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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Jun 06. 2020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있다

삶의 주체에 대한 자각

사람은 기억도 하지만 망각도 잘한다. 늘 지금의 모습을 기준으로 당연하게 나라고 생각한다. 아기 때,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청년시절 때에도 그 당시의 모습만이 나였다. 과거 한 때 당연하게 나였던 존재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그리고 미래에 당연하게 나일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지금 어떤 문제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과거에도 어떤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했었지만 이렇게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지금의 문제도 미래의 또 다른 나와 만나기 전에는 사라질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어쩌면 우리가 사는 것(to live)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게 되어있기(to be lived) 때문이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게 되어있다고 여길 수 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 있다고 느끼면 모든 인생의 문제 해결에 대한 주체가 바뀐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아가게 하는 존재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또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질병도 마찬가지다. 크게 보면, 우리가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질병도 피할 수 없다. 내가 원해서 아픈 것이 아니고, 병에 걸리게 되어있고 때가 되면 낫게 되어있다. 만약 의식하는 내가 나의 몸과 정신의 주인이라면 사는 동안 몸이 아프지도 않고, 정신적인 문제도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의 의식은 늘 건강하고 편안한 마음 상태를 원하기 때문이다.


환경파괴로 인한 코로나 19 발생이나 인류를 멸종시킬 가공할 핵무기를 만드는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을 더 이상 만물의 척도 또는 최고의 영장류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 존재는 파괴와 창조를 반복한다. 공원의 수목이 봄이 되면 무성한 잎새를 다시 얻고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만 남는 것과도 같다. 수목이 원한다고 해서 겨울에 잎이 나지 않는다. 또한 수목이 원치 않는다고 해서 봄에 잎새가 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산책하는 애완견들의 행동을 보면 모두 코를 끙끙거리며 냄새를 맡느라 계속 가기를 원하는 주인과 씨름을 한다. 어떤 거대한 힘이 모든 애완견들을 살아가게 한다. 최근에 놀라운 과학기술이 발표되고 있다. 과학적인 발견도 인간이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다. 파킨슨병에 걸려 점차 소실되는 뇌세포를 대신해서 환자의 피부 세포를 재프로그래밍해 뇌에 주입해서 병이 치유되고 있다(뉴잉글랜드 의학저널, 5월 4일). 또한 사람의 피부 세포를 역 분화시켜 만능 줄기세포를 만든 다음, 이 줄기세포로 미니 간을 만들어서 쥐에 이식해서 성공적으로 담즙산과 요소를 분비하고 작동하였다고 한다(메디칼 익스프레스, 6월 2일). 모든 세포 속에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과 공유하는 모든 정보가 들어있다는 홀로그램적인 주장이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신비한 기술이 발견되어질수록 인간과 우주를 움직이는 어떤 거대한 힘이 느껴진다. 인간은 이런 거대한 힘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있다. 따라서 당장의 문제나 건강상의 고통도 머지않아 다른 기쁨과 활력으로 바뀐다고 믿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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