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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Nov 09. 2022

인류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던데요?

언어 인류학은 왜 필수 전공과목일까

인류학과 첫 수업을 들으러 교실을 찾아가던 길, 복도 바닥 한 곳에 차곡히 쌓인 신문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도 대학 신문이 있나 보다 싶어 신기한 마음에 한 부를 손에 쥐었다. 빼곡한 글과 중간중간 담긴 사진들, 가장 앞 면엔 새 학기를 맞아 신입생들을 반기는 총장님의 환영의 인사가 사진과 함께 담겨 있었다.


05학번이었는데 15학번이 되어 다시 학교로, 그것도 필리핀에 있는 인류학과로 들어온 기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마치 첫 출근자와 신입생과 여행자의 마음을 모두 섞어 놓은 느낌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첫 수업은 언어 인류학이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대의 많은 사람들이 교실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전공 수업이라 일부러 듣게 된 수업이었는데, 이 과목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만드는 과목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40여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학생들 중 외국인이라곤 나뿐인 것 같은 분위기. 새 학기, 첫 수업이라 그런지 서먹하면서도 들뜬 마음을 감출 길 없이 북적이던 교실이 한 사람의 등장으로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미 교실 안에는 교수님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연령대의 학생들도 여럿 있었기에 나 같은 신입생들은 누가 이 수업의 교수님인지 알아챌 수가 없었는데, 갑자기 조용해지는 이 공기가 누가 교수님인지를 자연스레 알려주고 있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교실, 다소 작은 몸집의 교수님이었지만 우리나라 구한말 시대의 단정한 한복 또는 같은 시대 중국 무술 사부님들이 입을 것 같은 셔츠 때문인지 왠지 모를 포스가 느껴졌다. 인자한 미소로 간단한 소개를 하시던 교수님. 학생들 사이에 뭔가 흠모하는 선생님이나 연예인을 만나는 것처럼 뭔가 초롱초롱한 분위기가 살짝 느껴졌다.


언어 인류학은 인류학의 필수 전공 수업 중 하나였다.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니 필수 전공 하나하나가 어찌 보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 혹은 인간의 독특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었는데 그렇게 보면 왜 언어 인류학이 필수인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언어는 인간들의 전유 문화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동물들도 언어를 가지고 있죠. 분명 동물들도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언어가 있겠지만, 문제는 동물들의 소리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개들이 멍멍, 왈왈, 차우차우 등등 뭔가 소리를 내는데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심지어는 그것이 언어인지조차도 사실은 확실히 밝혀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생물학자나 동물학자들은 동물들을 직접 관찰하면서 그들의 소리와 교감을 연구하죠.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사실 동물들의 언어를 추측할 수는 있어도 정확히 이거다라고 확정할 순 없어요.


대신 인간인 우리들은 인간의 언어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아볼 수 있죠. 예를 들면, 개가 짖을 때 개가 어떤 이유와 의미에서 그 소리를 내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요. 개의 소리를 들었을 때 사람들마다 어떤 사람들은 개가 '말한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는 '짖는다'라고 할 수도 있고, 혹은 '이야기를 한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어요.


이때 분명 같은 개의 소리를 들었음에도 이를 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은 무척 다양한 생각과 해석을 펼쳐낼 수 있어요. 개가 어떤 말을 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개의 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있죠. 그래서 인류학자들이 인간에 대한 탐구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인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행동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인류학의 한 뜻이랍니다. “


나중에 알고 보니 교수님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계셨다. 학사는 필리핀에서 수의학을 공부해서 원래는 수의사로 활동하시다가 석사를 미국에서 인류학으로 공부하시고는 박사는 암스테르담에서 의료인류학으로 마치신, 소위 문과와 이과는 물론 아시아와 미주, 유럽을 모두 다양하게 경험하신 흥미로운 배경을 가지고 계셨다.


그동안 어릴 적 보던 백설공주처럼 새들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거나 혹은 특별히 동물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명쾌하게 인류학이 적어도 어떤 대상을 갖고 있는지는 확실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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