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도 나는 너를 여전히 좋아할 것 같아

뜨거운 또 한 번의 여름

by 따뜻한 선인장

|주의: 이 글에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드라마를 아직 보지 않았거나 보려고 하시는 분들은 읽기 전에 고민해주세요|



이례적인 더위가 8월이 다 되어서도 이어지고 있는 유럽. 발코니 채소들은 하루만 물을 주지 않아도 금세 풀이 죽어 늘어져 있는 것처럼 나와 남편도 그렇게 지쳐가는 중이었다. 그나마 남편은 더위를 타면서도 그걸 즐기고 있었다. 나는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가 가장 생활하기 적합하다고 느껴서 날씨에 대해 불평불만이 많은 편이었는데, 반대로 남편은 생활하기 적당한 그 온도가 너무 덥지도, 그렇다고 춥지도 않은 그야말로 아무 재미없는 날씨라며 오히려 이 더위를 반기는 것도 같았다.


이렇게 차려주면 주는대로 뭐든 잘먹고 더우면 더워서 또 추우면 추워서 좋다는 이리 쉬운 남편도 힘든게 있었다. 바로 일이었다. 이상하게 올 여름, 그는 가장 더운 7, 8월 동안 딱 두 번빼고 매주 토요일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자전거로 매일 출퇴근을 하는데 이런 무더위에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을 하고 오면 남편은 당연히 녹초가 되어 있었고, 그게 너무나 이해가 된 나는 집안일을 모두 전담하고 있었다.


그렇게 주말 업무가 끝나가던 무렵, 남편은 어느샌가 그 무기력함이 익숙해지는 것 같았고 나는 혼자하는 집안일에 벅차기 시작했다. 남편의 주말 업무가 마지막이 되는 주에는 남편이 집에 돌아와도 밥을 같이 먹을뿐, 나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혼자 봤고 남편은 남편대로 좋아하는 것들을 하다 잠에 들었다.


이런 시기에 내가 본 한국 드라마가 스물다섯 스물하나인 것은 참 다행이었다. 드라마는 스무살 무렵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나에겐 서른살 무렵의 첫사랑이 바로 남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참 해맑게도 너무 예쁜 말만 해주던 희도의 응원을 보며 남편과 사귈때의 기억이 떠올랐고, 힘들고 슬픈 마음을 내보이고 그럴때일수록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이진이 대견해보였다.


나는 힘들고 슬프면 사랑에 대해 더 관심이 없어지던데 무엇이 이진과 나를 다르게 만들었나 떠올려보면 그건 보고 자란 사랑이 달랐던 것 같았다. 아무리 주변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부부가 정말 사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힘든 것을 같이 이겨내고자 하는 것이 진심이라고 느껴진다면, 삶의 힘든 순간 중에도 사랑을 지키고, 사랑이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나의 부모님도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시긴 했지만 서로 각자 이겨내셨다. 아빠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동안 자신을 잃어갔고, 엄마는 가장은 있지만 남편은 없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며 살았다. 그걸 어릴때부터 알았던 나는 이십대의 백이진과 달리 굳이 사랑을 하지 않아도 큰 상관이 없다고, 사랑하는 사람의 응원이나 친구들의 응원의 차이가 굳이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공부만 하며 이십대를 살아온 내게 백이진의 부모님 같은 역할을 해주신 분들이 생겼다. 바로 필리핀 현장에서 만난 어머니들이셨다. 나는 국제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곧 무너질 혹은 집안 어딘가가 이미 무너진 판자촌 마을에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집은 따로 살았지만 아무래도 사무실이 마을에 있고, 또 아주머니 50여명과 매일같이 지내다보니 사무실이 곧 아주머니들만이 아닌 아주머니들의 남편들과 아이들까지 밖에서 기다리는 작은 사랑방처럼 되어있었다.


남의 부부일은 칼로 물베기라는 것은 굳이 다른 가족의 예를 들지 않아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다른 부부들의 일에 굳이 개입하려 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가 특히 빈곤층의 여성 역량 개발이었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었다. 더불어 함께 살고 매일 보는 얼굴들이라 누가 다음날 멀쩡했던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변해서 오거나 혹은 뜬금없이 며칠을 빠졌다가 다시 나오면 이미 관련된 소문은 다 퍼진 뒤였다.


그런 마을사람들과 6년이라는 시간의 인연을 이어오며 배운 것이 있다면 세상에 바람잘날 없는 것이 바로 나무와 가족이라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잘나가는 재벌집 가족이라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부부사이며 부모자식, 형제자매남매사이인데 하물며 쓰러져 가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가족, 이웃들 간의 이야기는 보던대로, 듣던대로 흉흉한 사례들이 정말 있었다.


