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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Jun 15. 2020

현대인의 특성

성격, 인성, 성품

사람이 겉으로 아무리 포장을 하고 아닌 척을 해도, 나의 특성이 바뀌지 않는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때로는 위선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다. 문제는 내 입과 몸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알 수 있지만, 내면에 감추어진 나의 본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편의상 필자는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원래의 마음을 본성으로 보고, 본성이 삶 속에서 성격이나 인성, 또는 품성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통틀어서 특성으로 여긴다. 인간의 본성을 찾기란 구도자가 가는 길이며, 삶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처럼 어려운 문제이다. 마치 일반세포가 특성이라면, 줄기세포가 본성으로 비유될 수도 있다. 2차 대전을 일으키고,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도 늘 마음이 답답해서, 전쟁 중이지만 자주 기차를 타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아마 자신의 본성을 찾아보려는 노력이었을 거다. 어떤 이들은 인간의 본성이 우주적 마음의 일부이며, 본성을 찾는 법을 알려준다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타인의 도움을 통해서 나의 본성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명상가나 신비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우주 의식, 진아, 또는 순수의식이라고 부른다. 어떻든 자신의 본성을 잘 모른다는 것, 그 사실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가장 큰 비극이다. 아인슈타인은 “세상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여러 길을 쫓아가며 자신의 본성을 찾다가 못 찾으면 정신이 어둠에 갇히게 된다. 어둠에 갇힌 영혼에는 매일 매 순간이 새벽일 수 있다.      


인간이 사물이나 사태를 이해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즉 어떤 것의 본성에 대해 직접 알아본다. 또는 어떤 것을 알 수 없을 때, 어떤 것의 특정 속성들이 어떤 것의 본성이 아니라는 점을 통해 어떤 것을 간접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다. 즉 나의 본성 자체의 파악이 어려우므로, 나의 어떤 점이 나의 본성이 아니라는 것을 통해 나의 본성을 추측해보는 양파 까기 식 방식이다. 예를 들어, 내가 싫어하는 것은 알겠는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즉 내가 싫어하는 것을 모두 빼고 난 후의 선택지가 남아 있다면, 그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마찬가지로, 가기 싫은 식당은 분명한 데 가고 싶은 식당을 고르기는 어렵다. 싫은 사람은 금방 알겠는데 좋아하는 사람을 정하기는 어렵다. 불행은 알겠는데 행복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이처럼 분명한 싫음과 애매한 좋아함 사이에서 80년을 보내다가 후회하면서 죽는 것이 인생이라고 느껴진다. 인간은 자신이 싫어하는 특성을 제외하다 보면 결국 남아있는 애매한 특성이 자신의 본성으로 느끼게 된다. 4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에서 1번, 2번, 3번은 답이 아닌 것이라면, 4번이 답이라고 선택하는 것과 같다. 4번도 틀릴 수가 있듯이, 인간의 본성을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의 본성을 잘 모르는 것이 늘 나쁜 것은 아니다. 단 모르려면 철저하게 몰라야 한다. 철저하게 나를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 이르러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고통도 조금이 아니라, 철저하게 뼈저린 고통을 겪으면 세상이 180도 다르게 보인다. 이처럼 누구나 내면의 본성을 100% 알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이 외면에 표출된 결과인 인간의 특성을 관찰할 수는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성격, 또는 성품, 인성을 통합해서 특성으로 지칭한다. 약간 복잡한 구분에 대해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이글에서는 현대 인간의 특성에 대해 여러 사람의 관점을 살펴본다.      


