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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May 20. 2022

여행이 시작되는 곳은 공항이 아니다

남아공 비행기 티켓을 손에 넣기까지

휴학을 결정한 뒤, 그 다음에 뭘 하면 좋을지 찾아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실 무얼 할지 결정을 한 사람이라고 더 쉬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결정을 하더라도 실제로 실행하기가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을 바르고도 지워지는 썬크림처럼 뚜렷하다가도 사라지기 십상이었고, 또 무엇을 하고자 하느냐에 따라 따라붙는 핑계도 늘어났다. 너무 큰 계획은 너무 커서 안 될 것 같고, 너무 작은 계획은 또 작아서 별 것 아닌 것 같아서 다른 걸 찾고, 피곤하다고 안 하고, 생각한 거랑 다르다고 안 하고. 뭔가를 해야 하는 이유는 한 번 해볼까라는 작은 질문 하나뿐인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유는 그냥 하지 말까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생겨나고 늘어났다. 나에게는 남아공에 그냥 가지 말까라는 생각이 그랬다.


공장을 계획했던 것과 달리 의도치 않게 나오게 된 뒤, 나에겐 남아공에 가지 못할 꽤 강력한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 열심히 일해서 여행 자금을 모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부정적인 생각은 경험이라는 이유를 만날 때 더 강력해졌는데, 그래도 나름 한 번 해봤는데,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도 상황이 이렇게 돼버렸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나니, 하루에도 가끔, 물마실때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경험만큼이나 강력한 또 다른 힘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시간이었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휴학을 기대해왔고, 또 남아공이라는 나라를 발견하기까지 만화세상과 지구별과 아일랜드를 거쳐 얼마나 돌아 돌아 오게 되었는데. 남아공이라는 나라를 찾기까지 걸렸던 그 긴 시간이 상대적으로 훨씬 짧은 내 공장에서의 두달 경험으로는 쉽게 나를 멈추게 하진 못했다.


그렇게 가지 말까라는 마음을 바로 붙들어 매고, 나는 공장을 나오자마자 바로 집 근처의 작은 옷가게에서 풀타임 알바를 시작했다. 동시에 공장에서 번 돈으로 남아공으로 가는 비자와 티켓도 끊어버렸다. 남아공 경비의 커다란 부분이었던 비자와 티켓, 그리고 어학원의 일부 비용을 지불하고 나니 내가 정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문 하나를 열고 들어와 버린 느낌이었다.


옷가게에서의 하루는 공장에 비해 훨씬 평범했다. 일정한 시간대에 사람이 많다가 또 빠지기도 했으며, 밝은 날에는 손님이 많다가도 비가 쏟아지면 정적이 흘렀다. 알바 초반에는 손님이 적은 비 오는 날을 속으로 좋아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비가 오면 손님이 오지 않고 그러면 사장님의 표정이 굳어지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괜히 손님이 없는데도 일어나 이미 잘 개진 옷들을 다시 펼쳤다가 개는 것을 반복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차라리 해가 쨍쨍 나면 좋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사장님 부부 내외분은 내 또래의 딸을 가지신 좋은 분들이셨다. 내가 남아공에 가고 싶어서 일을 몇 달 하고 싶다고 하니, 신기한 듯 바라보시며 승낙해주셨다. 옷가게 근처에 큰 시장이 있어서 점심시간에는 시장에서 다양한 음식들을 저렴하게 사 먹어서 식사비용도 아낄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서있다 보니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해서 어학 공부를 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는데,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을 하면서 공부까지 잘하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순서를 정해서 하나 하나 해나가기로 했다. 지금은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공부는 남아공에 가서 하자.


그렇게 옷가게 안에서 보이던 가게 밖 벚꽃나무의 색이 핑크색에서 연두색, 그리고 짙은 녹색으로 바뀌는 사이 어느새 남아공으로 날아갈 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계획했던 대로 휴학 1년의 시간 중 절반이 벚꽃처럼 사라져 있었다.