그러나 참 다행히도 내가 또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이런 와중에도 정말로 사랑과 희망만으로 가정을 이끌어내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남들 앞에서 정열적인 키스를 하거나 부러움을 사로잡는 다이아반지 같은 것이 아닌데도 다 무너져가는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태풍이 한 번 불고 나면 지붕이나 벽 한쪽이 무너진 집들이 바로 눈 앞에 있었고, 그런 와중에도 매일 같이 아주머니들은 일을 하러 나오셨는데, 그런 아주머니를 위해 점심시간이면 아저씨가 사무실 문 앞에 기다리셨다가 챙겨주는 작은 도시락 속에 그런 강력한 사랑들이 숨어 있었다.


인터뷰를 해보면 아주머니들은 항상 가족들의 오늘 먹을 밥을 위해, 혹은 내일 학교가는 아이를 위해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너무 뻔한 대답이라 처음 인터뷰는 지루하게 느껴지기까지도 했는데, 아주머니들과 한 해, 두 해, 세 해를 넘게 보내며 자신들이 답한대로 정말 가족들의 한끼 밥을 위해, 아이들의 학교 등록금을 위해 매일같이 사무실과 집을 오가는 것을 보고 나니 내 마음이 어느새 바껴있었다.


정말로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나오는 백이진의 폭삭 망한 가정에서도 어쩌면 그런 순간에도, 그런 순간일수록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것, 나는 그런 사랑을 아주머니들에게서 배운 것 같았다. 부유하거나 부유하지 않거나 사랑은 간직해야 하는 것이었고, 아주머니들은 제 사랑도 하나 간직하지 못하면서 남의 가족과 자신들을 도와준다고 와있는 나를 오히려 안타깝게 혹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생각하고 계셨다.


이십대 중반에서 서른이 된 순간까지 현장에서 아주머니들을 봐왔으니 밥은 먹었냐는 질문 만큼이나 매일 듣던 질문이 남자친구는 어딨냐, 연애는 안하냐, 결혼은 언제할거냐였다. 가족과 친척들이 하는 똑같은 질문들은 언제나 신경을 날카롭게 했고, 처음 아주머니들에게 들었던 같은 질문 역시 낯선 필리핀 아주머니들에게서 우리 할머니나 이모들의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아 바로 예민하게 들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머니들의 삶 속에 조금씩 들어가볼수록 아주머니들의 그 익숙한 질문 속에 숨겨진 메세지가 더 들어있다는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주머니들이 말했던건 그냥 여자이고 남자이기에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이가 차고 모두가 해서 하는 결혼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백이진의 부모님과 고유림의 부모님이 말했던 것처럼 “너도 이런 사람을 만나야지”의 이런 사람은 좋고 즐거울 때만이 아니라 힘들고 슬플때에도 힘이 되고 웃음이 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의미를 필리핀 판자촌에서 겪은 몇 번의 태풍과 침수, 그것도 모자라 필리핀 대학원에서 인류학 공부를 하며 4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뜨거웠던 청춘의 시간을 파란만장 했던 필리핀에서의 필드워크와 대학원 공부를 마친 뒤 이제 내가 뭘하고 싶은지 사람들이 물을때, 나는 결혼을 하고 싶다고 답을 해서 놀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나의 이 개인적인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웃으며 “결혼은 굳이 대학원을 가지 않아도 할 수 있지 않아?”라고 되묻기도 했었다. 그 마음이 뭔지를 너무 잘 알 것 같기에 나의 이 장황한 스토리를 들려줄까 싶은 적도 몇 번 있었지만 그냥 같이 웃고 말았던 적도 많았다.


그렇게 “이런 사람”이라는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되고 그런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해에 다행히 지금의 남편을 만나 우리는 결혼을 하고 함께 살며 뜨거운 또 한 번의 여름을 보내고 있는 참이었다. 이렇게만 쓰면 해피엔딩이겠지만 현실은 빛과 어둠이 짝꿍이듯이 우리에겐 좋은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마지막회를 하고나서 사람들의 실망과 원망이 워낙 자자했기에 도대체 어떻게, 왜 이렇게 사람들이 분노하는지 무척 궁금했지만 그때는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드라마를 보는 방법을 찾는 것이 귀찮아서 궁금하고 말았었다. 워낙 인기있는 드라마 하나가 끝나면 또 바로 그만큼 인기있는 드라마가 나오는 한국이라 스물다섯 스물하나도 그런 드라마 중 하나일거라고만 생각하고 마음을 비웠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그 논란의 마지막 편을 보게 되었고 나는 눈물이 찔끔 났다. 마지막 헤어질때는 속으로 ‘장거리 연애를 하라구!!! 장거리 연애를 해! 할 수 있잖아!!”라고 몇 번을 소리치다가 사실 자신이 없어져서 목소리가 들어가버렸다.


