것 즉, 태양에는 가까이 가보고 죽겠다는 것이다. 다들 이카로스를 비참하고 멍청하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이카로스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저 살고 싶어서, 안전하기 위해 수많은 아이들의 힘듦을 무시해 왔으니까. 적어도 이카로스는 태양에 가까이 가보기라도 했다. 언젠가 추락해 죽는다면, 차라리 멋지게 추락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안정과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다가는 당신의 밀랍이 썩어문드러질 것이다. 하지만 결국 추락할땐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그냥 모든것이 그대와 함께 추락할 뿐.그대들의 밀랍날개는 영원하지 않은데, 당신은 진이 빠져 깊은 심연 속으로 낙사할 것인가 혹은 진리를 추구하다 영광스럽게 추락할 것인가? 나는 당신의 밀랍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지 않지만, 당신의 아름다운 추락은 영원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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