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코코와 영화 아바타, 참여 인류학자의 역할
오랫동안 기대하던 개발 인류학 수업 교재는 초록의 제법 단단하게 생긴 책 한 권이었다. 국제개발이론과 국제개발기구와 엔지오 등의 내용들이 가득할 것이란 생각을 했던 나는 한편으론 실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을 고르신 교수님의 의중이 궁금했다. 팔십이 다 되신 연세 동안 쉬지 않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의 국제개발 현장을 고루 참여하신 교수님이 선택하신 책이니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낯설지만 읽어보기로 했다.
“Generating energies in Mount Apo “이라는 제목부터 감이 잘 오질 않았다. Mount Apo라는 곳은 아포산을 의미한다. 아포 산은 필리핀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민다나오 지역에 있는, 필리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아포산이라는 이름은 산들의 할아버지라는 의미에서 따왔는데, 그만큼 이 지역의 원주민들에겐 오래되고 신성한 산으로 여겨지는 산이다.
이 책은 이 아포산에 살고 있는 수많은 소수민족 중 루마드(Lumad)라는 원주민 중에서도 마노보(Manobo) 부족의 삶의 터전에 들어간 한 인류학자의 에스노 그라피 었다. 교재가 끝날 무렵 교수님은 이 분을 직접 수업에 초청하셔서 함께 세미나를 갖기도 했는데, 작가님은 인류학자이면서도 신부님이신 분이셨다.
이 분이 민다나오의 마노보 부족을 만나게 된 이유는 바로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국제개발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아포산 국립공원 지역 내에 필리핀 국가의 오일 회사에서 대규모의 지열발전소 사업을 밀어붙이면서 소수민족들과 자연생태계가 파괴될 위험에 빠지면서 작가는 인류학자로서 이 사건에 들어가게 된다.
인류학자들은 처음 현장에 들어갈 때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가 현지인들과의 첫 만남이라고 들었었다. 첫인상과 그 이후 만들어지는 라포(관계)가 어떻게 형성이 되느냐에 따라 인류학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거나 아니면 거절받게 된다.
인류학자라면 현지 어디를 가든 자신이 보고 경험한 대로 기술하면 된다고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단순 여행기와 에스노 그라피의 큰 차이 중 하나는 바로 현지 사람들에게 허락을 받고 그들에 대해 기록을 시작할 때에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에스노 그라피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허락이라는 것이 인류학자가 처음 계획했던 것처럼 언제나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처음 부족에 들어갔을 때 들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딱히 문화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어요. 그럴 문화가 없는데, 왜 그런 우리를 연구하고 싶은 거요. 특별한 것이 없으니 그냥 가보시오.”
우리는 ‘소수민족’, ‘원주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마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주문처럼 자연스레 떠오르는 프레임과 이미지들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한국인인 나는 우리나라에는 그렇다 할 소수민족이나 원주민이 (우리 자신이거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들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어딘가 본 적이 있는 듯한 흑백 사진 속 미국의 원주민 사진이나 아프리카의 부족 사진들이 떠오르곤 했다. 짙은 머리색과 크고 작은 비즈와 자연의 재료들로 꾸민 장신구, 화려한 색감을 가진 강렬한 패턴의 전통의상이나 혹은 자연의 재료로 신체의 일부만을 가린 옷, 정글이나 초원을 배경으로 한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들 말이다.
그런데 세계은행의 데이터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Indigenous people‘에 속하는 인구가 전 세계 총인구 중 6%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 6퍼센트가 적은 숫자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 숫자를 풀어쓰면 약 4억 7천 명에 이른다. 그리고 그 많은 숫자의 사람들 중에는 정말 고립된 환경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는 부족들도 있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소수민족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전혀 달리 우리와 구분이 별로 되지 않는, 비슷한 옷차림과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슬프게도 데이터는 2100년 경에는 이 수많은 소수민족 중 절반은 사라질 것이라는 암시도 덧붙이고 있었다.
실례로 필리핀 북부 루존 섬의 깊은 산속 소수민족들을 연구한 친구의 논문 중 하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필리핀이라는 근대국가가 생긴 후로 국가 아래 지역 단위의 군청과 면사무소, 그리고 이에 따른 이장, 면장, 군수 같은 직책들이 생겨났는데, 문제는 소수민족들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부족 내에 나름대로의 권력 구조체가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맨 처음 근대 정치적 구조가 산속의 소수민족 마을의 기존 권력 구조와 마주치게 되었을 때 마을의 권력 역학이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지를 파헤치는 것이 친구의 연구주제였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과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던 친구는 소수민족들의 일상을 관찰했는데, 놀랍게도 우려했던 것만큼 근대적 정치권력을 가진 새로운 구조는 마을 사람들의 삶에 그다지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반면 소수민족들의 삶을 가장 많이 바꿔놓은 것은 바로 미디어와 관광객들이라고 했다. 왠지 드라마틱한 정치싸움 또는 포카혼타스처럼 원주민과 외부인의 갈등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갑분 핸드폰과 티브이, 관광객이라니. 소수민족들도 우리와 똑같은 20세기와 21세기를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현지인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 중에 소수민족과 원주민들의 문화가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박물관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인류학자들이 가장 우려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는 현실이었는데, 친구의 연구결과도 그랬고 아포산 깊숙한 곳에까지 들어가 처음 만난 소수민족이 전해준 말도 그 현실을 상기시켜주는 것 같았다. 그들의 문화는 사라져 가서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은 문화가 없다고 말해버리는 상황에서 인류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문화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 있는 한 문화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했다. 그 부분이 바로 이 책의 앞부분인 “Generating energies”를 가리킨다.
한글이라는 강력한 문자가 있는 우리에겐 문자문화가 익숙하지만 모든 문화가 글로 적힌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처럼, 많은 소수민족들의 문화는 노래와 춤과 이야기 등으로 전해 내려 온다. 그래서 그 노래와 춤과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다면 그 문화는 아직 살아있다는 의미이고, 누군가 그 노래와 춤과 이야기를 배워서 기억하고 있다면 그 문화는 다음 세대에도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높아진다.
기억하는 주체가 글이나 책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이를 배우고 기억하는 사람이 한 두 명이면 사라질 위험이 높아지지만 더 많은 사람이 기억할수록 이어질 확률은 올라간다. 마치 애니메이션 코코에 나오는 것처럼 누군가 돌아가신 후에도 누군가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부족의 기억은 죽어서도 살아서도 이어지지만, 현실에서 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 과거도 현재도 모두 죽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소수민족에게 잊고 있던 작은 전통 악기를 찾아주고, 그 악기를 기억하는 이웃 부족들을 이어주며, 그 악기를 통해 연주되는 음악에 맞춰 쳤던 춤을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내고 함께 춤을 추게 하며 부족들이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게 뒤에서 협력한다. 춤과 노래라는 소프트파워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조직할 수 연결점이 되며 결국에는 하드파워를 생성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된 셈이었다.
마치 미구엘이 코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불렀던 ‘기억해줘 (remember me)’라는 노래 하나가, 고작 노래 한 소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고, 이승과 저승 모두에서 사라질 뻔한 헥토르를 살리고, 끝에 가서는 헥토르와 델라크루즈 사이에 조작된 역사까지 바꿀 수 있게 했던 것은 결국 그 노래 한 소절이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