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송한 타갈로그어의 시제
언어 인류학 수업을 들으며 학교 어학원에 있는 기초 타갈로그 수업을 함께 신청해 들었다. 대학원보다는 대학을 다니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이 더 많았던 수업. 필리핀에 살아도 대부분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10명 남짓 되는 수였지만, 가나, 멕시코, 일본, 한국 등 외국인뿐만 아니라 신기하게도 필리핀 학생들 도 한 두 명이 같이 듣게 되었다.
10명이 조금 넘는 학생 중 절반 정도가 일본에서 온 학생들이었는데, 일본의 지역학은 크든 작든 어떤 나라든지 간에 언어부터 제대로 가르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싶었다. 일본 내 대학의 필리핀학을 배우는 친구들이 일본에서 이미 필리핀어를 어느 정도 배워두고 다시 필리핀에 와서 또 배우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수업은 외국인 학부생들을 위한 언어 코스였기 때문에 아주 기초적인 내용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마을에서 마을 아주머니들과 웃고 떠들며 건너 건너 듣고 배운 따갈로그어였던지라, 문법부터 다시 차근차근 배워가려고 하니 어렵고 헷갈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생겨났다.
타갈로그어는 생각보다 굉장히 다양한 언어의 영향을 받은 언어다. 필리핀에 가장 오래전부터 교류를 시작했던 북부의 중국어의 영향과 남부의 말레이 언어들을 시작으로, 스페인 시절의 흔적을 강력히 남기고 간 스페인어, 그 뒤의 영어, 일본어까지 타갈로그어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언어가 층층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옆에서 보면 때려 맞춘 것이 분명한데 스스로도 그게 맞는지 매번 놀라워하는 멕시코 친구를 보면 생각보다 많은 타갈로그 단어들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것 같았고, 친족 관계의 경우에는 중국, 일상생활용어들은 말레이어와 겹치는 부분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았다.
새로운 언어이고 또 잘 알려지지 않은 언어라 제대로 타갈로그어를 배우려고 보니 모든 것이 익숙하진 않았지만 내가 가장 당황했던 부분은 바로 시제였다. 분명 시제 비슷한 문법들을 설명하셨던 것 같은데 선생님은 갑자기 이렇게 말을 멈췄다.
“그런데 타갈로그어에는 시제가 있기도 하지만 시제가 아니라 행위의 상태라 더 중요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시제가 아니라 행위의 상태가 무슨 뜻일까.
예를 들면, ‘나는 빵을 먹다’라는 문장을 기본으로 한다면, 시제가 중요한 언어에서는 보통 먹다라는 동사가 서로 다른 시간들을 반영해 ‘먹었다, 먹는다, 먹을 것이다’ 등으로 바뀐다. 이렇게 서로 다른 동사들을 통해 사람들은 그 문장이 과거나 현재, 미래 등의 다른 시간에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
따갈로그도 이런 문장이 가능하지만 한편으론 굳이 그렇게 동사를 바꾸지 않아도 시간을 나타낼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나는 빵을 어제 먹는다’라는 문장을 타갈로그어를 처음 배우는 외국인들이 본다면 잘못된 문장처럼 느낄 것이다. 하지만 동사는 ‘먹는다‘라고 해도 ‘어제’, ‘지금’, 또는 ‘내일’이라는 시간적 의미가 들어간 단어를 사용하면 이 ‘먹는다’라는 동사는 자연스레 그에 맞는 시제의 동사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따갈로그어에서는 시제보다는 먹다라는 행위가 이미 끝났는지,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혹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그 행위의 상태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은데 예를 들면, ‘내가 졸업을 하면, 재밌는 일을 찾고 싶다‘라는 문장에 있어서 시제만을 따른다면 ‘졸업을 하는 것’과 ‘재밌는 일을 찾는 것’ 모두 ’미래‘에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문장을 시제가 아닌 행위의 상태를 초점을 맞춘다면 ‘졸업을 하는 것’은 ‘재밌는 일은 찾는 것’의 전제이기에 재밌는 일을 찾는 시점에서는 이미 끝난 상태가 된다. 반대로 재밌는 일을 찾는 것은 졸업을 하는 것에 비해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되는데, 이럴 때 시제로는 모두 미래에 일어날 일이지만, 두 문장의 관계에 있어 졸업을 하는 것은 재밌는 일을 찾는 것과 달리 과거형처럼 쓰일 수 있다는 것이 따갈로그였다.
선생님은 여러가지 문장의 예를 제시하며 최대한 쉽게 설명을 하려고 하셨지만 설명 이 끝날 때마다 아마 지금 당장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말로 마무리를 지으셨다.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타갈로그어는 아무튼 시제보다는 행위의 상태라는 것을 덧붙이며.
수업을 듣고 난 뒤, 세상의 모든 언어들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언어란 그들만의 세상을 담고 있고 또 보여주는 수단이라는데, 어떤 세상은 시간을 가장 중시하는 것처럼 시간의 단위를 세세히 쪼개 구별하는가 하면, 또 어떤 세상은 관계에 따라 존중을 특별히 표시하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세상은 시간보다는 어떤 행동이나 상태가 끝이 났는지 아닌지, 혹은 시작하지 않았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 곳도 있었다. 어찌 보면 언어가 어떤 한 세상의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주는 커다란 철학의 프레임처럼도 보였다.
필리핀 사람들은 왜 시제보다 행위에 더 관심이 많았을까라는 질문이 내게는 퍽 흥미로운 질문이 되었다. 한동안 나는 다른 인류학 수업 중에도, 거리를 걷는 중에도, 지프니를 타고 어딘가를 가며 밖을 보는 중에도 그 질문들이 내 머릿속에 둥실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시간 중 필리피노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하나를 보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