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결과

in my head

by 파이썬

언제쯤 이 우울이 끝날까. 세상에 집착하며 나를 짓누르고 또다시 도전하는, 이런 인생이 언제쯤 끝날까.


오랜만에 노력의결과라는 웹툰을 다시 봤다.

처음 네이버에서 연재했을때부터 좋아했고, 사랑했던 작품. 중학교땐 그저 주인공인 재경이가 성적에 목매는것이 안타깝다고만 여겨졌는데 고등학교에 오고 나니 거울 앞엔 또다른 재경이가 서 있었다. 주인공 재경은 엄한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며 엄청난 학업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로인해 여러 사건들이 전개되고 여러인물들이 나오는데, 나는 무엇보다도 이 웹툰의 결말이 좋았다. 모두들 한치의 희망도 없어서 싫다는 말을 많이 하던데, 나는 그게 오히려 좋았다. 애매한행복 따위가 더 슬프니까. 작품의 끝은 열린결말이지만 거의 재경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것으로 마무리된다. 재경이를 구원하려했던 인물인 김권은 해외로 나가고 한솔이마저 재경의 곁을 떠나게 된다. 결국 혼자가 된 재경은 다른세계로 가게 되고 작품은 막을 내린다. 중학교때나 지금이나 이 결말을 보고 든 생각은 부럽다였다. 김재경은 노력의 결과라는 웹툰의 주인공이니까. 영원할것같은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 죽는게 정해진 아이니까. 이젠 고통받지 않고 살 수 있는거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보통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다. '왜?'참 근본적인 질문이다. 내가 사랑하기도 하는 이 말은 가끔 나를 허무하게 만든다. 아픔이란건 차마 당사자말고는 입에 올릴 수 없는것인데 정작 당사자는 아픔을 들수조차 없다. 그러니까 나는 근본적으로 속이 텅 비어있다. 어떻게든 채워보려 노력하지만 사실 나도 안다. 이건 평생 채울 수 없는 공허라는것을. 7살때부터 죽음을 생각했다. 자기 전 죽음과 잠의 차이점에 대해 고민했고 매일밤 사후세계와 이상에 대해 혼자 천장을 바라보며 토론했다. 어렸을때 나는 고지식한 아이였다. 그래서 오히려 더 바보인척을 했다. 왜냐면 그 나이에는 어리광부리는게, 떼를 쓰는게 정상적인 거니까.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불교의 윤회관을 믿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한번 삶을 살아본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번이 아닌것 같았다. 마치 여러번 삶을 살아본 영혼인듯, 나는 삶이 아주 지겨웠다.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들이 시시했다. 죽으면 끝나는 모든것들이 보잘 것 없어 보였다. 마치 21세기에 온 그리스인처럼, 나는 그렇게 굴었다. 현대문명이 시시할만큼 재미없었고 고요한 바다가 나의 집인것처럼 느껴졌다. 중학교 3학년 내내 도서관에서 책만을 읽었다. 꾸미는것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2학년때쯤 노는 아이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친구들과 같이 다니며 나는 정말 근본적인 외로움을 느꼈다. 효과없는 그들의 일탈이 나에겐 너무나도 하찮아보였기에, 매번 현실을 자각했다. 그렇게 남들의 일탈을 지켜보며 나 혼자만큼은 고고한척 아무런 일탈행위를 하지 않았다. 사실은 진정으로 순수한마음을 가진건 내가 아닌 그들임에도, 나는 더러워지지 않으려 애썼다. 3학년이 된 후 나는 갑자기 그 아이들이 싫어졌다. 그 아이들도 나의 다름을 느꼈는지 나를 놔주었고 나는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책을 쌓아두고 매일 읽었다. 하루종일 책만 읽었다. 중학교 도서관의 책을 내가 다 읽고 싶었다. 결국 그 계획은 실패했지만 나는 책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나의 도피처, 안식. 그렇게 고등학교를 올라왔다. 사실 나의 계획은 고등학교 1학년때 삶을 끝내는것이었는데 역시 이 계획도 실패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죽으려 올라가던 옥상문이 하필이면 그날 잠겨있었고 2차 대안으로 생각해둔 아파트창문은 너무더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더러운곳에선 죽는것조차 비참해질것같았다. 결국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부모님께 병원을 가자고 제안했다. 텅빈 마음이 더 이상 채워지지 않을것만 같아서 근데도 살고는 싶어서,병원을 찾았다. 그 뒤론 참 많은일들이 있었다. 옥상이나 밧줄을 다시 찾기도 했다. 하지만 결심이 설때마다 내 안에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내가왜 죽어야만하지?내가 뭘 잘못했다고? 고갤 들어 신을 노려봤다. 어차피 데려가지도 않을거면 나를 이리도 괴롭히는 이유가 무언지, 알 수가 없었기에. 그래서 아득바득 살았다. 운동도하고 친구도 만들고 학업에도 정진했지만 결국 그 끝은 똑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역시나 나는 오늘도 죽지 못한다. 죽음이라는 단어에 새겨진 일말의 희망과 조그마한 불안때문에, 나는 오늘도 끔찍하게 산다. 나에게 인생이란 고통이다. 행복한 인생? 그런건 없다. 인생은 원래 고통이다. 원래 삶은 그런거야. 하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어. 행복이 넘쳐나는 삶도 있다는것을.

