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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Nov 18. 2022

펠리페2세 이름에서 따온 필리핀의 원래 이름은 뭘까?

인류학에서 소수민족이 중요한 이유


마침 내가 인류학과에 입학한 해는 필리핀 국립대학교의 인류학과 100주년 기념 기간이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동안, 학교에는 지난 백 년 동안의 인류학과에 대한 특별 세미나, 컨퍼런스 등의 행사들이 자주 열렸다. 덕분에 나 역시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수업과는 별개로 필리핀의 인류학에 대해 더 자세히 접할 수 있었다.


인류학은 인간에 대한 연구라고 하는데, 그 인간이라는 개념이 국적과 시간을 초월한 인류 공통의 인간을 의미할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인류학과들이 많지 않은 나라에서 게다가 국립 대학교의 인류학과에서 ‘인간’은 인류 보편의 인간을 의미하는 동시에 한편으론,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즉 필리핀에서는 동남아시아 그리고 필리핀 사람들이 주로 연구 대상이다.


인간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과 더불어 필리핀 사람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있어 손으로 직접 적어 기록에 남긴 초기 인류학자들은 아쉽게도 필리핀 사람들을 외부에서 보고 기록한 사람들이다. 기록이 남아 있는 나라들의 경우 대부분 문자 문화였고, 거기다 우리나라 역시 제법 오래된 역사가 글로 남아 있는 문자 문화였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나라들 역시 문자 문화가 기본이었을 것이라 가늠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나라, 그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사회였던 섬나라와 부족 국가들의 경우에는 문자보다는 이야기와 춤, 노래, 그림 등 구전으로 그 역사와 문화가 전해 내려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기록의 많은 부분들은 처음 그 땅에 ’도착‘했지만, 스스로는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외부인들에 의해 작성된 것들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슬프게도 인류학의 뿌리는 제국주의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필리핀 사람이라는 필리핀에서의 인류학의 질문은 다시 필리핀 사람들이 스스로 말하는 필리핀 사람들과 그런 필리핀 사람들을 타자로써 바라보는 외부인들이 말하는 필리핀 사람으로 나뉘게 되었다.


내가 외부인이기 때문에 사실 필리핀 사람들의 스스로의 이야기보다는 필리핀에 처음 도착해서 이 지역 사람들을 태어나 처음 본 그때의 탐험가 혹은 정복자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더 쉽게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스무 살에 태어나 처음 혼자서 해외에 나갔던 곳은 남아공이었다. 남아공에 가기 전에 나는 15세기 탐험가들과는 달리 미리 라이온 킹을 봤고, 수많은 흑인들이 나오는 미국 영화를 봤으며, 넬슨 만델라와 투투 주교 등 아프리카 사람들이 쓴 글을 읽었음에도, 막상 내가 처음 아프리카 흑인들 사이에 둘러 쌓인 곳에 혼자 덩그러니 도착했던 요하네스버그 공항을 잊을 수가 없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아시아 사람이며 또한 아시아 여성이라는 그 낯설면서도 신기하고, 그래서 두렵지만 또 궁금했던 그 기분을 잊을 수 없었다.


분명 모두가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다른데, 그리고 나는 이렇게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데 과연 우리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15세기 사람들은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 전혀 다른 타인들 속에서 나 혼자 다른 사람인 경우, 사실은 내가 같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내가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러면 그 다른 사람들은 과연 정말 나와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하나하나 증명하는 과정이 어쩌면 인류학의 시작이었을지 모른다.


그들의 키와 눈과 머리카락과 신체기관을 하나하나 측정해 기록하던 체질인류학부터 나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분명 내가 살던 곳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이들도 분명 언어라는 것을 가지고 소통할 것이기에 그들의 언어를 연구한 언어 인류학까지. 그리고 이 모든 과정들을 직접 하나하나 관찰하고 기록한 뒤, 그들만의 사회적 문화 의미를 해석해 설명해 놓은 에스노 그라피가 어찌 보면 내가 배우고자 하는 인류학의 큰 완전체라는 것이 나에겐 모두가 외국인이지만 그들에겐 나 혼자 외국인인 필리핀 대학원에 오니 더 깊게 와닿게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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