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녹아낸 유럽 대도시 여행
이제는 서른보다 마흔이 가까워지는 나는 지금까지 그 유명한 프랑스나 영국, 스페인 등을 가본 적이 없다. 여행을 안 다니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그 유명한 나라들을 여태 가본 적이 없을까.
스무 살, 처음으로 해외에 나갔던 남아공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결정을 하나 했던 것이 있었다. 이십 대에는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불리는 개발도상국을 여행한다면 삼십 대에는 반대로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나라들을 여행해보겠다고 말이다.
생각했던 대로 이십 대를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위주로 돌아보며 아무리 먼 나라라고 해서 이제는 단 이틀이면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생각보다 가깝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진 나라들, 그리고 유명한 수도만이 아니라 여러 지방도시들, 여러 개의 민족들, 언어들 등을 하나하나 채워가면서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해서 살아생전 한 나라, 한 대륙에 대해 제대로 여행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의 궁금증이 가득하던 오대양 육대주라는 범위는 자연스레 조금 축소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끊기지 않고 이어진 가장 먼 곳인 케이프타운까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만 해도 어마어마한 곳이니 살아생전 이 대륙들을 알아가고 경험해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그래서 차마 아메리카 대륙은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조금 더 젊을 때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더 먼 곳, 깊숙한 곳에 들어간 뒤, 삼십 대 즈음엔 유럽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나는 삼십 대의 중반이 되었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신기하게도 스무 살에 떠올려보던 대로 실제로 유럽에 살게 되었다. 물론 그때는 상상도, 생각도 안 해봤던 국제결혼을 통해 유럽에 오게 되었지만, 어찌 되었건 삼십 대에는 유럽에 살아보고 싶다는 그 바람이 이뤄진 것이었다.
게다가 나는 남들은 한 번쯤 가봤을 유럽의 유명한 나라들, 도시들을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덕분에 남들보다 조금 늦게 경험한 유럽이지만 여전히 미지의 세계처럼 궁금하고 신기하다. 내가 만약 스무 살 때부터 유럽의 유명 나라, 도시들을 미리 여행했더라면 조금 지루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덕에 오히려 지금 유럽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는 것도 같다.
이 기록은 삼십 대에 유럽에 살면서 여행한 유럽의 대도시들의 모습으로 채워질 것 같다. 비행기는 아무래도 유럽 내 저가 항공사를 이용하다 보니 한국에서 내 글을 읽는 분들과는 거리가 느껴질 것 같다. 하지만 유럽에 와서도 짧은 시간에 여러 명소들을 찍어가는 여행보다는 어느 도시에서라도 적어도 이틀 이상은 머물며 관찰하는 여행을 선호하기 때문에, 다른 단기 여행자들보다는 조금 더 여유 있으면서도 모든 새로운 것이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리는 현지인들보다는 조금 더 신기하고 들뜬 여행자의 시선을 담아내려고 한다.
더불어 나의 유럽 대도시 여행에는 내 이십 대의 여행지들의 이야기가 함께 녹아날 것 같다. 지구촌이라는 단어로 세상의 여러 나라들이 연결되기 전, 세상을 이은 단어는 슬프게도 제국주의, 다채롭게도 무역, 흥미롭게도 호기심이었다. 스무 살에 처음 살아본 해외인 남아공의 희망봉에서 나는 도대체 포르투갈 사람들은 어쩌다 이 희망봉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했었다. 스물다섯부터 내 이십 대의 중후반을 모두 보낸 필리핀에서는 도대체 펠리페 2세 시대의 스페인은 어떤 나라였길래, 그의 가톨릭 신념은 왜 그리 강해서 필리핀을 이렇게 가톨릭으로 물들였는지 궁금했었다. 그렇게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도시들을 여행하며 오랫동안 품어왔던 질문들 때문에, 나는 유럽의 어느 유명한 나라를 가든 이십 대의 한 순간을 보낸 지구 반대편의 다른 도시, 나라를 떠올릴 것 같았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유럽의 대도시, 나라들의 여행은 나에겐 단순히 그 나라에 대한 이해와 관찰뿐 아니라 스무 살 때부터 지구 저 반대편에서부터 오랫동안 간직해온 궁금증들을 풀어가는 ‘지속된 ‘, 혹은 여전히 ’ 이어진‘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이십 대와 삼십 대,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과 관찰로 채워갈 유럽 대도시 여행기를 조금씩 채워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