주 6일을 일하면서도 틈틈이 남아공 정보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때는 2007년 여름. 지금은 당연한 아이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구글 지도, 카카오톡이 없던 시절이었다. 내 핸드폰은 대학에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갖게 된 효리 언니로 대표되는 애니콜 기종 중 하나였고,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과 싸이월드를 주로 사용했다. 인터넷을 탈탈 털어도 남아공에 대한 정보는 다른 어학연수 국가들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었다. 영국이나 미국 같은 한 나라에 대한 정보가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있는 국가들의 정보보다 더 많은 느낌. 같은 시기에 영국이나 호주, 미국, 캐나다 같은 나라들로 어학연수를 가는 친구들은 그나마 정보들이 있던 것 같은데, 남아공은 정말 아프리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처럼 드문 듯 했다.


그나마 남아공에 관한 정보가 업데이트되는 부분은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2010년에 있는 아프리카 대륙 첫 월드컵 개최지가 바로 남아공이라는 것. 남아공과 아파르트헤이트, 그리고 만델라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는 도서관 사서 알바를 할 때 알금 알금 찾아 읽었지만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나에게 필요한 케이프타운에서 생활정보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당장에 샴푸나 치약, 칫솔, 화장품 등은 살 수 있는지, 무슨 밥을 먹는지, 가족들한테 연락은 어떻게 해야 할지, 교통은 무엇이 있는지, 얼마나 두꺼운 옷을 가져가야 하는지 등등 궁금한 건 너무 많았지만 찾지 못했다.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니 늘어나는 것은 상상 속의 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을 검색하면 언제나 나오던 그 ‘지중해성’ 기후라는 기후는 도대체 어떤 날씨고 느낌일까? 그래도 ‘아프리카’라는데 8월의 찌는 듯한 이 우리나라의 여름만큼이나 덥지 않을까. 참 신기하게도 사람은 이렇게 ‘지중해성’이라는 객관적인 정보를 보고도 ‘아프리카’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주관적인 상상에 더 마음이 끌린다. 아마 그래서 인간은 신을 믿을 수도 있는 거겠지.


아무튼 나는 계획했던 6개월보다는 한 달 부족한 5개월 동안 공장과 옷가게에서 돈을 모았고,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아빠와 할머니, 친척들은 가기 전날까지도 도대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어디 붙어 있는 나라이며, 왜 저 깜둥이들의 나라를 가려고 하는 거냐고, 왜 그렇게 멀리 가려고 하는 거냐고, 저렇게 아는 사람 하나도 없고 말도 안 통하고 시컴한 사람들이 있는 나라를 위험하다는데 왜 굳이 6개월이나 가려고 하냐고 물으시며 나를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사실 하고 싶은 것들이 언제나 이해 가능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이해할 수 없어도 하고 싶은 것들이 이해되는 것들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도 있었다.


할머니나 이모들에게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마법세계에 가보고 싶었는데, 그게 없다는 걸 알고 나니 지구별이라도 돌아보고 싶었고, 그래서 찾다가 원래는 아일랜드에 가보고 싶었는데 남아공도 영어를 쓰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남아공은 넬슨 만델라와 투투 주교님이 있고 라이온 킹이 있는 나라라서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분들의 이해를 특별히 더 도울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냥 스무 살을 기념으로 지금까지 한국에서만 살았던 제가, 그래도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지구별에 사는 사람인만큼 지구별에도 관심이 많아 우리나라와 정반대 편에 있는 나라 중에 한 곳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부모님과 헤어지고 혼자 인천공항에 처음 도착한 2007년, 8월 25일. 태어나서 비행기라곤 스무 살이 된 지금까지 육학년이던 할아버지 육순 잔치 때 가족 전체가 타고 갔던 광주-제주행 비행기가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국제선이 다니는 인천 국제공항은 스무 살이 되는 지금, 처음 발을 디뎠다. 규모에도 놀랐지만 공항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것에 휘둥그레졌다.


‘이 비행기 왕복 티켓 하나를 얻기 위해 5개월을 나는 공장에서, 옷가게에서 주야로 쉴새없이 일했는데, 그렇게 허리가 휘게 일해서 비행기를 타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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