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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n 01. 2022

술 담배 말고

남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아빠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혼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쓰린 속을 달랬었다. 그렇지 않아도 쓰린 속을 술과 담배로 태우는 것이 어릴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고 아빠처럼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조금 이해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아빠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 인생 절반을 넘게 술과 담배연기에 빠져있던 사람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면서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내 인생의 남자는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아빠는 다른 아빠들도 그렇게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술 담배에 빠져 있을 사람과 결혼하느니 혼자 사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으로 스물다섯까지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했던 나에게도 그렇게 갑작스레 가치관의 전환점이 생겼고, 죽기 전에 사랑은 한 번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 전환점 이후 나는 일하게 된 프로젝트로 인해 해외에서 여섯 명의 한국 동생들과 함께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나는 새로운 모습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는데 같이 살던 동생들 중에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은 그 어린 나이부터 미래의 동반자에 대한 배우자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물다섯이 되어서야 겨우, 결혼이라는 게 괜찮을 수도 있겠다 생각을 하게 된 나도 있는데 스무 살, 아니 어쩌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려왔을, 동생들이 그리는 배우자들의 모습은 어떤지, 남편이라는 존재는 어떨지 궁금했다.


그냥 뭉뚱그려서 기도를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매우 구체적으로 적고 기도해야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동생들의 진지한 모습이 너무 귀여웠지만 웃지 않고 들으려 노력했다. 외모와 키부터 직업이나 연봉, 성격이나 취향까지 듣고 보니 제법 구체적이었다. 너무 구체적이라 오히려 나는 미래의 배우자는커녕 나 자신에 대해 저만큼 판단할 수 있을까 싶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내 미래에 대한 배우자 (배우자가 있을 거라면)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무슨 주술도 아니고 배우자라는 단어만 상상 속에서 피어오를 뿐 그 단어를 둘러싼 주변엔 하얀 연기만 떠다니는 듯했다. 얼굴도 없고 형상도 없고 차라리 특정 연예인을 좋아해서 닮은 얼굴이라도 나타나면 더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연예인도 없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의 어려움이 이런 것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확실한 것은 하나 있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사람. 술은 마실 수도 있겠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감정에 의해 끝을 모르고 마시지 않는 사람. 어느 정도 마시면 멈출 줄 아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배우자라고 하더라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고 선택의 문제인지라 나는 원래 술을 마시던 사람이 나 때문에 술을 멈추고, 담배를 끊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랑해서 담배와 술을 끊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단 만약에 결혼을 할 사람이라면 나처럼 원래부터, 자기 자신만의 이유로 술을 절제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다만 문제는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미 어린왕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거의 기적과 은 일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거기에무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데  사람이 담배와 술까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얹어버리고 말았으니결혼을 하겠지만 하지 않겠다는 의미인가 싶어 웃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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