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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May 18. 2022

여행 한 번 나가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

휴학하고 돈벌기

이제 휴학하면 가고 싶은 곳은 생겼지만 돈이 없었다. 그래도 우선 하고 싶은 것이 처음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생겼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마법세계를 가지 못하더라도 지구는 돌아보고 싶었고, 지금 그 첫 나라가 남아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의 목표는 적어도 남아공에 갈 수 있는 비자와, 6개월 동안의 생활비, 어학원 비, 그리고 왕복 티켓을 살 수 있는 만큼의 돈을 버는 것이었다. 1년 휴학을 결정하고 반년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나머지 반년은 남아공에서 보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렇게 받아 적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돈을 6개월 안에 바짝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며칠 동안에 걸친 일자리 검색 후 나는 아직 휴학생인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별로 쥐어진 카드가 많진 않았지만 나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휴학을 결정한 친구와 함께 계획을 진행하기로 했다. 친구는 나와 같이 일을 하고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갈 계획이었다.


겨울임에도 따스했던 어느 늦겨울 아침, 친구와 나는 서울 용산의 낯선 한 인력회사에 앉아있었다. 드라마에서 볼 때는 제법 익숙한, 전형적인 인력회사의 모습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나와 내 친구가 앉아 있는 곳이 드라마 세트장인가 싶기도 했다.


친구와 내가 가장 단기간에, 그나마 최대한으로 여행 자금을 마련하려고 했던 곳은 주야 2교대로 일하는 어느 공장이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 혹은 저녁 8시부터 아침 8까지 주야로 교대해서 일을 하는 공장이었는데, 공장이 외진 곳에 있어 숙식을 제공한다고도 들었다. 어떤 일을 했으면 더 안전하고 많이 돈을 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휴학생에게 건전하면서도 짧은 시간 안에 바짝 돈을 벌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자리 중 하나였다.


잔뜩 긴장하고 처음 들어선 인력센터에 앉아 있는데, 이력서를 보더니 아저씨가 물었다.


“그래 고졸이라고?”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으니 고졸이 맞았다. 뭔가 더 코치코치 물어볼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력서를 보고 언제부터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더니 바로 일할 날짜와 공장에 가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아니, 주말 알바로 뷔페 알바 면접을 갔던 때보다 더 질문이 없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길래 이렇게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바로 고용을 할까. 일을 얻었다는 것에 기쁘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감, 도대체 어떤 곳일까 싶은 호기심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공장일을 시작하는 날은 대학생들의 봄학기가 시작되는 3월 2일이었다. 옷가지와 생필품들을 몇 개 챙겨선 공장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병점역으로 찾아갔다. 지하철 안에는 새 학기에 들뜬 내 또래의 대학생들이 보였다. 내가 휴학을 하지 않았다면 나도 분명 지금 그 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지루하기도 한 것 같고, 이게 맞나 잘 모르겠는 느낌의 학교가 갑자기 가고 싶고, 그리운 곳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학교를 가는데, 나는 공장을 들어간다는 것이 여전히 꿈을 꾸는 듯, 공장을 들어가는 이 결정을 정말 내가 한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공을 정말 잘 선택한 것인가 흔들리더니, 이제는 학교를 쉬는 것이 정말 잘한 일인지 또 흔들리고 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에 잘못하다간 그 대학생들을 따라 공장이 아니라 대학교에 다시 들어가 버릴 것만 같았다.


종점인 병점역에 내려서 작은 버스 정류장에 가보니 공장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있었는데, 무려 한 시간에 한 대씩만 운영되는 버스다. 지도 위에는 마침 공장 주변에 큰 저수지가 하나 있었는데, 관련 뉴스에 그 저수지에서 한 여성의 변사체가 나왔다고 했다. 분명 나는 지금 경기도, 나름 수도권에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지금 내가 들어가는 곳은 어쩌면 웬만한 전라도의 작은 시골만큼이나 고립된, 정말 외딴 공장으로 들어가겠구나 싶었다. 1시간 동안 버스를 기다리며 그만큼 무거운 마음을 단단히 먹어보는데, 정말이지 친구와 함께라서 천만다행이었다.


역 주변의 그나마 개발된 건물들의 풍경이 조금씩 멀어지고 휑한 들판 위에 듬성듬성 보이는 공장촌들이 나타났다. 작은 마을 입구에서 내린 우리는 지도를 찾아 그 주소에 도착했다. 2층으로 된 기다란 공장이었는데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불나면 잘 탈 것 같은 컨테이너 비슷한 느낌의 공장이었는데, 공장 문 옆에 작은 사무실이 하나 있었다.


첫인상이 무척 왜소하지만 인상은 부드러우신 중년의 아저씨 한 분이 의자에 앉아 계셨는데, 오늘 처음 만나게 된 공장 사장님이셨다. 사장님은 인상만큼이나 점잖게 필요한 말씀만 하시는 분이신 듯했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이 공장의 담당자인 오퍼레이터에게 넘겨졌는데 말투나 인상이 왠지 우리와 별로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분 같았다.