내가 끝까지 주장할 수 없었던 이유는 희도가 훈련을 자주 나가서, 이진이 뉴욕에 살게 되서만은 아니었다. 바로 직업때문이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와닿는 그들의 서사가 단순히 드라마이고 사람들이 해피엔딩을 원하기에 희도의 딸, 민채 아빠가 백이진일 순 없었다.


드라마를 보기 전까진, 정말 바른, 괜찮은 기자와 언론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딜레마를 갖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물론 드라마이고, 또 첫사랑 소재이기에 극적인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었겠지만, 나는 굳이 언론인이 아니더라도 참 사랑하기 힘들겠다 싶은 직업들이 있다는 걸 첫 직장에서부터 알아버렸었기에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엔딩이 그렇게 되버린 것이 무척이나 이해됐다.


내가 처음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며 선배들을 봤을 때, 나는 정말 한 분 한 분을 존경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고 나선 그 분들보다 그 분들 가족들이 더 존경스러워졌다. 이렇게 박봉에, 이렇게 고된 시간에, 사람들에겐 좋은 일 하신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과연 가족들에게도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되돌아보던 직업이었다. 백이진이 그랬듯 사랑한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이 더 많이 생길 것 같은 직업이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일잘하는 활동가들이 좋은 선배라고 생각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좋은 선배란 사람들에게는 물론 가족들에게도 좋은 활동가가 진짜 좋은 활동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게 얼마나 가능할지는 자신이 없었다.


국내를 배경으로 한 단체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정책을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처럼 보였는데 그 시민단체가 국내를 넘어 해외 어느 곳이든 가능한 국제개발엔지오가 되었을때, 나는 결혼하지 않기로 어릴때부터 마음 먹은 것이 내 직장생활에 도움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현장에 가면 어느 곳이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는 있겠지만, 어린 왕자가 누누히 말해왔듯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그런 기적같은 일은 정말 기적처럼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설령 그런 기적같은 일이 생기더라도, 정말 기적처럼 지금은 같은 현장에서 만나게 되었지만 소속이 어디고 현장 상황이 어떻고 또 개인 사정이 어떤지에 따라 연인들은 국내 장거리 연애가 아닌 국제 장거리 연애를 감수해야 했다.


사랑은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수 있다고 하니 이런 현실적인 난관쯤이야 사실 극복해버리면 되는데, 희도와 이진이 극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단순히 희도가 국가대표 선수이고 이진이 언론인이라는 직업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게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그들의 책임감, 사명감, 정체성을 가진 직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국제개발 활동을 하면서도 연애를 할 순 있었을 것이다. 정말 소설처럼 혹은 몇몇의 유명한 섹터별 셀러브리티들처럼 자기개발 서적에 쓸 수 있을만큼의 워라벨 및 인간관계 능력으로 일과 사랑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장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면 사명감이 생기고, 또 그 사명감과 연결된 내 정체성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일과 사랑,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올때 일이 단순히 일로만 와닿는 것이 아닌 내가 나이기에 해야 하는 일이 되어 가족이나 사랑처럼 우선 순위가 되는 경우들이 제법 많이 발생한다.


개발현장과 인류학을 공부할수록 나는 현장에서 같이 살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활동가이자 누구나 말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키워드란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렇게만 살면 행복하지 않고 허전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이진은 9.11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했지만, 나는 그런 현장에 더해서 개인적인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나니 일을 하며 죽는 것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그렇게 죽을 때 내 마음엔 어떤 감정이 떠오를까 생각해보면 한 켠으론 허망하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내가 해왔던 일에 대해 떠올리면 그래도 내가 했던 일들, 그리고 그 일을 함께 한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이 떠오르며 뿌듯하겠지만 한 켠으론 그렇게 신경을 쓰다 놓친 가족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말하는 그 사랑, 행복, 삶의 가치라는 것은 정말 느껴보고 죽는걸까 의문이 들 것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에서 맞닿은 트라우마가 사람들의 일을 그만두게도 또는 더 깊게 들어가게 만들기도 하는데 백이진에겐 9.11이 그를 더 진지한 언론인으로 만들게 했다면 나에겐 현장에서의 교훈이 일도 중요하지만 사랑도 정말 중요하다고 알려준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일을 통해 사랑에 대해 알게 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사랑은 참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배우게 되었고 그걸 함께할 친구가 마침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 줬다.


