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을 거듭하던 미국주식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엔화도 70엔대로 돌입한 이후 80엔대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고착화될정도로 엔고가 계속 진행되었던 그때.
저는 투자금과 함께 1년간 절약하며 모은 월급과 2번의 상여금(보너스)을 전부 합쳐보니 약 550만 엔 정도가 모여있었고, 7월과 8월 두 차례 월급날을 맞이하며 합계 약 600만 엔의 현금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월급의 대부분을 저축할 수 있었던 건 기본 절약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이외에 지인들에게 한국어 관련일을소개받아 단기 통역 번역 일을 했었고, 병원의 직원복지정책 중에 타 지역 직원에게는 월세의 일부를 지원해 주었기 때문에 월세 3만엔은월급 외의부분에서 감당이 가능했었습니다.
또 식비는 운이 따라준 부분이 있었는데, 병원이라는 특수한 직장환경 속에 2010년 입사당시의 해가 일본정부에 의해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의 무분별한 식사접대가 실질적으로 금지되기 직전의 해였습니다. 마지막 불꽃은 강렬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해 정말 많은 제약회사들이 식사접대 영업을 했었습니다. 저는 일반 사무직 외에도 한일교류 책임자 후보로서 취업을 했던 터라 병원의 간부들과 함께 자주 이러한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고 이게 또 자연스럽게 식비절약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시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 저는 왜 간접투자를 그만두고 달러도 다시 엔화로 환전을 했을까요?
사실, 그 이유는 일본에서 집을 사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일본의 부동산 업자들이나 은행직원들은 물론, 주변 병원직원들까지 한결 같이 '새집을 대출받아서 사면, 30년간 월세 정도의 금액을 지불했을 뿐인데 집이 생기는 것과 같다.'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약 당시 은행에서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살 경우, 여러 대출금리 우대정책을 적용해도 평균 1.5%대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저금리환경 속에서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아도 금리는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영업멘트와 함께 30년 혹은 35년간 월세 낼돈으로 마이홈이 손에 들어오니 이득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저금리와 월세를 냈더니 집이 생긴다라는 달콤한 말은 집을 사려고 하는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피할 수 없는 유혹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아니, 저렇게 대출금리도 낮은데 차라리 대출을 받아서 그 보다 높은 수익률을 내면 되는데 왜?'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나, '집값 중 일부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남은 잔액을 대출로 돌리기 위해서 인가?'라고 생각하신 분은 계시지 않은가요?
정답을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이 600만 엔으로 집과 토지는 물론, 부동산 수수료와 등기등을 모두 마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