사람 중에는 매사에 지나치게 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도 있다. 심리학자인 일레인 아론은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에서 사람 중에 약 15~20%가 태어날 때부터 외부 자극에 매우 민감한 신경 체계를 갖고 태어나며, 이들은 다양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장점으로 지적능력과 사회적, 주변적인 미묘한 단서들을 쉽게 포착하는 능력을 들 수 있고, 단점으로 자기표현이 약하고, 너무 큰 자극에 노출되면 쉽게 압도당하는 면을 들 수 있다. 일레인 아론은 민감한 성격이 본질에서 나쁜 것이 아니고 자산이므로, 자신의 특성과 장점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서 발전시키라고 한다. 수줍음은 마치 극복해야 할 결점처럼 인식될 수 있지만, 민감성은 결점도 아니고 고쳐야 할 성격이 아니라고 한다. 일레인 아론의 분석처럼 자신의 민감성을 파악해서 이해하고, 삶에서 장점을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 민감성을 가진 사람이 탁월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물론 예술가나 과학자 중에 매우 민감한 성격의 소유자가 많다. 그러나 민감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도, 지적능력이 기대처럼 높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사실 민감하거나 둔감하거나 그 중간에 놓인 회색지대가 매우 넓다. 따라서 자신이 민감한데 탁월하지 않다고 해서 슬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또한, 민감한 사람의 단점으로 사회성이 낮다고 보는데, 이런 분석도 인간의 특성을 너무 일반화한 것으로 보인다. 민감해도 나이가 들면서 자신 스스로 훈련해서 성격을 느긋하게 바꿀 수 있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한편, 수전 케인은 <콰이어트-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에서 차분하고 내향적 성격의 사람이 집단생활을 못 해도 깊은 성찰력과 높은 문제 해결 능력과 성취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내향적인 사람은 어려서부터 외부 자극에 섬세하고,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칼 융은 <심리 유형>에서 "내향적인 사람은 생각과 느낌이라는 내면세계에 끌리고, 외향적인 사람은 사람과 활동이라는 외부세계에 끌린다"라고 비유했다. 오늘날 외형적 자아상은 심한 경쟁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본보기로 여겨지고 있고, 사람들은 자신감을 드러내야 한다는 시대적 강박 속에서 살고 있다. 수전 케인에 의하면, 현대 사회에서 내향적인 사람은 뒤처진 사람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내향적인 사람은 사회의 부정적인 과소평가를 극복하고, 자신의 특성과 장점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내향적인 사람도 핵심 목표가 생기면, 외향적인 사람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고 한다. 수잔 케인이 말하는 내향적인 사람 개념도 일레인 아론이 말하는 타인보다 더욱 민감한 사람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두 사람 모두 지나치게 민감하거나 내향적인 사람이 사회생활에서는 약간 단점이 있지만,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장점이 있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과 특성을 마치 혈액형에 따른 성격 분류처럼 너무 고정된 것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사람의 특성은 자신의 이해와 노력 여하에 따라 정반대의 특성으로 바뀔 수도 있다. 수잔 케인은 미국 사회에서 외형적 태도를 강조하는 문화에 대해 비판적이다. 반대로 우리 사회에는 유교적 전통의 영향으로 아직도 외향적인 성향을 꾹 눌러서 내향적이고 순응적인 자질이 요구되는 상황이 많다. 물론 우리나라에서처럼 사회문화적 억압으로 인해 내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과 수잔 케인이 말하는 깊은 통찰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내향적인 사람은 다르다. 그러나 능력이 있는 외향적인 사람도 자주 억눌리고 위축되면,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체념 상태에서 내향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도 내향적 성향과 외향적 특성을 모두 다양하게 존중해주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이미 홈스는 <넌센스>에서 인간이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싫어하며, 특히 위협이 있으면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불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릇된 결정을 내리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감정의 함정에 안 빠지려면, 마음이 모호성을 어떻게 다루는지, 어떻게 실수를 쉽게 저지르는지를 이해하고, 사전에 불확실성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하라고 권한다. 오늘날은 기술발전이 많은 옵션 적인 일을 만들어내어 선택을 더욱 어렵게 한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신속한 종결 욕구(need for closure)는 혼란과 모호성을 없애려는 심리이며, 모호성에 대한 불관용(ambiguity intolerance)적인 태도는 그릇된 정보라도 확신하게 만든다.