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우리들의 부활절 연휴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일상이었다고 생각했는데

by 따뜻한 선인장

가끔 글을 쓸 수 없는 날들이 있다. 사실은 많다.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꼽으라면 수도 없이 꼽을 수 있다가도 하나도 없을 수 있듯이 글을 쓸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수없이 세어보다 결국에 끝을 내는 건, 특별한 이유가 없었나 싶은 생각.


그럼에도 나의 경우는 삼십 대가 넘어가며 알게 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때, 배워갈 때 회로 속 전류들이 서로에게 연결되어 반짝이듯 아이디어가 연결되어 글을 쓰며 정리하는 케이스였다. 그런데 가정주부가 되면서, 취업준비를 하면서, 그런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사라진 느낌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아서 글이 써지지 않는 건 아닌 듯했다. 예전에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라서 그렇지, 사실 나는 쉬는 시간 EBS의 정승제 선생님의 수학 강의들을 하나 둘 풀어가고, 또 자바와 파이썬을 혼자 배워나가고 있었다.


누군가가 고등학교 때 수학을 제대로 즐기지 않았어도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그건 정말로 그 사람의 선택에 따라 어려운 수학 없이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할 것 같다. 그렇게 20년은 족히 수학 없이 잘살아왔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지금 또 생각지 않게 수학을 배워보며 생각하는 것은 수학을 알았더라도 특별히 나쁘지도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 옆에 있는 이 특이한 남편이라는 생명체 덕분에.


햇살이 귀한 독일에서 환한 햇살이 비춰주는 주말의 아침. 이 상쾌하고 달콤한 아침햇살을 반겨주는 거실로 기분 좋게 들어섰는데 내 발걸음이 멈춰버렸다. 커다란 티브이에 영어와 숫자들이 섞여 비처럼 내리는 상대성이론 강의가 나오는 풍경. 이제 곧 결혼한 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럼에도 내가 진짜 결혼한 게 맞나 싶을 때가 여전히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내가 결혼을 한 게 맞다고 알려주는 장면들이 몇몇 있었는데 지금이 그렇다. 내가 혼자 살고 있었다면 절대로, 실수로라도 틀어질 일이 없는 프로그램들이 우리 집 텔레비전에, 유튜브에 지금은 종종, 사실 제법 자주 나타난다.


“물리학을 이해하기 쉽게 하는 기초 수학’

한국말로도 분명 알아듣지 못할 제목이었겠지만 이게 독일어이든 영어이든 언어는 굳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 제목에 내 아침 기분이 망쳐지는 듯한 이 순간, 우리 남편의 표정은 그렇게 순수할 수가 없다. 어찌나 해맑은 표정으로, 때 하나 묻지 않은 시골 청년 같은 미소로 강의 내용이 무척이나 힐링이 된다는 이 아이와 나는 어떻게 결혼을 한 걸까.


이런 남편 덕분에 나는 정승제 선생님의 강의가 무척이나 재밌다는 것을 반칠십이 다 되어서 알게 되었다. 이처럼 고퀄리티에 유머까지 겸비한 강의가 심지어는 인터넷만 되면 무료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놀랍고 감사한 일이었다. 특별히 어디에다 적어 감사를 표한 적은 없지만 늦게 나마 알게된 선생님 덕분에, 그리고 남편 덕분에, 그동안 많이 사용하지 않아 녹슨 나의 수학적 논리력은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다시 천천히 움직이려 하고 있다.


늦은 주말 오후, 나른한 하루를 보내던 도중 남편이 문득 물었다. 곧 있으면 우리가 만난 지 5년이 되는 걸 알아? 이번 주부터 부활절 연휴가 시작되어서 이번 연휴기간엔 무얼 하지 어렴풋이 떠올려보기만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랬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이유는 바로 부활절 연휴 때문이었다. 학생이었던 우리가 부활절이라는 연휴 덕에 꽤나긴 방학 같은 연휴가 생겨 여행을 떠났고, 그 여행지에서 우리의 인연이 이어졌던 것이었다. 매해 떠올려보는 그날인데도 신기한 건 말하면 말할수록, 시간이 멀어질수록, 우리 이야기인데도 참 신기한 일인 것 같다.


살아보니 더 다른 것을 알아가는 우리. 남편은 나 때문에 그의 삶에 없던 교회 나들이를, 한국인 커뮤니티를 몇 번 다녀와보고, 나는 우리 엄마도, 국가 시스템도, 수능 성적도 건들지 못했던 수학에 대한 관심을 이 아이 때문에 처음 진득하니 다시 다잡아 본다.


특별히 쓸거리가 없는 삶이라 생각했는데.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예전만큼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을 뿐. 언젠가 지금 배우고 있는 이 새로운 것들도 내가 좋아했던 것들 만큼이나, 남편이 좋아하는 만큼이나 나 역시 좋아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마흔에 가까워지면 좋은 것들이 무엇이 있나 굳이 찾아본다면 요즘은 그런 모를 일을 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성적 때문이 아니라, 해야 되니까가 아니라, 그냥 한 번 배워보는 거. 잘하든 못하든 배워봐도 괜찮다는 것. 이제야 돌이켜보면 왜 예전에는, 학교에 다닐 때는 그냥 한 번 배워보는 것이 왜 안 되는 거였는지 괜한 심통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나마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도 다행이다 싶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잘하든 못하든, 그래서 그게 글을 쓰고 싶게 만들든 그렇지 못하든, 아무튼 그동안 내 삶에서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무언가와 다시 마주쳐보는 것도 괜찮은 것이었다. 누구에게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 아이와 5년을 알아가며 떠오른 생각이었다. 첫 만남 5주년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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