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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Aug 21. 2021

시계를 자주 쳐다보는 연인

시침과 분침이 서로 맞춰지기까지

국제연애를 하면 시계를 자주 쳐다보게 된다. 시차에 따라 우리는 같은 해를 볼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은 해를, 다른 사람은 달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국제연애를 하면 시계를 보는 행동이 어느새 습관이 되어 그가 혹은 그녀가 언제쯤 일어나 인사를 나눌 수 있을지 시간을 확인하곤 한다.


그렇게 독일과 한국에서 시간과 시차를 사이에 두고 결혼 준비를 하며 문득 그와 내가 시계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에게 맞춰간다는 건 어쩌면 시계처럼 한참을 돌아가야 하며, 반복적이고, 무엇보다 시간이 꽤나 걸리는 일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국과 독일로 떨어져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잠시지만 또 새로운 형태의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었다. 둘 다 모두 학생이었을 때는 우리 둘을 제외한 우선순위에 둘 중요사항이 딱히 없었다면 지금 남자 친구에겐 일이라는 새로운 우선순위가 생겼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오히려 함께 있었을 때도 싸우지 않던 걸로 쉽게 마음이 상하곤 했다. 둘 다 일을 하지 않았을 땐 항상 같이 있었는데 한 명만 일을 하고 나니 나는 항상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건 이렇게 시간이 떨어지고서야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남자 친구는 생각보다 말이 없는 아이라는 것도 함께 지내고 나니 새롭게 알게 되었다. 대화가 많이 필요한 내가 일이 없고, 말 수가 없는 아이가 일을 하게 되었고 게다가 우리 사이에는 시차까지 더해지니 이제껏 함께 일 년 반이나 보낸 장거리 연애 커플이 맞았나 싶을 정도로 우리의 상황, 그리고 우리들은 달라져 있었다.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나한테 서운한 소리까지 들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아직 그냥 독일로만 날아가기에는 아쉬울만한,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어도 독일에 가야 하는 이유로 그냥 흘려보내야 하는 경우들이 찾아오면 나도 나대로 섭섭하고 답답한 일들이 생겼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음성이 없는 문자 메시지에도 언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성이 없는 문자도 소리가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감정이 높아져 문자로 소리를 지르곤 한참 동안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남자 친구의 문자 역시 그의 업무 시간과 더불어 시차까지 겹쳐 인터넷이 아닌 파발마로 보내는 것 마냥 더디게 느껴졌다.


그렇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처음엔 서운하고 속상한 것만 가득하다가, 그래서 늦은 밤에도 잠이 오지 않다가 그 시간도 조금 지나고 나니 다시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단호한 것처럼 그도 이렇게 단호하다면 이 아이도 나만큼 속상한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세상에는 권력의 불균형 속에 일어나는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도 수없이 존재하지만 나는 적어도 우리의 관계가 서로를 존중하고 동등하게 여겨주려고 노력하는 관계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갈등이란 누구 한쪽에서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나도 어느 부분 비슷한 만큼 지금 이 상황의 원인 제공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서로가 자신의 의견만 말하느라 서로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아서, 그게 답답해서 서운해지고 화까지 나게 됐지만 이렇게까지 우리가 대립한다면, 그 아이도 그 아이의 주장이 굽힐 수 없을 만큼, 나만큼의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 나름대로의 정말 명확한, 화가 날만한 이유가 있었다. 또 그렇기에 여전히 내가 화가 나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마음 역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떠올리니 그 아이의 기분도 지금의 나처럼 좋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 그도 속상한 기분이겠구나 싶어서 보듬어 주고 싶었다. 내가 필요한 것처럼.


이유와 원인이 어찌 되었건 오늘의 불통은 내가 그 아이가 이야기를 하는 도중 대화를 멈췄었다. 그래서 대화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사람도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 난 건 화가 난거지만 대화를 끊은 건 어찌 되었건 사람 대 사람으로 미안한 일이니까.


그렇게 한참 동안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모든 감정들이 내 안에서 한 번씩 등장하고 나서 다시 이 아이에게 말을 걸었을 때, 이 아이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아이, 그의 이성이 나를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속상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자꾸 이성적으로만 대화를 하는 그의 대답이 처음에는 섭섭하고 나중에는 감정에 대한 대화는 불가능한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이성적인 대화법은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다시 감정을 보살피고 그에게 돌아왔을 때 그의 한결같은 이성은 방금 전 어떤 논쟁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는 안정감을 주었다.


그렇게 다시 대화를 이어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풀리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여전히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의견을 고수했다. 어릴 적 그렇게 말하던 네 마음만 있어? 내 마음도 있어라는 레퍼토리가 서른이 넘어서도 변하질 않았구나 싶었다. 하지만 두 번째 대화를 통해 처음에는 내 생각과 이유만 있었다면 두 번째에는 내 마음은 여전히 이러하지만 적어도 저 아이의 마음은 또 저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결론은 지금 서로가 달리 느끼는 마음이 변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서로가 어떤 부분에서 섭섭해하는 것을 알기에 그 부분을 조금 더 세심하게 노력하기로 했다.


시차와 시간의 제약 속에서 그와의 대화를 어렵사리 풀어나가면서 나는 우리가 시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시침 같다면 나는 분침 같았다. 나의 분침이 인사이드 아웃의 오감처럼 이성적, 감정적, 감성적, 논리적 등의 모든 심리적인 요소들을 작동하며 한 시간만큼의 시간을 돌아오는 동안 남자 친구의 시침은 원래 가야 하는 방향대로 묵묵히 지나간다.


숫자 하나를 옮기기까지 시침은 차분히 자신의 길을 가는 동안 분침은 그새를 못 참고 숫자 하나를 넘어 열두 개를 모두 돌아버리고 온다. 시침과 분침처럼 우리는 너무 다른 사람들인데 신기한 건 시침과 분침이 그렇듯

결국에는 다음 단계에서 둘은 다시 만나긴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우리의 시간에는 아주 느리고 작긴 하지만 분명 예전과는 다른 아주 조금의 차이, 이해가 늘어나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장거리 연애를 가지고 하나의 시간을 옮겨가고 있지만 결혼을 하고 함께 살아가면 앞으론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서로에 대한 이해를 늘려가기 위한 과제들이 주어질까. 너무너무 다른 사람들이 연애를 한다는 것은 사실 매 순간 같은 방향과 시간을 나눠서가 아니라, 한 시간이 걸리고 나서야 함께 있게 되는 그 짧은 순간 때문은 아닐까. 이렇게 시차처럼 너무 다른 우리가 시침과 분침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이어져 있다는 것, 그래서 잠깐이라도 함께 마주하고 또 그렇게 같은 방향을 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무척 신기하고 기적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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