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IQ나 의지력이 아니고, 모호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식이라는 관점은 타당한 견해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보통 사람의 범위를 뛰어넘는 사람들>에서 개인적인 지능이 높거나 노력만으로는 성공할 수가 없고, 가정의 성장환경, 사회문화적 환경, 교육방식, 행운 등이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해야만 성공과 부를 얻을 수 있다는 통찰을 보여준다. 미국 심리학자 루이스 터먼(Lewis Terman)이 IQ 140~200 사이 천재 학생 1,47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지능과 성취도 사이에는 어떠한 상관관계도 없고, IQ가 120을 넘어서면 성격이나 인성이 지능보다 더 중요하며, 가정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밝혀졌다.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도 <감성지수, EQ>에서 지능보다 감성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뛰어난 선천적 지능을 갖고 있어도 세상에 적합하도록 그들을 양육시켜줄 가정 등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크리스 랭건이라는 IQ 195의 천재가 주정뱅이 의붓아버지 밑에서 성장했고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능력 발휘를 못하고, 결국 시골 목장에서 말을 돌보며 살았다고 한다. 반면 다른 천재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맨해튼의 부유한 아버지 밑에서 우수한 양육을 통해 많은 실용 지능을 배우고, 나중에 핵무기 개발사업인 맨해튼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말콤 글래드웰에 따르면, 선천적인 지능이 없어도 누구나 가정교육, 학교 교육, 성장문화, 역사와 공동체, 끈기와 노력, 행운과 기회 포착 능력의 종합을 통해서 아웃라이어로 만들어질 수 있고, 이런 기회를 여러 사람에게도 확대하자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가정과 자신의 성장 경로에서 환경적 요인이 차지하는 인간의 특성 배양능력을 목격했다. 사실 우수한 가정과 교육환경에서 자라면, 누구나 더욱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루소나 페스탈로치 등 보통교육의 중요성을 알린 선각자들의 생각도 비슷했을 것이다. 모든 자녀에게 인간의 우수한 특성이 배양되도록 사회적으로 우수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버트 그린의 책들은 인간관계에서의 특성 연구에 관해서 21세기 손자병법으로 불린다.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욕망과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 심리 묘사에 있어서 독보적인 작가이다. 그는 <권력의 법칙>, <전쟁의 기술>, <유혹의 기술> 3부작으로 유명하다. 로버트 그린은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인간은 자기 발전을 위해 인간의 특성을 배워야 하며, 현실을 인정하는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파괴적인 사람들이 당신을 해롭게 하지 못하도록 다른 사람들의 특성을 살펴서 효과적인 판단을 하라고 한다. 그는 모든 인간이 같은 옷감으로 만들어졌고, 따라서 모두 같은 성향을 갖고 있다고 여긴다. 그는 "이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우리 속에 있는 부정적인 성격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힘이 더욱 커짐을 알게 된다"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에게서 18가지의 본성(* 국문 번역본은 필자가 사용한 특성을 본성으로 번역)을 발견한다. 즉 비이성적 행동, 자기애, 가면을 쓴 역할 놀이, 강박적 행동, 선망, 근시안, 방어적 태도, 자기 제한, 부정적인 면의 억압, 시기심, 과대망상, 젠더 편견, 목표 상실, 주변에 동조, 변덕, 공격성, 시대 흐름에 역행, 죽음 부정 등이다. 로버트 그린의 번역 책에서 사용된 본성은 필자에게는 특성으로 이해된다. 로버트 그린의 생각 중에서 이성과 감정에 대해 공감이 되는 내용이 있다. “이성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능력이 아니다. 이성은 훈련과 연습을 통해 습득되는 능력이다. 이성이 감정을 초월하기 위한 수단이 아님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와 ”인간이 이성적 능력에 접속되지 못한 이유는 감정이 마음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균형 잡힌 상태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사고하기이며, 충동이나 감정이 생각하는 자아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이다. 사실 데이비드 흄이 18세기에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고 하면서,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어서 헤르더도 감정의 다양성을 중시하며, 칸트의 이성 중시 입장에 대해 반기를 들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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