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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May 22. 2022

베란다 텃밭 속 커플 감수성

베를린 리틀 발코니 포레스트




요즘 날씨가 좋아지면서 남편과 나는 저녁 늦게까지 발코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퇴근하고 차린 저녁을 발코니에 앉아 먹으며 여덟 시가 넘어도 아직 노을이 남긴 햇빛이 남아있는 걸보면 해가 참 길어졌구나 알게 되고, 또 비도 오지 않는데 무지개가 뜨면 지금 어딘가는 비가 쏟아지고 있나보다 상상하곤 했다.


베를린의 많은 건물들의 발코니는 우리나라 이파트들과는 달리 바깥 창문이 없는 경우가 많아 발코니에 있으면 노천카페에 앉아 있는 느낌이 살짝 난다. 그래서 발코니 바깥으로 보이는 뷰에 따라 어떤 노천카페인지 그 느낌인지가 다르게 된다. 우리 집은 정말 도시의 끝자락에 있어서 의도치 않게 숲세권에 들어갔는데, 그래서 우리 집 뷰는 포레스트 뷰다.






독일은 해가 너무 소중해서 해가 나오는 계절부터 사람들은 들뜬 마음으로 화원으로 향한다. 이곳 화원에는 화분마다 식물 정보 표가 조그마하게 붙어 있는데 어떤 표에는 꿀벌들이 좋아하는 꽃을 특별히 표시해두고 있다. 그래서 올해는 꿀벌이 좋아한다는 작은 꽃 화분을 몇 개 샀다.


초봄부터 핀 수선화와 지금 활짝 피고 지는 노란 철쭉, 그리고 작년부터 사계절 내내 피어온 제라늄. 풍성한 팬지꽃과 이름 모를 작은 벌꽃까지. 한국에서는 나이가 들면 꽃을 더 좋아한다는 뉘앙스가 있는 듯한데 독일 사람들은 보통 봄이 되면 화원에 남녀노소로 가득한데,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나도 알 것 같았다.


발코니에 왜 샤시가 없을까 싶었는데 어쨌든 일반 주택엔 그래서 겨울에 식물들이 살 수 없고, 그래서 집 안에 두면 햇빛은 집안 조명이 대부분이고 또 라디에이터 때문에 공기가 너무 건조해져서 식물들에겐 정말 최악이다. 물론 사람들도 쉽게 적응하기 힘든 겨울이라 그런 겨울을 넘기고 맞이하는 봄이나 사람이나 식물이나 너무 행복하다. 봄에 화려하게 피었다가 다시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면 안녕을 고해야 하기에 지금, 만날 수 있는 동안에 만끽하려고 한다.





요즘 독일 물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눈에 띄게 올랐다. 원래도 발코니 텃밭을 계절마다 가꾸긴 했지만 올해는 장바구니 경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작년에 사보지 않았던 채소들까지 더했다.





올해 처음 자란 채소들로 샐러드를 만들었다. 고추는 요리할 때마다 넣어 먹어 요즘 내 요리들은 대부분 매운맛이다. 깻잎과 토마토와 오이는 자라는 중이고 그나마 남편이 요리하면 안 매운 요리. 요즘 아스파라거스 철이라 리조또도 해 먹고 수프도 해 먹었는데 색감이 너무 예쁘다.





식물들은 모처럼만에 넘치는 햇빛을 무럭무럭 자랐지만 사실 햇살과는 반비례로 올봄 베를린은 비가 드물었다. 따뜻한 건 좋았지만 자기 전에도 건조한 공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가습기를 살까 하다 천연 가습기를 찾아보고 있었다. 마침 화분에 넣고 남은 동그란 돌이 비슷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거란 이야기를 듣고 나름 천연 가습기를 만들었는데, 그 안에 요즘 한창 피는 보라색 꽃을 몇 개 꽂아 두니 천연 디퓨저 같은 느낌. 신기하게도 그릇 안에 물을 하나 가득 채워도 며칠이면 증발해버렸다.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부터, 첫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나서부터 한 환경단체에 기부를 하다가 나와 결혼을 하고 나서 내가 환경단체에 다니는 선배님들께 물어물어 알게 된 단체 하나에 더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독일은 자신이 사용하는 전기를 공급해주는 전기회사를 직접 선택하여 사용하는데, 비싼 가격을 내서라도 남편은 친환경, 대체에너지를 생산하는 회사를 선택하고 있다.


둘이 벌면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내더라도 분명 혼자 버는 것보다는 훨씬 여유로울 텐데, 우리는 아직 남편이 혼자 벌고 있어서 쓸 때는 모르지만 쓰고 나면 빠듯해지는 살림살이였다. 게다가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코로나가 끝나는 듯하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의 에너지값 폭등의 여파로 한 달 월급에 육박하는 올해 전기 누진세를 보고 우리는 충격을 받았었다.


그래도 남편은 전기회사를 바꿀 생각이 없는 듯했는데 뭔가 그의 신념인 듯했다. 나는 시위가 있으면 몸으로 때우는 스타일이었고, 또 다른 친구네는 비건 스타일을 유지함으로써 자신들의 신념을 행동으로 표현했는데, 남편에게는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걸로 보였다.