그렇다고 내가 일과 사랑을 모두 쟁취할 수 있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나쁜 것들 중에 덜 나쁜 것을 찾는 것 같은데 그만큼 어려운 문제는 좋은 것들 중에 더 좋은 것을 찾는 것 같다. 왜냐하면 좋은 것과 좋은 것은 이미 좋아버려서 사실 좋은 것 하나를 선택한다는 의미는 나머지 좋은 것 하나는 놓아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냥 좋아하는 두가지 모두를 갖으면 되지 않겠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일과 사랑을 모두 갖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그건 정말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사실 나에겐 그 두가지 중 하나라도 제대로 선택지에 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랑과 일, 두가지 모두가 내 서른살 즈음에 선택지로 올라온 것만으로도 무척 뿌듯한 일이었다. 이미 나는 국제개발활동 및 대학원 일정으로 필리핀에,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는 대학원 및 취업으로 독일에서 2년 넘게 장거리 연애를 이어온 탓에 우리는 헤어지거나 일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할 시기가 찾아왔고 나는 이번엔 사랑을 선택하게 되었다.


결과는 나는 이렇게 얻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우리의 관계를 잘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 켠으론 내 그동안의 정체성을 잃은 기분이 든다. 현장에 있어야 활동가라는 정체성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책임감 있는 활동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일만큼 사랑도 중요하다는 내 가치관을 양립시키기에는 국제개발과 국제연애는 너무 버거운 선택지였고, 사랑이 아니더라도 국제개발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의문이 있던 나는 의문이 없는 사랑을 우선 선택했다.


그리고 사랑만을 선택한다고 내가 나인 것도 아니라는 것은 결혼을 하고 직접 살아보니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제법 결혼생활을 잘 이어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연애나 결혼을 잘 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워낙 낮아서 그랬는지, 혹은 그래서 더 서로 노력을 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아직까진 좋다고, 괜찮다고” 웃으며 말한다. 다만 그래서 내가 온전히 행복한지, 온전히 나인지 라고 물어보면 또 목소리가 줄어든다. 아마 내가 방금전까지 희도와 이진에게 “장거리 연애를 하라고!! 할 수 있잖아!!”라고 소리치다 목소리가 작아진 이유와 연결되었기 때문일지 싶다.


그렇게 이진이 정말로 뉴욕특파원 자리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희도의 미래의 남편은 바꼈을까. 맞을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모든 일이 그런 것처럼. 다만 이미 둘 모두가 사명감과 책임감과 그에 따른 정체성이 생겨버린 이후라면, 사랑과 일 중 하나만을 선택했다면 그 하나로 인한 행복과 함께 선택하지 않은 하나로 인한 추억을 안고 또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떠올려보았다.


나는 스무살, 그리고 스물다섯살에 내가 만약 지금 죽는다면 무얼 제일 후회할까라는 질문에 연애와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답을 죽기 전에 실천해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도 선택하지 못한, 이어지지 않고 끊긴 듯한 나의 직업에 대해 떠올려볼 때면 이제 항상 함께 떠오르는 것이 나의 현장과 함께 남편의 얼굴이다. 남편과 행복한 순간을 보낼때면 그 행복만으로도 내가 질문했던 사랑을 해봤으니 지금 죽으면 괜찮을까 싶다가도 과연 그 사랑이 이렇게 끝인가 싶으면 의문이 든다. 연애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그 사적의 사랑 외에 무언가 더 크고 다양한 사랑도 필요하다.


남편과 잘지내지 않을 때면 그런 의문은 더 커지기도 한다. 만약 희도와 이진이 헤어지지 않고 계속 사귀었다면 이라는 질문처럼 나와 남편이 장거리연애 끝에 결혼하지 않고 헤어졌다면이란 질문이 들때가 있다. 특히 경력이 끊기고 외딴 나라에서 다시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하는 내 상황이나 혼자서 두 사람 몫을 버는 와중에 일은 벅찬데도 그만둘 수 없는 남편의 상황이 버거울땐 말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는데 푸른 바다가 더욱 그리웠다. 남편이나 나, 둘에게 뭔가 시원한 바람이 필요한 것 같았다. 푸른 바다 수학여행을 보고난 뒤, 나는 남편에게 같이 독일 북쪽 끝에 있는 로스톡에 바다 보러 가자고 했다. 마침 독일은 이번 여름 내내 9유로로 왠만한 대중교통을 도시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었는데 그 티켓이 8월이면 마감된다. 생각난김에 이번주 주말에 기차를 타고 당일치기로 다녀오자고 했다.


