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뜻한 선인장 Sep 16. 2021

결혼하는 친구에게 전하는 남편의 신혼 꿀팁

말다툼의 해석 인류학

남편이 결혼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부탁한 것이 하나 있었다. 말다툼을 하게 되면 제발 말을 해달라고. 이런저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제법 있었지만 연애관계는 제대로 해본 적이 많지 않았던 것이 여기서 터지는 듯했다. 특별히 싸울 일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가끔, 계절이 바뀔 정도의 횟수만큼 일 년에 몇 번 말다툼이 생기려 하면 나는 이상하게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다툼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서, 내가 속상한 부분에 대해서 말을 하면 되는 거였는데 결혼 초에는 그게 무척 어색했다.


장거리 연애로만 연애를 했고, 또 언어가 달랐고, 국제결혼을 하게 돼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나라로 혼자 떨어지게 되니, 말다툼을 하는 순간엔 내게 가장 가까워야 할 남편이 그야말로 남의 편이 되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고,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문득 세상에 정말 혼자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기분전환을 위해서라도 다른 동네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기분 전환을 하던가 혹은 그냥 엄마 아빠한테 가서 맛있는 밥이라도 얻어먹고 와서 기운을 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기분이 나아질 수도 있는 그 많은 가능성들이 낯선 곳에서의 초기 정착 시기에는 정말 먼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기분이 좋은 날 만날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데, 내가 울쩍하고 힘들때 마음껏 이야기 나누고 풀어낼 친구를, 그것도 친구가 되려면 한참이 걸린다는 독일에서 사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싸우고 난 뒤 펼쳐지던 고요의 정막이 이어지던 순간, 막상 내가 이곳에 남편 말고는 친하다고 말할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그냥 할 말이 없어졌다.


이렇게 혼자였던 적이 있었나? 가족이 섭섭하게 하면 친구를 만나면 됐고, 친구들이 바쁠 때면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면 됐는데 국제결혼으로 처음 낯선 곳에 와서 산다는 것이 이렇게 외로울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둘 사이의 냉랭한 분위기가 번지고 그 이상하고 낯선 나를 둘러싼 새로운 정체성이 느껴지면, 내 머릿 속에는 남편과 싸우게 됐던 이유는 점차 희미해졌고 이런 내 새로운 상황을, 다툼의 원인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남편이 마냥 팔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이름 모를 외국인 중 한 명처럼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남편은 그럴 때마다, 우리가 싸우는 날이 무척 드물었기에, 매번 말이 없어지는 나에게 부탁했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떤 부분에서 내가 속상했고, 또 어떤 부분을 자신이 혹은 내가 고쳐나갔으면 하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힘들더라도 꼭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가 만약 그 당시, 순간에 말하는 것이 힘들면 자신은 언제든 기다릴 수 있으니, 자기에겐 화를 내는 것보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힘드니 꼭 오래 걸리더라도 속상한 것을 말해달라고 했다.


굳이 이런 것까지 말해야 하나 싶은 것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는 말을 하게 되었고, 내가 말을 하면서부터 남편도 느리지만 조금씩 눈치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돌아보면 남편의 독일 친구들이라면 굳이 섭섭해하지 않았을 일들이 나에겐 무척이나 크게 다가오곤 했는데 내가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남편의 입장에선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나의 말이라는 것은 그 사건이나 행동에 대한 나의 생각과 문화와 경험에 대한 해석이었는데, 말이라는 것이 누군가에 다가가 울림으로 남아 그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그런 말의 형태로 담아 전달되는 해석의 힘인 것 같았다.


나는 현장에 있을 때만 나의 인류학적인 정체성이 발현된다고 생각했는데 남편과의 소통, 그것도 말다툼의 과정을 통해 그와의 대화 역시 그와 나에 대해 알아가는 한 편의 필드워크고 현장조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끼리도 쉽게 오해가 생기곤 하는데 독일어와 한국어를 모국어로 갖고 영어로 대화하는 우리는 어떨까. 우리가 아무리 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그가 이해하고 생각하는 그 단어의 뜻과 내가 원하던 뜻이 동일할 것이라는 기대는 그는 독일어를 하고 나는 한국어를 해도 서로 알아들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당혹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짧게나마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의 한 모퉁이들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는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야라는 다른 사람들의 말들도 공감할 수 있는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거기서 거기라는 사람들을 왜 굳이 특정 문화권, 언어권, 계층, 계급으로 구분 짓는지도 알게 된 것 같았다. 분명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가 통하는, 인간이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알고 있고, 알게 되는 보편적인 지식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지식에 대한 해석과 개인의 경험은 어디서 나고 자라며 누구와 만나고 배우는지에 따라 80억 지구의 인구수만큼이나 갈라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유명한 인류학자인 클리포드 기어츠의 대표작인 ‘문화의 해석서문에서우리가 알고 있는  가지의 행위가 사실은 굉장히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다양함을 찾아내는 것이 인류학자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는 우리가 그렇게 끝임 없고 무한한 해석들을 찾아내어도 결국 어떤  문화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마치  단어가 문화가 아니라 사랑, 그리고  사람으로 대체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도조차  필요가 없는 무의미한 일을 하는걸까? 기어츠는 그래서 우리는  심도 있게, 깊이 있게, as many as possible, 가능한  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찾아내야 하고,  노력 덕분에  나은 이해를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취업시장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고 하면 그게 어디에 써먹는 고상한 혹은 고리타분한 학문이냐며 이력서에서부터 시큰둥해할 전공이었을 텐데, 나 역시 필드에서 멀어지면 전공에서도 멀어지는 건가 싶었는데, 이렇게 외국인 남편을 만나 새로운 곳에 정착해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또 다른 필드워크구나라고 생각하고 나니 인류학처럼 생활밀착형 학문도 없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과의 관계와 대화에 있어서도 우리가 더 잘 맞춰가고 알아가려면 서로가 가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들에 대해 말해주고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나니 남편과 나, 서로 이제는 어느 정도 말하지 않아도 아는 단계가 독일의 햇살처럼 드문 드문 비춰주는 듯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말다툼이 드물어진 어느 , 남편은 기뻐하며 집에 돌아왔다. 남편의 베스트 프렌즈   명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남편이 베스트 맨이 되었다는 . 그렇게 남편은 고향에 내려가서 직접 친구에게 결혼식날 자신이 무엇을 하면 좋을지, 어떤 것을 도울  있는지 알아오겠다며 호기롭게 떠났고, 돌아와서 특별한 것이 없는  마냥 대화를 마치려 했다.


그래서  친구랑 무슨 대화를 깊게 나눴냐고.”


궁금해하던 나에게 남편은 어린아이가 어른인 것처럼 흉내 내는 듯 자신감이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리 결혼한 선배로써 신혼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꿀팁들을 조금 알려줬지.”


귀엽다 귀여워… 1, 2년 차 선배들이 제일 무섭다고 동거가 흔한 독일에서 아이도 먼저 있는 친구네 커플인데 결혼 문서만 몇 년 일찍 받은 것도 선배인가 싶었지만, 남편이 말한 그 신혼생활 꿀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귀가 솔깃해지는 부분이었다. 비웃음인지 코웃음인지 모를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참으며 남편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그런데, 그걸 너에게 말해주기는  그런데.”









이전 17화 사진찍는 아내, 기다리는 남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