이 글로 딱히 자기연민을 하고싶진 않다. 그냥 솔직한 나의 심정이고, 과거인거니까. 그냥 최근에 그런말을 들었다. 아니 거의 한평생 들었지. 또래에 비해 성숙하다고. 근데 나는 항상 그런 의문이 들었다. 왜 이유는 생각해보지 않는걸까? 나와 내친구들이 또래에비해 성숙해보이는건, 똑부려져보이고 단단해보이는건 절대 부모님들의 가정교육 덕이 아니다. 책을많이 읽어서도 아니고 특출나서도 아니다. 그냥 그렇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야. 살아남기위해서 진화한 결과지, 우수한 성공이 아니다. 나는 이런것이 당당히 비정상이라고 외치고 싶다. 아이들에게 고통이란 필요없다. 인생에 고통이란 필요하지 않다. 19살먹고도 엄마를 찾는다고?아니, 아직 열아홉살밖에 안 됐으니까 당연히 부모를 찾지. 나같은 아이들이 혼자서 묵묵히 해내는게 대단해보일지 몰라도 그건 그냥 다 헛된 허상일 뿐이다. 철학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자기자신을 잘 안다, 내면이 성숙하다. 이모든것들도 결국 다 쓸모없는 것이니까. 우울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 사회는 기계를 원한다. 기계같은 인간. 아무생각이 없는 사람이 제일 행복하기 마련이다.하지만 어쩌겠어 우리가 신을 죽였는데. 우리에겐 이제 가야할곳이 없다. 사랑할 이유도 없으며 살아갈이유 또한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퀴벌레들처럼 우리는 다시 살아난다. 다시 살아가고 살아낸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니까. 한낱 벌레와같은 자신도 어느 순간에는 빛날테니까.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것이다.



추신. 글이 우울해보여 다소 신경쓰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생 나의 비관주의적 사고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자기연민하며 우울에빠지는 사람이 아니다.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우울에 빠지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작은 불씨를 피우며 살아가는 하나의 인간이다. 아마 모두가 비슷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살기힘든세상이고 살기힘든나라지만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 염치없이 행복해지길. 언젠가는 우리 모두 웃으며 아침을 맞이하길. 당신의 소망이 당신을 일으켜주는 밤이 되길 기도한다. 우울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자기자신 정도는 어찌할 수 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자. 내일이 다가올 인생을 내손으로 끊어내지말자. 고통뿐인 세상이라도, 하루라도 우리는 살아남아버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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