토요일 아침, 베를린의 구로같은 역에서 기차는 출발했다. 출발 역에 5분 전에 도착했는데 이미 자리가 가득차서 우리는 따로 앉아야 했다. 따로 앉는 것이 마냥 아쉬웠는데 그것도 잠시, 그 다음 영등포 정도 되는 역에 도착하니 이미 모든 좌석이 만석이 되었고, 서울역 중앙역에서 타는 사람들은 모두 서서 가야 했으며 마지만 왕십리에서는 기차를 타지 못해 선로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절반은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겨우 감사하게도 앉아서 도착하게된 발틱해에 맞닿은 독일 북쪽 끝 항구 도시 중 하나인 로스톡에 우리는 도착했다. 오랫만에 맡는 바다냄새가 목포 냄새같기도 하고 케이프타운, 필리핀 냄새 같기도 해서 그리운 것도 같았다. 그렇게 바다 냄새를 은은하게 맡으며 도시 구경을 하다가 다시 전철을 타고 해변으로 간 우리 앞에 시원하고 푸른 발틱해가 펼쳐졌다.




한 여름에도 스칸디나비아를 둘러싸고 있는 발틱해 답게 바닷물은 차가웠지만, 오랫만에 만져보는 바닷물이 좋아서 계속 다가가다 결국엔 바닷물에 빠져보기로 했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남반구의 따뜻한 물 속에만 들어갔을지 모른다. 덕분에 나는 남반구의 따뜻한 해류도, 북반구의 차가운 해류도 피부로 직접 느껴보고 있었다. 국제개발이라는 이십대의 커리어는 잠시 멈춘 것 같았지만, 지구별을 돌아보고 경험하고 살아보고 싶다던 고등학교 때의 꿈과 스무살 남아공에서 떠올렸던 삼십대에는 유럽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꿈은 여전히 진행중인 것 같았다.





짧지만 알찼던 로스톡 당일치기 여행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잡아야 했다. 베를린 역에서 겪은 혼돈을 알고 있어서 나름 일찍 간다고 나섰지만 자리 잡는 것은 실패.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열차 칸 맨 뒷 자석 뒤에 있는, 그나마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구석을 하나씩 발견했다. 둘이 마주보며 의자 뒷 공간에 몸을 하나씩 구겨 넣는데 눈 깜짝할 사이 남편과 내 자리 사이의 통로까지 서서 가는 사람들의 인파로 기차는 가득 차버렸다.


피곤했던 참인지 남편은 구겨 넣은 다리를 겨우 잡고 선잠에 빠졌는데, 한발짝 물러서 남편을 바라보니 문득 그가 여행에서 만났던 낯선 외국인처럼 보이는 것도 같았다. 우리는 이렇게 여행을 만난 사이였다. 결혼 반지가 없었다면, 서로 말을 주고 받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 중 나와 남편이 서로 결혼한 부부라는 것을 알아챌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의도치 않게 멀찍이서 기차를 가득 채운 수많은 이름 모를 여행객들 중 한 명처럼 보이는 남편을 보면서 문득 나는 이 사람을 몰랐더라도, 우리가 지난번 발리가 아니라 이 기차에서 이렇게 만났더라도 그와 사랑에 빠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기차가 베를린에 도착하고 우리보다 전 역에서 내린 사람들의 좌석에 앉아 남편에게 말했다.


“네가 아까 구석에서 자고 있었는데 내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알아?”


잠시 생각을 하더니


“침흘렸어? 못생겼다고 생각했어?”


“아니. 아주 잘생겼지:) 우리가 만약에 발리에서 못만나고 여기서 낯선 사람들로 만나게 됐더라도 나는 여전히 너한테 사랑에 빠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말을 듣더니 무척 행복해 하는 남편이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 같은 인연처럼 보여도 우리는 서로에게 사실 이렇게 수많은 여행자 중 낯선 한 명일 뿐이었다. 그렇게 낯선 타인이 어느새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한 명이 되어 있다는 것은 정말 마법같은 일인지 모른다. 그렇게 어린시절부터 마법세계를 찾아다녔는데, 어쩌면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이 현실세계를 마법세계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드문 일인 것 같았다. 이 마법같은 일도 또 현실의 내 일도 하나씩 이어가는 것이 내 다음 인생 과제인 것 같다. 그 길에 남편이 오래 같이 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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