오퍼레이터 분이 한 100미터 남짓 길게 놓인 공장 안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가 할 일은 1층의 메인 공장에서 반도체가 들어갈 판을 만들어 올려 보내면 작은 칩들이 그 판 위에 잘 붙게 찍어 누른 뒤, 그 작은 칩들이 판에 잘 붙었는지 돋보기로 하나하나 살펴서 하자가 있는 제품과 정상 제품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는 일이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은 오퍼레이터와 우리를 제외하고 4명 정도가 더 있었는데 주야 2교대로 일하는 거라 나머지 사람들은 교대 일자가 같은 날일 때 볼 수 있었다.


공장에서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곳에 방 한 칸의 숙소가 있었다. 나는 같이 간 친구와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우리 집 바로 옆 문에는 같이 일하는 언니 한 명이 지낸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전히 드라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는 듯한 숙소에서 짐을 풀고 인생 첫 공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공장에 있으면서 나는 단순히 드라마만이 아니라 역사책이나 사회과학 서적에서 자주 봤던 그 옛날 독재 시절, 공장에 가서 노동자들과 함께 야학을 하고 또 그들의 삶을 알기 위해 직접 공장에서 일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떠올랐다. 나는 그런 사회운동가들과는 달리 단기간에 가장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공장 2교대로 들어오게 되었지만, 마침 공부하는 전공이 사회학 정치학이다 보니 단순히 전공서적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전공서적 속에 들어와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사회경험을 많이 해보지 않은, 이제 고작 대학 2학년을 마친 스무 살 대학생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는다고 해서 얼마나 비판적일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꽤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책을 읽어왔다고 생각했었는데 공장에 들어와 보니 책에선 전혀 알지 못했던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6명의 노동자 중 오퍼레이터 오빠를 빼곤 나와 친구뿐만 아니라 나머지 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신입들인 것 같았다. 면접을 볼 때 정말 이렇게 뽑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우리를 데려간다고, 오히려 우리가 더 걱정을 했었는데, 함께 일하게 된 팀을 보니 우려했던 대로 참 막막했다.


어떻게 우리 같은 사람들로 공장을 돌릴까 싶었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돌아가는 듯했다. 반도체 판이 본청에서 올라왔고, 그래서 우리는 칩을 붙였고, 그걸 확인한 뒤 다시 본청으로 넘겼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나자 본청에서 연락이 왔다. 하자 상품이 너무 많이 늘어서 앞으로는 자기가 검열한 반도체판 위에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써서 내려보내라는 명령이었다. 하자가 있는 수대로 임금을 삭감한다는 협박도 있었다.


전공서적에서만 읽었던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게 어떤 것인지 확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책에서 아무리 노동강도와 스트레스에 대해 말을 해도 지금처럼 더 생생하게 온몸으로 이해해본 적은 없었다. 눈앞에 놓인 반도체 칩들을 이티 같은 자세로 숙여 앉아 밤낮으로 돋보기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마치 촘촘한 상춧잎 사이로 눈곱만 한 진딧물을 찾아내듯 눈과 손이 고단한 이 경험만큼이나 와닿는 책은 없었다. 단순히 힘을 더 쓰게 하거나 머리를 굴리게 하는 것 외에도 노동자들이 압박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참 많은 것 같았다. 하자가 많은 것은 분명 고쳐야 할 문제였지만, 그래서 숙련 노동자가 대우를 받고 트레이닝을 받는 것인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우리보다는 더 나은 사람을 뽑거나 아니면 훈련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야 했다.


이제 겨우 며칠을 일하는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을 사장님이 모르진 않으셨을 거다. 다만 그런 힘이 없거나 의지가 없거나 여건이 안되셨을 것이다. 몇 해전 한창 ‘사장님 나빠요’라는 유행어가 있었는데, 공장에서 지켜보니 사장님도 사장님 나름인 것 같았다. 학교에서 책만 봤을 때는 자본주의를 평면적으로만 바라보고 자본가에 대한 막연한 비판적인 이미지가 있었는데, 공장에 있어보니 우리 사장님은 정말 불쌍한 분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알고 보니 우리 공장은 1층 공장에서 물품을 납품받아 일을 하는 하청 업체였는데 나는 단번에 1층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싶지 않다)이라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여느 때처럼 몇 시간을 돋보기로 마치 개미 다리처럼 가는 칩의 다리 중 휘거나 살짝 떨어져 있거나 뒤집어졌거나 땜이 잘 붙여지지 않은 것들을 찾으며 눈이 빠져나갈 것 같은 어느 시점에 갑자기 공장 문이 쾅 열리더니 낯선 사내 한 명이 들어왔다. 그러고선 혼자 이 상황이 정말 재밌다고 혹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다짜고짜 “**년들아”라는 상스러운 말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는 누구를 향한 욕인지 말인지 잘 모르겠는 그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고, 도대체 어떤 사람이 문을 열자마자 저런 몰지각한 행동을 하나 쳐다봤는데 그새를 못 참고 그는 또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 입에는 저런 말밖에 안 들어 있나, 도대체 누구를 부르는 건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는데 한눈에 다 들어오는 작은 공장엔 남자인 오퍼레이터 오빠 한 명과 여자인 나와 내 친구 두 명뿐이었다. 그럼 지금 이 사람이 ‘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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