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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Nov 21. 2021

서른보단 마흔에 가까운 삼십대의 우정

친한 친구에게도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말



오랫만에 돌아온 한국의 가을은 밝았다. 그리고 혹여 내가 잊어버릴까 다시 뿌연 미세먼지가 낀 하늘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하면서도 밝을 수 있는 한국의 하늘과 미세먼지 하나 없이도 어둡고 흐릴 수 있는 베를린의 하늘을 떠올리며 참 이래저래 고르기 어려운 가을 하늘이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동안은 눈이 오랫만에 따가울 정도로 심했던 미세먼지 가득한 날씨였지만, 내 마음엔 여전히 한국의 푸르고 환한 가을 하늘만 기억하고 싶어졌다.






한 해 사이, 서울 내에 꽤 많은 찻집들이 생겨난 듯 했다. 예전부터 찻집들이 모여있던 인사동이나 삼청동만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망원동이나 샤로수길에도 청년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핫한 찻집들이 제법 있었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남들은 술을 거나하게 마시며 할법한 이야기들을 차를 마시며 친구들과 나눈다. 매번 술만 마시던 친구들도 나때문에 안입는 옷을 입은 것 마냥 어색한 표정으로 찻집에 들어서곤 했는데, 이내 그 어색함은 서로의 안부로 공간의 서먹함을 채워주었다.





이제는 찻잎티를 마시려 일부러 특정 지역에 가서 찻집을 찾아 가거나 일반 커피집에 가서 아쉬운 마음에 마시는 티백티가 아니더라도 제법 가까운 구역에 마시고 싶은 찻잎티를 파는 찻집들이 생겨난 것처럼 우리나라도 많이 변해가나 싶었지만, 친구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또 한편으론 더딘 것들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독일에선 적어도 일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국은 일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무척 힘든 나라인 것 같았다. 돈을 많이 벌 수는 있지만 그만큼 모든 것을 갈아 넣어야 하는 노동환경,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했다는 사람들마저도 한국사람이면 어쩔 수 없다는 윗선들의 꼰대문화.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회초년생의 동생들이나 그런 동생들과 나이 지긋하신 윗선들 사이에 끼여있는 중간 매니저 급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아프고 슬픈 무언가가 자리함을 일을 하는 시간들이 오래될수록 더 진하게 느껴지는 듯 하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이 찻집인지 약국인지, 우리가 마시는 물이 차인지 약인지 헷갈렸다.





외국에 사는 나에게 만나는 사람들이면 하나같이 물어보던 해외에서의 오징어게임의 위상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모두 같은 질문을 물어볼 수 있는지 오랫만에 낯설고 신기한 기분을 들게 했다.


서로의 한해와 고민들을 나누던 도중, 어떤 친구가 조심스러우면서도 진솔하게 답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미안한건지 슬픈건지 혹은 둘 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안하게도 너의 고민이 잘 와닿지가 않아.”


우리나라 남쪽 끝 작은 시골마을 한 곳에서만 평생을 살고 있는 그 친구에게 스무살 이후 아프리카며 동남아며 이제는 유럽에까지 넘어가 매번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나의 고민은 어쩌면 친구의 말처럼 들어줄 순 있지만 공감까지 얻을 수는 없는 어쩌면 지극히 다른 사람의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너의 고민이 잘 와닿지 않는다는 솔직한 마음을 내뱉음으로써 그동안 우정이 끊어질까 무서워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엔 와닿지 않던 그 속마음을 솔직히 고백한 것 같아 오히려 더 한발짝 더 친해진 관계가 된 느낌이 들었다. 이십대의 친구들은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삼십대에도 우정을 이어갈 수 있는 친구들은 우리가 비록 이제는 같은 공부를, 일을, 삶을 살아가지 않더라도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과거의 추억만으로도 하룻밤을 지새울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이제는 서른보다 마흔이 더 가까울 수 있다는 나이에 같이 놀라워하는 친구들을 보며, 또 우리들의 서로 다른 삶을 보며 삼십대의 우정에 대해 떠올려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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