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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Feb 16. 2023

‘쓰레기’라는 단어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고어라는 화석 속에 숨겨진 지속가능

언어인류학의 층위는 마치 서로 다른 시간의 인간들이 살아온 지층 위에 겹겹이 쌓인 언어라는 화석처럼 다양했다. 인류학의 전공과목 중에 고고학이 포함되어 있듯, 언어인류학에도 우리가 언어라고 부르는 보통의 언어를 중심으로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조어부터 예전에는 분명 신조어처럼 반짝이는 이름들을 들었을, 그러나 지금은 사라지고 역사책에만 남은 고어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외국인인 내가, 언어가 백개가 넘는다는 필리핀의 크고 작은 다양한 언어들을 살아생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어보는 것도 만무한 일인데 하물며 그 많은 언어들의 타임라인까지 따라가며 고어부터 신조어까지 그 넓은 스펙트럼을 살펴보려 한다면 아마 나는 인도신화에서나 나오는 영겁의 세월을 무한히 환생해야지만 가능할까 싶은 느낌이었다.


이건 단지 내가 외국인이라서 해당되는 문제만은 아닌 듯했고, 그래서 수업은 지금 우리 시대, 특히 인류학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와 연관된 몇몇의 키워드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하나의 키워드를 깊이 파헤치다 보면 분명 시작은 단어 하나라는 작은 물줄기였을 뿐인데, 어느샌가 한 나라의 문화 혹은 한 시대의 풍경처럼 거대한 바다와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나라의 언어에는 다른 언어로는 정확히 설명되거나 번역되기 어려운 그들만의 고유한 키워드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세계의 언어학자들에게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키워드로 알려진 단어들로는 한이나 정 같은 경우가 그러했다. 물론 그런 한이나 정이라는 단어를 몸과 마음으로 이해하는 지금 할머니, 어머니 세대가 지나고 나면 이 키워드들이 과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여전히 남을지는 의문스러웠지만, 어찌 되었건 그 단어 자체가 가진 특수한 상황과 시공간의 단층들이 쌓아낸 의미는 아무리 비슷한 느낌의 단어를 가진 나라들이라고 하더라도 포르투갈과 한국, 그리고 필리핀에서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서로 다른 미세한 의미들이 달라붙어 각자의 고유성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분명 언어인류학에서 연구되는 주제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언어학은 물론 사회학과 심리학, 정치학까지 학문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에 다다르곤 했다. 그래서 언어가 굳이 인류학의 필수 전공과목 중 하나가 되어 이를 통해 인간과 인간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나에게 그런 극적인 순간을 선사한 단어는 바로 쓰레기였다. 타갈로그어에서 현재 쓰레기로 의미되어 사용되는 단어 중 가장 일반적인 단어는 ‘바수라(Basura)’였다. 쓸모없거나 버릴 것이라는 의미로 우리나라 단어로 하면 쓰레기에 해당되는 말인데, 내가 언어로 고고학자처럼 지층을 파내어 시간여행을 한 느낌을 받은 단어는 바로 이 ‘바수라’가 없던 시절의 고어 때문이었다.


이제는 너무 옛날의 단어가 되어 일반 필리핀 사람들은 물론 학계에서도 고어를 공부한 사람들이나 알 수 있는 잊힌 단어였다. 나 역시 수업 시간 중 아주 잠시 훑고 지나가 그 단어가 어떤 단어였는지 기억 속에선 잊혔는데, 다행인 건 대학시절에 읽었던 언어철학책들 중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가 이해되지 않아 몇 번이고 되뇌며 새겨진 의미 덕분에 선명한 파편이 남아 있었다.


달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달이라는 한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지만, 사실 그 한 가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는 달이라는 그 대상 본체, 그리고 그 물체를 ‘달’, ‘Moon‘, ‘Buwan’ 등 언어마다 다르게 나타내는 문자 껍데기, 그리고 그 물체가 담고 있는 뜻, 의미, 정의 등이 합쳐져 비로소 하나의 달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 필리핀언어 중 지금의 쓰레기라는 단어의 고어는 나에겐 문자라는 껍데기로는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그 고어가 가진 의미만큼은 달빛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사실 필리핀의 고어 중에는 지금의 ‘바수라’, 즉 쓰레기라는 단어가 없었다고 한다. 바수라 대신 쓰레기라는 단어와 가장 비슷하게 쓰였던 단어가 있긴 했는데, 그 단어의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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