남편도 베를린에 올라온 첫 해, 대규모의 환경운동 시위 행렬에 한 번 참석했던적이 있었다. 유럽에서 유명한 Friday for future의 대규모 집회에 참석하려고 반차까지 낸 남편은 당시 다른 일로 시위에 참석하지 못한 나에게 나 대신 자기가 가있겠다며 당당하게 문자를 보냈는데, 한시간 후 내가 시위에 동참하려고 연락을 해보니 이미 카페로 향하고 있다는 답변을 보냈다. 카페에 가서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남편 왈.


“후, 시위는 힘든일이네.”


그냥 거리를 행진하는 평화 시위였는데 한시간만에 땀을 빼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남편이 귀여웠다.


“그래 그래. 집회에 참석하려고 반차까지 내고 한시간이나 걸은 것도 대단하지”


물론 시민운동에도 적극적이고 비건식을 유지하며 모든 제품과 전기마저 친환경으로 실천할 수 있다면 참 이상적이겠지만, 그렇게 모든 것이 돌아가면 그것 또한 어찌 보면 자연스럽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식물이 자랄 때 햇살이 뜨거우면 물을 더 많이 줘야 할 것 같은데 사실 햇살이 뜨거울 때 물을 주면 식물들은 타버린다. 너무 더운 나라나 추운 나라들도 식물을 키울 수는 있지만 그곳에서는 식물을 키우는 일보다 냉장고나 온풍기를 돌려 식물을 싱싱하게 유지하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고기보다 야채가 비싼 나라에서, 혹은 고기와 야채를 모두 구매하기엔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에게 비건이 환경에 더 도움이 된다고 고기 대신 야채를 사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우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고 한다. 나는 제철음식, 발코니 텃밭, 꿀벌이 좋아하는 꽃을 키우면서 자연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남편은 몇몇 단체와 전기회사의 에너지를 구매함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사실 나와 남편은 냉소적인 생각을 가끔씩 나누곤 하는데, 소소한 유머가 넘치는 남편임에도 환경문제에 직면하면 이상하게 유머라는 것이 갑자기 냉소적이거나 염세적으로 되는 경향이 많았다. 어차피 한 사람의 생애도 결국엔 시작과 끝이 있듯이 어찌 되었건 우리가 모르는 미래의 이야기 보단 우선 살아 있는 동안에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작은 발코니 텃밭은 누군가에겐 별 것도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태감수성이란 단어가 있다. 처음에는 사전에만 있고, 정의로만 알지 실제로는 와닿지 않던 단어였다. 그 단어의 뜻이 처음으로 와닿았던 것은 농부이셨던 우리 할아버지 논밭에서도 아닌 도시에서 처음 텃밭 가꾸는 모임을 했을 때였다.


매일 먹음에도 불구하고 밥은 알지만 쌀은 모르는, 진짜 도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들과 작은 옥상 텃밭을 가꾸고 난 뒤 어느 날, 그 친구가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소리를 했다.


“어휴, 도대체 비는 언제 오는 거야. 채소들 다 죽겠네.”


나는 그때 생태감수성이 어떤 말인지 온전히 알 것 같았다. 그 도시 친구가 어느새 우리 농사짓는 할아버지가 매해 하시던 소리를 하고 있었다. 상추가 잘 자라고 당근이 잘 자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그때 텃밭을 가꾸는 것이 단순히 야채를 얻는 행위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 소녀가 한 농부의 마음을 가랑비에 옷이 젖듯 알게 모르게 느끼게 되며 정성껏 키워낸 첫 채소. 어찌 보면 누군가에겐 태어나 처음 길러낸 채소를 맛보는 무척 기대되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퉤퉤 그 채소를 뱉어내고 말았다. 그렇게 정성껏 키웠는데 이렇게 맛이 없다니. 그녀를 비롯한 도시의 내로라하는 유명한 대학에서 공부하는 청년 농부들이 모두 한동안 패닉 상태에 빠졌는데, 그때 우리는 비와 햇빛 만이 아니라 흙도 건강해야 야채도 맛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머리로만이 아닌 혀와 마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주 작은 텃밭이라도, 그게 아주 작은 화분 하나, 야채 하나더라도 우리는 무언가를 키우면서 그날의 태양, 우리 집에서 나오는 , 그리고 흙의 질을 인지하고 살펴보고 신경 쓰게 . 화분이 유난히 금방 마른다면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는 의미가  수도 있었고, 정성껏 키운 발코니 채소가 유난히 맛이 없다면 내가  물이나 비료, 사용한 흙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새삼 체크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일상  우리 주변의 변화를 새삼 느끼게 되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감수성이 아니라 이런 감수성을 느낄  있는 순간들이 아닐까. 그게 꼭 텃밭이 될 필요는 없고, 자기 주변에 가장 가까이 있고, 또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좋지만, 남편과 나에겐 일년에 6개월 정도만 열리는 우리집 발코니, 작은 텃밭인 것 같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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