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 있다면

by 파이썬

악마가 이 세상에 존재할까?

차라리 존재했으면 좋겠다. 나의 영혼이라도 팔도록, 내 숨이라도 거둬가도록.



마음이 아프다는 것은 참으로 번거로운 일이다. 정신과와 함께 나의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나는 언제까지 이런 나를 데리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한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우울이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왜 당신의 이해를 받아야 하지?

최근에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쳇바퀴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면 되는데 왜 힘들어하냐고, 뭐가 힘드냐고. 분명 그 사람의 질문의도는 그런 거였겠지. 지금 시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현실적인 위로, 그리고 공부하라는 압박. 하지만 인간이 쳇바퀴처럼 굴려진다면, 내가 이 사회에 단 하나의 톱니바퀴밖에 안 된다면, 굳이 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산업화시대에 접어들며 우리 스스로 신을 죽였다. 현대에 신을 믿는 사람들은 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그를 추종한다. 나는 사실 내가 이 고3을 보내기 전 죽을 줄 알았다. 중학교 때의 나는 내가 고3이 되기 전 죽음에 이를 것이라고(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나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나의 인생은 그리 스펙터클하게 암울하진 않았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들보다는 여러 사고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에 대서특필될만한 인생은 아니었단 소리다. 나는 그냥 조용해지고 싶었다. 그만 살고 싶다는 감정보다는 그냥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이 조금만 조용해지기를 바랐다.

고3이 된 나에겐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나의 미래가 달려있게 되었다. 난 고작 19살일 뿐인데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가 참 웃기기도 한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이 사회를 순응하는 것도 아닌, 칭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 갓 사회에 진출한 청년들에게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라'라는 말을 하는 그런 사람들과는 맞지 않는다는 소리다.그들을 보면 나는 내 몸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경멸을 느낀다.

학창 시절동안 느낀 것은 우린 남의 아픔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내가 경험한 사람들이 그랬다. 어차피 자살을 말려도 할 사람은 하고 병원을 가라 해도 안 갈 사람은 안 간다. 왜냐면 나도 그랬으니까. 자살이라는 죽음을 선택으로 보기도 하는데, 나는 그냥 사회라는 주체의 살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 사람이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결말이 제일 잔인한 거겠지. 비극적인 선택이 아닌 비극적인 결과다. 그러니까 말려도 죽는것이다. 이미 사회라는 살인마의 칼에 찔려버렸으니까.


도대체 이 대한민국에서 어느 누가 행복할 수 있지? 우리는 모두 기계와 자본으로 대체되고 끊임없이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우리의 윗세대는 그것이 당연한 거라며 우리를 짓누르고 우리는 똑같이 우리의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움직이라고.




다시 태어난다면 MIT를 가고 싶다. 경치 좋은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만 하루 종일 읽고 싶다. 친구들과 즐겁게 토론하고 졸리면 그냥 거실바닥에 드러누워 자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패션을 마음껏 누리고 신화를 연구하고 싶다. 혼자 남은 집에서 숨을 고르며 명상하고 싶다. 햇빛이 쨍쨍한 날에는 집에서 낮잠을 자고 바람이 안 부는 저녁엔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 몸을 던지러 강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물고기들에게 밥을 주러 강을 찾아가고 싶다. 강을 떠올리면 그 강에 안겨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신비로운 인어는 없을지 상상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리고 싶고 그 그림들을 모아서 전시회도 열고 싶다. 더 이상 칙칙한 색깔의 사회는 보고 싶지 않다.

최근에 내가 그리스 철학자 같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신이 잘못 보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쩌면 환생일까 싶을 정도로 나는 철학에 대해 생각이 깊다. 원래부터 철학 같은 주제로 사색하는 것을 즐겼으며 그런 대화가 날아갈 듯 즐거웠다. 인간의 쓸모, 영혼의 존재유뮤 같은 것들은 항상 나를 흥미롭게 했다. 하지만 입시는 내게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마에게 영혼을 팔기를 요구한다. 악마한테라도 영혼을 팔아서 좋은 대학에 가고 대기업에 가고... 혹은 의사가 되고 법조인이 되기를 꿈꾼다. 어른들은 그저 안타깝다는 말만 할 뿐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 왜냐면 그들도 이 사회의 아주 작디작은 하나의 톱니바퀴일 뿐이니까.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튕겨져나가고 말 거니까.

결국 죽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세상은. 그래 참 허무주의 같은 생각이지. 나도 안다. 내가 참 허무하고도 비관적이게 삶을 산다는 것은. 하지만 나에게 이상은 언제나 날카로운 유리조각과도 같았다. 헛된 희망은 언제나 나를 죽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마음은 불사이다. 무통의 능력이 없는 나는 아마 마음이 죽을 때마다 아프겠지. 수도 없이 아파서 차라리 육체의 죽음을 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희망 없인 살아갈 수 없다. 서로를 죽이더라도 희망이 필요하다. 우리는 결국 희망이라는 사탕을 쫓아가는 개처럼 삶을 산다. 하지만 개의 주식이 사탕은 아닌 것처럼 우리의 주식도 희망이 아니다. 산다는 건 내게 그런 것이다. 숙명 같은 것. 살아가야만 하는 것, 죽으면 안 되는 게임 같은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죽음을 경험할 것임에도,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생명의 탄생을 축복한다. 영원은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영원한 불행도 없다. 나의 과거의 상처가 언제쯤 나을지 모른다. 현재진행형인 상처들도 언제쯤 아물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따스한 바람이 나를 감싸는 날이 올 것이다. 강을 떠올리면 수영을 하고 싶어지고 바다에 가면 서핑을 하고 싶어지는 그런 날들이 찾아올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 언젠가 그런 날이 도래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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