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 며칠이면 번아웃이 없을까?

월요병을 모르던 남편의 근황

by 따뜻한 선인장

외국인 남편을 만나고 나서 문화 차이라는 것이 있는지는 문화를 살짝이나마 공부한 인류학자로써 흥미로운 주제였다. 다행히도 인류학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차라는 것을 열어두는 학문이었는데 그 지점에 심리학과 또 연결되는 부분인 듯도 했다.


그렇게 남편과 여행, 연애가 아닌 일상을 함께 공유하면서 나에게 이건 분명 문화 차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월요병. 우리 둘은 모두 석사를 마치고, 남편이 직장을 잡으면서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래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그의 첫 직장인 샘이었다.


금요일이 되면 일을 하지 않은 나조차도 괜히 한국에서처럼 마음이 들뜨는 것을 주체하지 못했는데 남편은 똑같았다. 월요일이나 수요일이나 금요일이나 일요일이나. 나는 그가 왜 금요일이 되었는데도 들뜨지 않는지 궁금했다.


“금요일인데 왜 들뜨지 않아?”


그러자 남편은 물었다.


“금요일인데 왜 들떠?”


나는 그런 반응은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금요일이 왜 신나는 날이 되었는지, 시든 꽃도 다시 피게 만들 것 같은 마법 같은 금요일이 그에겐 통하지 않는 듯했다.


“아니, 금요일 다음 날은 토요일이고 일요일이잖아.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는 좋은 날!”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나는 회사에 가는 월요일도 좋고, 회사에 안 가는 토요일도 좋고 그냥 다 똑같은데.”


우와. 멋있는 말이었다. 일을 정말 사랑하면 나올 수 있는 말인가 싶었고, 나는 남편이,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일요일이나 금요일이나 모두 행복한 날이길 바랐다. 진심으로.


그렇게 3년이 지났다. 그리고 반추해보니 결국 자연의 순리인 것이었던가 싶은 월요병이라는 것을 남편도 알아버렸다. 금요일엔 평상시와 같은 일을 해도 괜히 콧노래를 부르더니 일요일은 같은 일을 해도 슬퍼 보였다. 나에게 월요병이 뭐냐는 질문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남편이 월요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의 직업이 유별나긴 했다. 1년 동안의 적응 기간이 끝나자마자 코로나가 터졌고, 웬만한 직장들이 모두 문을 닫거나 재택으로 일을 돌리는 와중에도 그는 마치 그 옛날 칸트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하루의 시간을 예측할 수 있었다는 것처럼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오피스로 출퇴근했다.


남편은 무조건 그 시간, 그 자리에 비가 오나 태풍이 부나 (심지어는 전쟁이 터져도 왠지) 있어야 하는 그의 일에 서서히 지쳐갔고, 항상 정해진 곳에 가야 하는 그 월요일이 되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요즘 한국도 일자리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며, 복지가 예전보다 더 나을 수 있으니 한번 찾아보자며 꼬드겼었다. 한국에 같이 나갈 때는 일하는 친구들과 함께 만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설득도 해볼 참이었다.


그런데 나의 그 계획은 보기 좋게 날아갔다. 남편도 분명 일이 힘에 부치는 상황이었는데, 내 한국 친구들은 그런 남편이 3주 동안이나 휴가를 내서 한국에 머물고 그렇게 휴가를 쓰고도 또 2-3주를 더 쓸 수 있다는 것부터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한국인은 물론이거니와 이제는 외국인들도 한 번 들으면 알 수 있는 그런 대기업을 다니는 친구들이라고 해도, 남편보다 더 적게 야근이나 주말근무까지 한 친구들은 없는 듯했다. 돈은 한국 친구들이 분명 더 많이 버는 듯했음에도, 그만큼 더 불안해하는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나는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나서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내 의도와는 다른 이야기들만 나오게 되어서 결국 일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휴가를 길게 다녀오고 나서 한참 괜찮은 듯하더니 요즘 남편은 다시 깊은 번아웃이 찾아온 것 같았다. 마침 독일에선 성령강림일과 오순절 월요일이라는 공휴일이 있어서 지난주 목요일과 이번 주 월요일까지 2주 동안이나 일주일에 3일, 4일만 일하는 주간이었다. 남편은 그 휴일을 이용해 주말마다 긴 여행을 갔다.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부러워 하는 휴가일수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리고도 병가는 따로 쓸 수 있고, 또 국가 지정 공휴일을 통해 종종 긴연휴를 갖는 남편이라도 번아웃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을 보며 나는 신기했다. 휴가가 얼마나 많으면 번아웃을 피해갈 수 있을까. 인간은 번아웃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일까 아니면 정말 어떤 복지환경은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이렇게 한국인 기준으로는 왠만한 안식년 부럽지 않을 휴가를 사용하면서도 번아웃이 종종 찾아오는 남편을 지켜보며, 이번엔 유난히 한국의 일하는 친구들 얼굴이 떠올랐다. 이렇게 몇몇 나라에서는 휴가를 넉넉히 가는데도, 더 많은 휴가 일수를 위해 투쟁하고, 또 일주일 4일 노동을 시도하는데, 도대체 한국 사람들은 무슨 일로 그렇게 일을 할 수 있는지 새삼 놀라웠다.


살짝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빈틈없는 회사가는 날. 휴가가 27일이 있어도 사실 회사는 굴러가고 나라도 굴러가는 듯한데, 한국의 회사는 왜 그리 휴가에 인색할까. 그렇게 쉬지 않고 일을 하니 겉으론 화려한데 뭔가 하나 마음을 건드리는 소재라도 나오면 금세 눈물이 터질 것 같은 그런 느낌.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을 이해하면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지금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진 않다. 그렇게 일했던 세대가 우리 세대를 먹여살린 것은 알지만 그래서 내 또래 친구들은 집집마다 기계처럼 일한 부모님들의 노후를 바라보고 있다. 행복한 가정도 있었지만 행복하지 않은 가정도 많았고, 행복하지 않은 이유 중의 많은 부분은 기계처럼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일해서 얻은 이유들이 많았다. 기계처럼 일하지 않는다고 개인과 가정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게 살아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이미 겼어본 사람들에게 똑같은 길을 따라가라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물론 남편의 번아웃은 회사나 문화 차이와는 별개로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보이는 것처럼 유럽에 오면, 독일에 오면 무조건 한국보다 회사생활이 쉬운 것도 아니다. 이곳에도 월요병이 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회사보다는 재택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와는 달리 이곳에선 회사나 일이 좋아서 월요일이나 금요일이나 요일이 중요치 않아지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첫 직장에서부터 그런 곳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꾸준히 옮겨 다니고 찾아다니면서 결국에 그런 직장에 정착하는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는 것 같았다.


일이나 회사나 인간관계에 있어 절대적인 것도, 영원한 것도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렇게 한국 사람들이 보기엔 이미 충분하고 대단한 것 같은 휴가를 가져도 번아웃은 찾아오는데, 한국 대다수의 회사처럼 일하며 휴가를 적게 가는 시스템에서는 번아웃이 오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필요한 것 같다는 것이다. 마치 자살률이 이렇게 높고, 그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늘어나도 이제는 뉴스에서조차 사라질 정도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으로 치부되는 것이 무서운 이유처럼. 정말 이렇게 일해도 괜찮은 걸까? 정말 괜찮아 친구야?


한국에선 나만 그런게 아니라 모두 그러니까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과 걱정이 한발짝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자살률처럼 무섭게 느껴졌다. 살면서 무뎌지면 안될 질문들이 세상에 있는데 외국에 살다보니 특별히 지금 한국 사람들에게 묻고 있는 질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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