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개보다는 앵무새에 가까운
나는 욕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팟캐스트라도 세상 편하게 사용하는 욕들이 들려오면 그게 불편해서 팟캐스트를 듣는 것도 싫어지는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말을 예쁘게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남편이 되다 보니 아름다운 우리나라 말에서 가장 불편해하던 소리들은 걸러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어를 모르는 상대방과 함께 살면서 한 가지 예기치 못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그건 그렇게 확신했던 나의 한국어 언어 습관을 남편의 한국어를 통해 의도치 않게 검열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혼 초반,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 공부하던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우리나라 속담 중 하나인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는 각자가 말하는 언어에 대해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던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서로의 언어에 대해 배울 수 있게 될지 퍽 궁금하게 만들던 속담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서당과 개와 풍월에 대한 설명을 가만히 듣던 남편은 나의 설명이 끝난 뒤 자신이 알고 있는 한국어로 짧게 답했다.
“저 개 아닌데요.”
ㅋㅋㅋㅋㅋㅋㅋ
“네가 개라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어떤 영향을 받으면 스스로 깨우치고 배우는 것들이 생긴다는 의미라고”
예상치 못한 남편의 답에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남편의 말처럼 아무리 서당 마당에서 삼 년을 뒹구는 강아지가 사람 말을 제법 알아들을 수 있을지언정 사람의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사실 생물인류학의 주제 중 하나이기도 했다. 무엇이 사람을 규정하는가라는 커다란 질문의 답을 알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인 인간의 언어, 그 인간들의 언어가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기준 중에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